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7 20:45 (토)
‘생존을 넘어 실존으로’, 노년의 삶 그 의미를 찾다
‘생존을 넘어 실존으로’, 노년의 삶 그 의미를 찾다
  • 최익현
  • 승인 2023.12.05 09: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23 선배시민학회 학술대회가 남긴 것

선배시민’ 정책이 평생교육과 밀접하다는 
메시지를 던진 최연혁 교수는 
국가가 세계시민, 국가시민으로서의 소양을 길러줘야 하며, 
이는 지속적인 국가정책에 의해 담보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웨덴의 사례에서 보듯,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은 
노인의 건강(정신 및 육체), 시민성 증진, 
삶의 질 향상에 긍정적 기여를 한다는 
그의 설명이 한국 사회에 어떻게 수용될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생존을 넘어 실존으로―노년의 삶, 선배시민을 만나다’를 주제로 선배시민학회(학회장 유범상 방송대 교수)가 지난달 23일 오후 2시부터 5시30분까지 대학로 방송대 열린관 강당에서 2023년 연례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번 학술대회는 학회의 성격과 이들이 구체적 삶의 현장에서 일궈낸 성과의 맥락을 함께 살필 때 온전히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선배시민학회는 지난달 23일 2023 연례학술대회를 열었다. 

‘경기도 선배시민 지원 조례’의 의미

선배시민학회는 2022년 3월 16일 창립발기인대회를 열고 곧이어 5월 21일 창립대회를 개최하면서 학계에 등장한 신생학회다. 이후 월례세미나를 정기적으로 갖고, 선배시민학회 회보(월간)를 발간하는 질적 성장을 꾀해왔다. 

학회가 추구하는 방향은 “인간은 생존의 빵과 실존의 장미를 필요로 한다. 시민의 빵을 권리로, 장미를 자기목소리로 공동체에 참여해서 얻는다. 선배시민은 시민으로 당당하게 늙어가는 모두를 위한 존재의 선언이다”라는 학회 홈페이지 대문의 글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사실 ‘선배시민’ 담론의 등장은 시간을 좀더 거슬러 올라간다. 2008년 9월, 당시 인하대 행정대학원 사회복지학과 강의전담 교수로 있던 유해숙 박사가 인하대 평생교육원의 노인교육 프로젝트를 계기로 ‘선배시민’ 담론 개발에 착수하면서 시작됐다. 

선배시민 담론은 강단을 중심으로 한 이론에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현장과 접속, 소통한다는 데 특징을 찾을 수 있다. 2009년 마중물연구소에서 선배시민교육을 진행했으며, 2010년부터 사단법인 마중물이 노인복지관, 도서관 등에서 선배시민 강좌를 개설해 2015년까지 운영했다.

여기에 유범상·유해숙·이현숙·정연정 등이 비판사회학회 학술대회에서 4개의 논문(선배시민 세션)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담론으로 자리잡았다. 특히 2016년 한국노인복지관협회 주관으로 전국 300여개 노인복지관에 선배시민론을 보급하는 한편, 선배시민대학을 시작한 것도 주효했다. 

또 하나 놓칠 수 없는 부분은, 실제 지자체에서 ‘선배시민’ 담론을 제도로 담아냈다는 점이다. 지난 11월 8일, 김미숙 경기도의원(보건복지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군포3)이 대표발의한 「경기도 선배시민 지원 조례안」이 경기도의회 제372회 정례회 1차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를 통해 경기도는 전국 최초로 ‘선배시민’에 대한 정의와 지원 내용이 담긴 조례를 제정하게 됐다.

조례는 ‘선배시민’을 선배이자 시민으로서 살기 좋은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권리이자 의무라는 것을 인식하고, 공동체를 위한 활동에 참여하며 후배 시민과 소통하는 노인이라고 정의했다.

그리고 이러한 선배시민이 복지·교육·문화·예술·체육 등 각 분야에서 자신의 경험과 능력을 활용해, 공동체를 위해 참여하는 선배시민 사업을 지원하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김 의원은 “이 조례는 선배시민이 공동체를 위해 자신의 경험과 능력을 활용하기 위해 참여하는 선배시민 사업을 지원하고, 이 사업의 효율적인 수행을 위해 ‘경기도선배시민지원센터’를 설치 및 위탁 운영할 수 있게 하는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며 “이 조례안이 본회의에서 통과됨에 따라 경기도는 전국 최초로 노인분들을 사회의 선배이자 시민인 선배시민이라고 지칭하고, 선배시민 활동을 지원할 수 있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김 의원은 “전국 최초로 선배시민의 의미를 정의하고, 관련 활동을 지원할 수 있는 조례가 제정됨에 따라 노인 관련 정책이 일방적인 지원을 넘어 노인분들이 자신의 전문성을 살려 참여할 수 있는 각종 사업을 지원하고, 진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며 조례 통과의 의미와 앞으로 진행될 사업에 대한 기대감을 밝혔다.

시민권과 인권, 새로운 모색

유범상 선배시민학회 회장은 이날 개회사를 겸한 인사에서 “선배시민학회는 빵과 장미를 인간의 권리로 보고, 이 권리를 가능하게 하는 실천을 모색해 왔다. 즉 노인을 실존의 권리를 가진 인간으로 보고, 이것이 가능한 빵을 시민권으로 확보하는 이론과 실천을 모색하고 있다. 오늘의 주제는 ‘생존을 넘어 실존으로’다. 이 맥락에서 그리스 로마 신화 속의 노년, 복지국가(스웨덴)의 시민과 그들의 노년, 한국 사회의 노년의 지향으로 선배시민을 모색하고자 한다”라고 말했다.   

장영란 한국외대 교수(서양고대철학)

첫 발표자로 연단에 오른 장영란 한국외대 교수(서양고대철학)는 「그리스의 노년과 돌봄: 클로노스의 오이디푸스를 중심으로」를 통해 고대 그리스 사회가 ‘노인과 노년’을 어떻게 바라봤는지, 노인에게서 어떤 덕목을 찾았는지를 소개했다.

특히 장 교수는 노년의 관조적 삶과 관련해 노년이 지닌 자기 인식과 자기 배려의 지혜, ‘탁월성에 따른 영혼의 활동’(아리스토텔레스)을 강조했다. 그는 이와 관련해 노년의 시민교육과 교양교육의 중요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장 교수는 ‘돌봄’에 관해서도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는 말과 짝을 이루는 플라톤의 ‘너 자신을 돌보라(너의 영혼을 돌보라)’라는 인식과 실천의 아포리즘을 소개한 그는 돌봄의 문제가 개인이나 가정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전체(국가공동체)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플라톤이 말했던 것처럼, 자기 자신을 돌보는 것이 곧 타자를 돌보는 것이 되고, 타자를 돌보는 것이 곧 나를 돌보는 것이 되므로, 돌봄은 상호적인 것이 돼야 한다. 돌봄을 실천한다는 것은 국가 공동체를 유지하고 국가 구성원들이 서로 연대하는 중요한 원천이다. 여기에 반드시 담보돼야 하는 게 ‘정의’다.”

최연혁 스웨덴 린네대 교수(정치학)

 

이어 최연혁 스웨덴 린네대 교수(정치학)가 「스웨덴 선배시민의 삶의 질과 도전」을 발표했다. 오랫동안 스웨덴에 거주하면서 연구하고 가르쳐왔던 최 교수는 마침 안식년을 맞아 방문교수로 한국에 나와 있다가 선배시민학회의 요청을 받고 흔쾌히 ‘복지선진국 스웨덴’의 사례를 소개하기로 했다. 그는 종합토론 때 청중들로부터 가장 많은 질문을 받기도 했다. 

최 교수는 한국 학계에 제안된 ‘선배시민’은 스웨덴에서는 ‘은퇴어른’에 해당한다고 말하면서, 은퇴어른들의 권리와 의무를 소개했다. 그가 소개한 이들의 권리와 의무란 △삶의 질이 인생주기별로 크게 변화하지 않고 살 권리 △사회복지와 보험제도를 통해 죽음의 질까지 보장받는 삶 △퇴직 전 노동임금 수준과 관계없이 최소한 보장 받을 수 있는 일상생활의 질 △헌법에 언급된 시민적 의무(참여, 준법, 세금, 양심, 반부패행위) 등이다. 

그의 발표를 따라가면, 스웨덴이 ‘은퇴어른(선배시민)’과 관련해 ‘시민으로서의 어른’, ‘평생교육 대상으로서의 어른’에 주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시민의식과 평생교육이 만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시민 개인의 차원에서 건강하고 행복한 노년의 삶을 위한 필수 사항인 셈이다. 그렇다면 국가의 역할은 무엇일까. 최 교수의 발표에서 중요한 대목은 바로 ‘죽음의 질까지 보장한다’는 부분일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사회복지와 보험제도를 통해 죽음의 질까지 보장받는 삶, 이게 사회복지정책의 영역이다. 이제 건강한 삶뿐만 아니라 죽음의 질까지 국가가 고민해야할 시점이다. 행복한 죽음이란 게 있을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반대로 불행한 죽음이 너무 많다. 행복한 죽음은 정책적으로 가능하다.”

최 교수의 논의는 스웨덴의 선배시민을 위한 평생교육제도에까지 나아갔다. ‘폴크획스콜라(Folkhögskola)’로 불리는 일종의 국민계몽운동의 일환인 절제운동을 비롯해 다양한 시민활동과 연계한 운동이 ‘학교’로 발전하고 있음을 소개했다. 여기에는 노인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과 시민대학도 있다.

특히 시민운동 전국조직이 결성돼 전국적으로 30만개의 각종 주간강좌 및 야간강좌를 제공하고 있는데, 2022년 전체 60만 참가자 가운데 60세 이상의 비율이 38%에 이른다는 보고도 흥미로웠다. 

선배시민 정책이 평생교육과 밀접하다는 메시지를 던진 최 교수는 국가가 세계시민, 국가시민으로서의 소양을 길러줘야 하며, 이는 지속적인 국가정책에 의해 담보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웨덴의 사례에서 보듯,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은 노인의 건강(정신 및 육체), 시민성 증진, 삶의 질 향상에 긍정적 기여를 한다는 그의 설명이 한국 사회에 어떻게 수용될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유범상 방송대 교수(사회복지학과)

“선배시민론은 노인 인권론이다”

마지막 발표자로 나선 유범상 방송대 교수(사회복지학과)는 「생존에서 실존으로: 한국의 선배시민과 인간적인 노년을 위한 상상」을 통해 선배시민학회의 지향점을 거듭 천명했다. 

마사 누스바움의 ‘역량접근모델’와 시몬느 드 보부아르의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라는 사유에 기댄 유 교수는 ‘노인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라는 테제를 총체성과 다양성 측면에서 심화하면서 논의를 열어갔다.

“노인은 비인간과 인간 사이 어딘가에 존재한다. 어떤 지점에 노인이 설지에 대해서는 개인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사회의 능력에 달려 있다. 그 사회가 어떤 지향과 조건을 만드는가에 따라 노인이라는 존재는 다르게 살아간다”라고 말하는 유 교수는 ‘(선배시민이) 인간으로 살아가는 길’을 모색하는 데 방점을 쳤다. 그렇기에 그가 말하는 선배시민론은 ‘생존과 실존의 문제를 집합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를 담은 이론’일 수밖에 없다. 

그의 제안이 그려내는 선배시민의 모습은 이렇다. 첫째, 노인은 인간이다. 노인이 실존의 존재다. 둘째, 노인은 시민이다. 노인은 빵을 시민권으로 획득한다. 그러므로 노인은 빵의 권리를 가진 존재다. 

물론 이런 권리는 ‘실천’을 통해서 가능하다. 그래서 유 교수는 “선배라는 말은 시민과 인간을 마중하는 존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런 점에서 선배시민이라는 개념에서 선배는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라고 말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 놓칠 수 없는 점은 이 선배시민론에 담긴 의미망이다. 유 교수는 이것을 ‘노인 인권론’이라고 말한다. “즉 노인을 인권의 관점에서 파악하고 선배시민이 정치적 존재로 자신의 삶을 살 것을 촉구”하는 게 바로 선배시민론이라는 설명이다. 여기에는 자유권, 사회권, 연대권이라는 인권의 보편적인 발전 3단계가 내포돼 있다. 

유 교수의 논의는 “노인은 과연 인권을 가진 존재가 될 수 있을까? 그리고 어떤 인권을 자신의 권리로 누릴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은 선배시민의 개념을 정의하고 그 정의를 실천하려는 노력에 있을 것”으로 마무리됐지만, 이 마지막 문구로 본다면 ‘선배시민론’은 여전히 더 많은 논쟁과 실천이 만나 확장될 여지를 열어 둔 담론임을 알 수 있다. 

덧붙인다면, 보통의 학술대회가 발표자와 토론자를 맞붙여 논의를 확장하는 형식인데 반해, 이날 선배시민학회 학술대회는 따로 토론자를 두지 않고 종합토론에서 청중이 자유롭게 의견을 제시할 수 있게 한 게 독특했다. 사회복지학과 학부생과 대학원생 그리고 실제 사회복지 현장에서 활동하는 현장 전문가들을 배려한 학회 측의 아이디어였다.
 
최익현 편집기획위원 editor@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