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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하지 않은 존재는 왜 ‘악’이 되나
익숙하지 않은 존재는 왜 ‘악’이 되나
  • 이원석
  • 승인 2024.02.16 11: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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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동양철학회·성균관대 공동주최
악(惡): 나쁜 것에 대한 동양적 성찰

지난달 27일 성균관대 퇴계인문관에서 ‘악(惡): 나쁜 것에 대한 동양적 성찰’을 주제로 하는 학술대회가 열렸다. 이 대회는 한국동양철학회가 성균관대 유학동양한국철학과 4단계 BK21 교육연구단, 같은 대학 동양철학·문화연구소와 공동으로 주최했다. 

지난달 27일 열린 ‘악(惡): 나쁜 것에 대한 동양적 성찰’ 학술대회가 열렸다. 동양철학을 통해 현대인이 왜 기존 질서로 잘 규정되지 않는 존재들을 악으로 규정하고 희생양으로 삼았는지 살펴봤다. 사진=한국동양철학회

보통 동양철학계는 선(善)이 중심 주제였다. 수양론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동양 철학의 여러 분야에서 선이란 수양의 최종 귀착지로 여겨졌기 때문일 것이다. 시선을 서양 철학계로 옮겨봐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학술대회 조직위는 왜 ‘악’을 성찰 대상으로 삼았을까? 그동안 선만 추구했으니 한 번쯤은 악을 다루어도 좋지 않겠냐는 낭만적 치기가 발동했던 것일까? 대회 측에서 사전에 배포한 문건을 보면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이에 따르면, 특정 문화권의 인류는 자신에게 익숙하지 않아 기존 질서로 잘 규정되지 않는 존재들을 악으로 규정하고 희생양으로 삼았다. 장애인·이민족·이교도·성소수자·여성이 악으로 규정된 적이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자도 해당될 것이다. 

그렇다면 ‘악: 나쁜 것’에 대한 동양적 성찰이란 장애인·이민족·이교도 등에 대해 동양의 철학자·상가들이 어떻게 바라봤는지 되새겨 보고, 익숙지 않은 존재를 쉽사리 악으로 매도하고 희생양 삼는 현대 사회의 메커니즘을 전복하는 사상적 자원을 동양의 전통 속에서 찾아보자는 기획일 것이다.

이번 학술대회는 모두 다섯 명이 발표했는데, 첫 번째 발표자로 나선 송윤우 미국 아메리카대 강의교수(철학종교학부)는 「누가 걸주를 욕하는가?: 본성의 악함과 도덕적 책임에 대한 고찰」에서 중국 고대의 대표적 폭군 걸 임금과 주 임금에 관한 후대의 논의에 나타난 논리적 모순을 지적했다. 즉, 후대 학자들은 걸과 주가 타고날 때부터 악한 본성이 있었고 그것은 개선 불가능한 것이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걸과 주의 악행에 대한 책임을 그 당사자에게 물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송 교수는 이를 통해, 이른바 ‘악인’에 대한 현대인의 규정과 태도를 재고해 볼 것을 촉구했다.

송 교수 외에도, 김준승 성균관대 동양철학문화연구소 박사가 「양명학에 함의된 선악의 개념 고찰과 악에 대한 현대적 이해」, 최정연 전북대 한국과학문명연구소 박사가 「서학의 선악 개념을 바라보는 유학자의 시선들」, 정영수 전남대 철학과 강사가 「순자 성악설에서 ‘악’의 메커니즘」, 이길산 경남대 교수(인도철학)가 「불교적 세계관에서 본 만악의 근거, 번뇌」를 발표해 참신한 문제의식을 선보였다.

이번 학술 대회가 이런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까닭은 근대 문명과 당대의 첨예한 모순에 대한 깊은 고민을 바탕으로 동양철학에 새롭게 접근해 보고자 노력했기 때문이다. 별도 섹션으로 마련된 학문후속세대 발표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모두 8명의 석·박사과정 학생들이 ‘악’을 키워드로 동양의 지적 전통을 톺아보려 했고, 학계의 신진학자들이 개별로 논평해 주어 소중한 조언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이원석
전남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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