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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운세보다 과학적인 경제 전망을 기대하며
오늘의 운세보다 과학적인 경제 전망을 기대하며
  • 김소영
  • 승인 2024.01.22 13: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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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_ 김소영 편집기획위원 /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김소영 카이스트 교수

신문을 여전히 하드카피로 보는데, 매일 실리는 오늘의 운세를 웬만하면 그날이 지난 후에 읽는다. 두 가지 이유다. 하나는 단순한 궁금증인데 정말 운세가 맞는지 확인해보는 게 재미있다. 다른 하나는 ‘자기실현적 예언’ 때문인데 그날 아침 운세를 읽으면 왠지 그렇게 흘러가는 경험을 종종 하기 때문이다. 운세가 좋을 경우는 문제가 없는데 운세가 안 좋을 경우는 기분도 나빠지고 불안해진다.

자기실현적 예언은 과학사회학자 로버트 머튼이 만든 용어로 사람이 어떤 믿음이나 기대를 가질 때 실제로 그런 결과로 이어지는 현상을 말한다. 언뜻 미신같지만 생각해보면 인과적 고리가 있다. 스스로 어차피 안된다고 믿고 노력을 게을리 하면 결과가 안 좋아질 것이고 그러면 그 믿음이 더욱 강화되는 피드백이 생긴다.

개인만이 아니라 집단 수준에서도 이런 메커니즘이 작동할 수 있다. 경기가 더 어려워진다는 전망이 나오면 소비자는 지갑을 닫을 것이고, 기업은 고용을 줄이고 이런 선택이 쌓이면 원래 전망보다 더 경기가 나빠질 수 있다. 정부나 민간의 경제 전망이 단지 계량적인 수치를 내놓는 것만이 아니라 시장 주체의 선택에 원래 의도한 효과나 의도치 않은 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이런 전망을 내놓는 기관이나 전문가들이 얼마나 많은 고심과 번민을 할지 짐작이 간다.

아무튼 연초인지라 올해 우리 경제와 세계 경제가 어떻게 풀릴지 여러 전망이 나오고 있는데, 과거를 돌이켜볼 때 경제 전망이 얼마나 맞았는지 확인해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다. 사실 경제 전망이 오늘의 운세보다 더 객관적이고 정확할 듯한데 꼭 그렇지는 않다. 2000년대 초 IMF 발간 논문에 따르면, 1990년대 전세계에서 발생한 60개 경제불황을 제대로 예측한 전망은 2개에 불과했다.

또한 몇 년 전 우리말로 번역된 네이트 실버의 『신호와 소음: 불확실성 시대, 미래를 포착하는 예측의 비밀』에 나온 통계를 보면, 1993~2010년 사이 ‘전망 전문가들의 조사’가 내놓은 미국의 경제성장률 예측이 오차 범위를 감안해도 완전히 빗나간 것이 18년 중 무려 6번이었다.

적어도 오늘의 운세보다 더 과학적이어야 할 경제 예측이 왜 이럴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실버에 따르면 인센티브 구조가 큰 몫을 담당한다. 2007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때 불량 파생상품에 AAA 등급을 남발했던 신용평가사들이 의회 청문회에 불려갔을 때 이 정도 위기는 누구도 예측 못했다 했지만, 파생상품 등급 평가를 한 건 하면 돈을 더 버는 구조에서 파생상품의 위험성을 제대로 평가할 수 없었다.

최근 1천억 원 손실이 확정된 홍콩 ELS 사태를 보고 기시감이 든다. 은행 창구에서 이걸 파는 게 성과와 연동되었다는 조사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든 민간이든 경제 전망이 쉽지 않지만, 정말 경제 위기가 발발하면 시민으로서 소비자로서 어떻게 이 지경이 되었는지 물을 수밖에 없다. 개인으로서 전망의 오류에 당하지 않으려면 적어도 장밋빛 전망을 내놓는 인센티브 구조가 존재하는지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김소영 편집기획위원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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