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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교수가 말하는 교육 그리고 부모라는 극한 직업
서울대 교수가 말하는 교육 그리고 부모라는 극한 직업
  • 정인관
  • 승인 2023.12.08 10: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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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의 발견_『대한민국의 학부모님께』 이수형 지음 | 김영사 | 288쪽

자녀한테 중요한 건 결국 좋은 직장 얻는 것
경제·사회·문화자본 있는 부모에게 가능한 조언

이 책의 저자는 경제학자인 이수형 서울대 교수(국제대학원)다. 경제학을 전공한 같은 직장의 동료가 '사회학자는 이 책을 읽으면서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하다'며 추천해 준 책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자녀의 학업, 진학, 그리고 취업이라는 삶의 경로에 부모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자녀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단지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직장(직업)을 얻는 것임을 강조한다. 이 과정에서 자녀의 적성뿐만 아니라 변화하는 미래(인공지능의 발달, 국제안보 등)에 대해서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의 조언은 지극히 현실적인데 만일 이과와 문과 중 어디라도 갈 수 있다면 이과를 선택하는 것이 취업이나 임금 등에 있어 유리하므로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문송(문과라서 죄송합니다)’한 현상에 대해서도 세태를 탓하기보단 그 와중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자신만의 가치를 만들어내야 함을 강조한다. 즉, 온전히 예측하기 어려운 변화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능력(인적자본)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어떠한 능력(언어능력, 수리능력 등)이 중요한지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그러한 능력을 키워나가는 데 도움이 된다며 페리 유아교육프로그램에서 제시하는 ‘계획세우기-이행하기-검토하기’라는 일련의 과정을 소개하고 있다. 또한 어떻게 영어 실력을 키울 수 있을지와 관련해서 읽기-듣기-말하기-쓰기 각각에 대한 매우 구체적인 조언도 들려주고 있다. 

이러한 설명 과정에서 기존 연구결과뿐만 아니라 강남 키드인 저자 본인의 학업, 미국에서의 학업과 교직, 한국에서 교수로 지낸 시간의 경험은 주요 논거가 된다. 책을 읽으며 경제학자가 사고하는 방식은 사회학자와는 다소 다르다는 익숙한 사실을 한 번 더 확인했지만 돌려 말하지 않는 솔직함(자칫 ‘세속적’이라 비판받을까 두려워하지 않는 말)은 큰 미덕으로 다가왔다. ‘부모’에게 하는 말이라지만 학업이나 취업을 앞두고 있는 ‘자녀’들이 읽어도 충분히 도움 될만한 이야기가 많다. 

부모에게 들려주는 저자의 조언은 자녀의 영유아기 학습부터 직장을 잡는 시기까지를 망라한다. 대학생 자녀의 학점까지 부모가 챙기는 세태에 대해 익숙히 들어왔음에도 한국에서 부모로 사는 건 정말 극한직업이란 생각이 들었다. 저자의 논지에 대한 몇 가지 삐딱한 생각을 두서없이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저자는 좋은 학교를 나오지 않아도 해당 분야의 실력을 확실히 기르면 크게 불이익을 받지 않는 세상임을 강조한다. 자신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다른 것을 준비하거나 적극적인 자세로 교수의 네트워크를 통해 성공적으로 취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은 사실 꽤 좋은 학교나 특히 응용학문(이과나 경영/경제)에 특화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학생과 교수 생활을 거친 저자의 해외 경험이 오늘날 한국의 교육 현실과 관련된 문제점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괜찮은 준거가 되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한국에서 살아가야 하는 현실의 문제를 단순히 ‘잘못된 것(따라서 크게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치부하고 넘어가게 되면 ‘분명 문제이지만 현재로서는 피할 수 없는’ 것을 놓치게 된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어떤 부모가 읽고 조언을 실천할 수 있을까? 배운 부모, 자녀 교육에 열의가 강한 부모, 이 책의 조언을 실천할 수 있는 경제·사회·문화적 자본이 있는 부모일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의 논지는 상당히 계급적이다. 저자의 조언은 그가 살아온 맥락(서울대 경제학과, 행시 재경직 차석, 스탠포드대 박사, 국내외 최고 명문대 교수) 위에서 이뤄진다. 물론 저자도 그 점을 인정한다. 원론적으로는 옳은 이야기로 가득하지만 구체적인 조언으로 들어갈수록 한계가 조금씩 드러나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한 가지 명확히 하고 싶은 부분은 이러한 몇 가지 비판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책을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추천할 것이다. 내 삐딱한 시선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우리가 보고 싶지 않다고 해도 피할 수 없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학계에 있는 연구자가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갖고, 또 책을 쓸 수 있는 능력과 용기는 진정 귀하다고 생각한다.

 

 

정인관 
숭실대 정보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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