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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잠시위’에 비친 국립대의 암울한 미래
‘과잠시위’에 비친 국립대의 암울한 미래
  • 안상준
  • 승인 2023.12.26 08: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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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_ 안상준 논설위원 / 국립안동대 사학과 교수

 

안상준 논설위원

이달 초 대학가의 낯선 풍경이 언론을 달구었다. 학생들이 평소 즐겨 입는 (학)과잠(바)을 고이 접어 대학본관 앞 계단에 정렬해 놓은 사진이 꽤 인상적이었다. 경북대와 금오공대의 통합 논의를 시작하겠다는 양교 총장의 구두 합의는 이 ‘과잠시위’로 무산되고 말았다. 

‘과잠시위’의 근거는 ‘공정’이다. 경북대에 입학하려고 열심히 노력했는데, 이제 와서 그보다 서열이 낮은 학교와 통합하면 억울하다는 논리다. 서열화든 뭐든 입시 전쟁에서 쟁취한 경북대의 자긍심을 희석시키지 말라는 학생들의 강력한 저항은 우리 사회의 대학 서열화를 깨자고 주장하는 이들에게 직격탄을 날리는 셈이다. 

여기서 대학통합의 당위성과 정당성을 생각해본다. 경북대와 금오공대가 통합해야만 미래를 보장할 수 있는가? 이미 경북대는 15년 전에 안동대나 금오공대와 통합을 추진하다가 실패하고 상주대와 통합했다. 통합의 결과는 지금 어떻게 평가받고 있는가? 통합으로 경북대가 얻은 성과는 들은 바 없지만, 상주캠퍼스는 상주대 시절에 비해서 입학정원이 절반으로 줄었다. 결국 정원감축만 남은 게 아닌지 우려된다.

지금 금오공대가 경북대와 통합을 추진하는 이유는 ‘글로컬대학30’ 사업이 초래할 국립대 지형의 변화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통합을 전제로 사업계획서를 작성한 국립대학은 모두 선정되었다. 1도 1국립대 모델(강원대+국립강릉원주대, 충북대+한국교통대), 거점대와 교대의 통합(부산대, 부산교대), 중소국립대와 도립대의 통합(국립안동대+경북도립대) 등 통합의 모델은 다양했다. 현재 전국의 대학이 겪는 재정 악화를 고려하면 ‘글로컬대학30’ 사업 선정을 마칠 때까지 대학통합은 대세가 될 전망이다.

국립대를 통합하면 세계적인 수준으로 거듭나고 지방대의 문제는 해결되는가? 절대로 그럴 리 없다. ‘글로컬대학30’ 사업이 전체 대학 수의 85%, 학생 수의 80%를 차지하는 사립대의 통합과 구조조정을 간과하기 때문이다. 사립대는 법인의 사적 소유물이기에 통합도 혁신도 난제 중의 난제다. 정부가 국립대학 사무국장 제도의 병폐를 교육부 고위공무원단 파견 금지를 통해 일거에 해소하듯 사립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진작에 대한민국 대학체제의 선진화는 달성되었을 것이다.

문제는 이런 고착된 상태를 방관한 채로 교육부가 대학정책을 펴왔다는 사실이다. 나아가 교피아들의 고질적인 카르텔 형성으로 대학정책은 번번이 왜곡되고, 사학법인은 그 수혜자가 되어 이제는 교육권력을 누리는 교육카르텔로 군림한다.

대학의 미래는 곧 국가의 미래이기도 하다. 학령인구 감소로 대학의 통폐합이나 구조조정을 능사로 생각하는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 보다 구조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글로컬대학 사업계획서에 대학과 지역사회의 연계를 강조하고, 대학의 재건을 통해 지방을 살리겠다는 취지가 없지 않다. 그렇지만 대학이 책임지는 고등교육과 연구의 본질적인 기능이 취업과 평생교육에 휩쓸려가는 분위기는 대단히 우려스럽다. 나아가 통합을 전제로 한 글로컬대학 사업이 구성원의 동의 아래 이루어지는지 다시 한 번 살펴봐야 한다.

필자의 소속 대학은 K-인문을 내세워 글로컬대학으로 선정되었다. 그러나 필자는 K-인문의 핵심에 속하는 사학과 교수이지만 K-인문이 무엇인지, 무엇을 지향하는지, 구체적인 사업으로 무엇을 하는지 그리고 향후 대학의 구조개편은 어떻게 하는지 단 한 번도 제대로 들은 바도 없고 계획서를 본 적도 없다. 다시 말해서 한 번도 공론화를 거친 적이 없다는 말이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 대학의 학생들은 경북대·충남대·충북대 학생들과 달리 반발도 시위도 표출하지 않았다. K-인문을 간판으로 내세워 긴급지원금을 받아내고 통합을 전제로 이미지만 쇄신하면 대학이 과연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라갈까? 교육부의 대답이 자못 궁금하다. 

안상준 논설위원
국립안동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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