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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씩 치른 구두시험
한 명씩 치른 구두시험
  • 손화철
  • 승인 2023.11.20 08: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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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_ 손화철 논설위원 / 한동대 글로벌리더십학부 교수·기술철학

 

손화철 논설위원

내 수업에서는 시험 전 그 때까지의 수업 내용 전반에 걸친 20여 개의 짧은 서술형 문제를 주고 그중 세 개를 골라 시험을 치게 했다. 그런데 이제 그 정도 답변은 챗GPT도 할 수 있게 되어 학생의 유혹이 커지게 되었다. 대책을 고민하다 지필 시험 대신 구두시험을 치기로 했다. 이번 학기 수강 학생이 크게 줄고, 유학 시절 거의 모든 시험을 구두로 치렀던 경험이 있어 가능한 선택이었다.

미리 준 목록에서 서로 다른 조합의 문제 세 개와 본인이 고른 문제 하나를 포함해 총 네 문제로 시험을 구성했다. 학생은 정한 시간에 문제를 받고 옆방에서 20분 간 자신의 답을 메모한 후 나와 대화를 나누었다. 1인당 10분씩 약 800분, 이틀을 꼬박 중간고사에 쏟았다.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학생의 대답과 간단한 추가 질문을 통해 이해도를 확인하니 그 자리에서 채점이 끝났다. 추가 질문은 문제의 난이도를 조절하는 방편이 되었고, 대화 중에 학생도 자기 실수를 바로잡을 수 있었다. 점수 평균은 과거 시험의 경우와 비슷했으나 성적에 의문을 제기하는 학생은 없었다. 짧고 긴장된 시간이지만 한 명 한 명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나눈 것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일이었다. 시험 후 수업 시간 학생들의 눈이 부드러워진 것이 나만의 착각은 아니라 믿고 싶다.

이는 다음 수업 때 실시한 간단한 설문 조사에서도 일부 증명된다. 80% 이상의 학생이 구두시험에 대해 긍정적으로 답했고, 서로 다른 문제 조합으로 평가를 받았는데도 20% 이상이 이 방식이 좋은 이유(복수응답)로 ‘더 공평함’을 꼽았다. “말로 하니 더 잘 대답할 수 있었다”거나 “더 많이 공부했다”는 응답도 각각 60% 이상이었다. 물론 본인이 말을 못해 손해라거나 교수 앞이라 긴장했다는 응답도 있었고, 두 명은 공평하거나 객관적이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나도 학생만큼 긴장했던 터라, 이런 반응에 고무되었다. 그러면서 가장 원시적이고 단순한 이 방법의 효과를 따져보게 되었다. 일반적인 시험 기간에 학생은 여러 차원의 효율을 따져 공부한다. 시험에 나올 만한 내용만 공부하기도 하고, 챗GPT의 도움도 받고, 급하면 커닝 페이퍼도 만든다. 평가의 경우에는 학생 자신보다 학생이 쓴 답이 더 중요하다.

그런데 구두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은 교수자와의 일대일 대화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기계적인 효율성보다 깊은 이해를 추구하게 된다. 평가 역시 답의 정확성뿐 아니라 학생이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는지를 반영하게 된다. 학생도 자신의 대답과 교수의 되물음을 통해 자신의 이해가 어디까지 미쳐 있는지 깨달을 수 있다.

교과목 특성도 있을 것이고, 한 번의 시도로 파악 못한 문제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최신 기술의 문제 때문에 채택한 가장 오래된 평가 방법이 교육의 본질을 묻게 만들었다. 다양한 평가 기법과 신기술을 응용한 교육법이 있지만, 그중 일부는 학생을 하나의 인격체가 아닌 지식 전달의 기계적 대상으로 취급하는 듯하다.

교육에서조차 방법론에 기대어 효율을 따지고 효과를 측정하며 끝없는 혁신을 부르짖는 것이 적절한가. 그보다 고래로 내려오던 약간의 시간과 에너지, 애정을 투자하는 방식이 더 낫지 않은가. 다소 피곤하겠지만, 기말고사 때 구두시험을 다시 시도하려는 이유다.

손화철 논설위원
한동대 글로벌리더십학부 교수·기술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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