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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대학 시대’를 위한 근본 해결 과제
‘지방대학 시대’를 위한 근본 해결 과제
  • 홍성학
  • 승인 2024.01.08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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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논평_ 홍성학 충북보건과학대 명예교수

 

홍성학 충북보건과학대 명예교수

윤석열 정부는 출범 초기에 ‘지방대학 시대’를 표방했다. 110대 국정과제 중 85번에 ‘이제는 지방대학 시대’를 두고 주요 내용으로 지자체 권한 강화를 제시했다. 지역대학에 대한 행·재정 권한을 중앙정부에서 지자체로 위임하고, 지자체·지역대학·지역 산업계 등이 참여하는 (가칭)지역고등교육위원회를 설치하는 내용을 담았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후 1년 7개월이 지났지만 ‘지방대학 시대’에 적합한 구체적인 추진 방안이 보이지 않고, ‘지방대학 시대’는 허울뿐인 표방에 그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교육부의 대표적인 사업으로 라이즈(RISE,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 공모 사업, 글로컬대학 30개 육성, 반도체 및 첨단분야 인재 육성 추진, 사립대학 구조개선 추진, 교육발전특구 추진 등을 들 수 있지만 이러한 사업으로는 지방대학 시대를 실현할 수 없을뿐더러, 오히려 지방대학의 생명력을 약화시키게 될 것이라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라이즈(RISE) 사업은 기존의 RIS(지자체-대학 협력기반 지역혁신사업)에 LINC 3.0(산학협력선도대학(전문대학)육성사업), LiFE(대학의 평생교육체제 지원), HiVE(고등직업교육거점지구 사업), 지방대학 활성화 사업 등을 통합한 것이다. 기존의 대학에서 신청하던 방식에서 지자체를 거쳐 신청하는 방식으로 바뀌었을 뿐 지자체 위에서 교육부가 관리하고 있는 것은 여전하다.

아직 대학 사무에 대한 지자체의 신뢰가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학과 지자체, 산업체 간의 역할에 대해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고, 재정지원이 어떻게 집행될지 명확하지 않다. 지자체장이 선거 때마다 바뀌면서 정치적 영향력이 대학 운영에 작용할 수 있다.  

둘째, 글로컬대학 30개 육성 사업은 비수도권 지역 30개 대학을 선정해 5년간 학교당 1천억  원씩(년 200억 원)을 집중 지원하는 사업이다. 그러나 교육부가 국회에 제출한 2024년도 예산안에는 ‘글로컬대학 30’ 사업 명칭으로 편성된 예산은 없다.

교육부는 내년 예산에 편성된 국립대 육성사업 5천277억 원, 지방대학 활성화 사업 2천375억 원, 지방전문대학 활성화 지원 사업 750억 원 등 기존 일반재정지원 예산에 포함된 인세티브(성과 평과에 따라 지급) 예산을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2023년에는 10개 내외의 대학을 선정하고, 2026년에는 30개 대학까지 확대한다고 하지만, 이는 일부 대학을 선택해 집중 지원하면서 기존에 지원 받았던 대학을 역차별하는 사업인 셈이다. 이뿐만 아니라 대학 간 통합과 학과 벽 허물기 등을 전제로 신청서를 제출해 대학 구조조정의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 

셋째, 반도체 및 첨단분야 인재 육성 추진 사업의 경우 반도체 및 첨단분야 인재 육성을 위해 관련 학과의 정원을 늘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학이 서열화돼 있고, 학령인구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수도권 대학의 정원이 늘어나 지방대학을 더 어렵게 만들 것이다. 

넷째, 사립대학 구조개선 추진 사업이다. 이와 관련해 현재 국회 교육위원회에는 「사립대학의 구조개선 지원에 관한 법률안」이 4개 발의돼 있다. 4개 발의안은 지방의 경영이 어려운 사립대학의 법인이 해산하는 경우 잔여재산의 일부를 공익법인 또는 사회복지법인의 재산으로 출연할 수 있도록 하고 해산 장려금을 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방대학을 살리기는커녕 법인 해산과 폐교를 유도하고 비리재단의 ‘먹튀’를 정당화하는 것이다.

다섯째, 지난해 10월 31일 교육부가 발표한 교육발전특구 추진 사업은 지역 대학의 경쟁력 강화를 통한 지역인재의 수도권 유출 방지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지역 대학의 경쟁력 강화와 수도권 중심의 대학서열체제를 해소하는 실질적인 방안이 없어 지역인재의 수도권 유출을 방지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진정 윤석열 정부가 ‘지방대학 시대’를 실현하고자 한다면 먼저 지방대학 위기의 근본 원인을 제대로 파악해 이를 바탕으로 과제를 설정하고 해결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지방대학 위기의 원인 중의 하나로 학령인구 감소를 들기도 한다. 그러나 지방대학의 위기 대책 마련을 위한 ‘해결해야 할 근본 원인’으로 삼을 수는 없다. ‘해결해야 할 근본 원인’으로 먼저 수도권에서부터 이루어진 획일적인 대학서열체제를 들 수 있다. 공학한림원도 2022년 대선을 앞둔 2021년 12월에 발간한 ‘정책총서’에서 “지방대학 정원 미달의 원인이 학령인구 감소 때문이라는 인식이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근본적으로 접근해 보면 정부의 재정 지원 방식으로 인해 획일적 기준 아래 서열화된 교육 시장에서 구조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라고 했다.

다음으로 ‘해결해야 할 근본 원인’으로 각 대학의 지나친 등록금 의존도를 들 수 있다. 대학 전반적으로 등록금 의존도가 높아 학령인구 감소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등록금 의존도를 낮출 수 있다면 수도권 대학부터 입학 정원을 줄여 학령인구 감소 상황을 오히려 교육·연구 여건의 질과 대학의 존재가치를 높이고 고등교육생태계를 건실화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 

따라서 정부는 지자체에 권한 위임을 하기 이전에 획일적인 대학서열체제를 해소하고 등록금 의존도를 낮추는 방안을 마련하는 책임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해 대학서열체제를 강화시키며 대학의 생명력을 떨어트린 대학평가와 재정지원사업을 전면 재검토하고, 고등교육에 대한 안정적인 재정 확보와 교부를 위해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 제정 등 제도 마련에 적극 나서야 한다. 각 지자체는 이러한 정부의 역할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함께 내면서 대학 간 협력 체계를 구축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홍성학 충북보건과학대 명예교수
전국교수노조 위원장과 교권쟁의실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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