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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자에게 베풀기 캠페인이 어떨까
제3자에게 베풀기 캠페인이 어떨까
  • 김병희
  • 승인 2023.11.06 09: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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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_ 김병희 편집기획위원 /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김병희 편집기획위원

카드 결제를 할 때 보상 차원에서 일정액을 되돌려주는 페이 백을 모르는 사람은 없으리라. 대학생을 비롯한 우리 모두에게 페이 백은 익숙한 단어다. 그런데 페이 포워드, 정확히 말해서 ‘페이 잇 포워드(pay it forward)’에 대해서는 낯설게 느끼는 분이 뜻밖에도 많다. 특히 어떤 대학생은 이 말을 페이 백의 반대 개념으로 생각해 자기 돈을 적립하고 카드 결제를 하면 더 많이 되돌려주는 방식이냐고 묻기도 한다.

이 말을 번역하기 쉽지 않은데, 의역하면 ‘제3자에게 베풀기’ 정도가 될 것이다. 이 말은 자신에게 베풀어준 사람에게 되갚는 대신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선행을 뜻한다. 도움 준 사람에게 은혜를 되갚지(pay back) 않고, 누군가 자신에게 도움을 청할 때 대가를 바라지 않고 기꺼이 도와주는 베풂의 미덕이 페이 잇 포워드이다. 

스티브 잡스를 성공하게 한 요인의 하나도 미국 실리콘밸리의 페이 잇 포워드 문화였다. 대학생 시절부터 휴렛팩커드를 비롯한 여러 기업의 창업자들로부터 도움을 받았던 그는 훗날 이런 말을 남겼다. “도와달라고 청했을 때 도와주지 않는 사람을 나는 만나본 적이 없다. 사람들이 이런 경험을 하지 못한 것은 도움을 청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말은 영화 제목으로도 쓰였다. 미미 레더(본명 Miriam Leder) 감독은 「Pay It Forward」(2000)라는 영화를 만들었고, 우리나라에서도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2001)라는 제목으로 상영됐다.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다. 중학교 사회 교사인 유진 시모넷은 학기 초에 더 나은 세상을 만들 방법을 정리해 보라는 과제를 낸다. 학생 트레버는 ‘사랑 나누기’라는 아이디어를 과제로 제출한다. 한 사람이 세 명에게 감동적인 사랑을 베풀고 세 명이 다시 다른 세 명에게 사랑을 전한다면, 결국 수 많은 사람들이 사랑 나누기를 실천할 테니까 세상이 더 행복하고 아름답게 바뀐다는 아이디어였다.

선생님의 칭찬에 고무된 트레비는 사랑의 실천 운동에 몸소 앞장서지만 불량한 친구가 휘두른 칼에 찔려 죽게 된다. 언론 보도를 통해 학생의 의로운 죽음을 알게 된 수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사랑 나눔 운동을 이어가는 내용으로 영화가 끝난다.

베푼 사람에게 다시 은혜를 갚는 사람은 배은망덕한 사람보다는 훌륭하다. 하지만 도움을 베푼 사람에게 되갚는 일은 주고받음이라는 맥락에서 보면 비즈니스 관계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대신에 다른 사람에게 베풀면 그 선행이 민들레 홀씨처럼 여기저기로 확산될 수 있다.

김형석 교수의 「김형석의 100세 일기」라는 칼럼을 보면, 가난으로 고생하던 중학생 시절의 자신을 여러 차례 도와준 모우리(E. M. Mowry) 선교사가 하신 말씀을 잊지 못한다는 대목이 있다(<조선일보>, 2020. 1. 11.). “이것은 예수께서 주시는 것이다. 예수님께 갚는 것이 아니니까 너의 가난한 제자가 생기면 예수님을 대신해 주면 된다.” 김 교수는 나중에 사정이 허락되자 여러 젊은이에게 그 사랑을 베풀었다. 페이 잇 포워드가 사랑의 민들레 홀씨가 되어 날아갔다고 할 수 있다.

취업을 비롯해 많은 도움을 줬는데도 입을 싹 씻고 연락 한번 없다는 제자 때문에 속상해하는 교수님이 있었다. 교수도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기에 은혜를 모르는 제자에게 섭섭해하는 마음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페이 잇 포워드로 생각하시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변해버린 요즘 세태에서 제자로부터 감사 인사를 기대하는 자체가 무리이고, 제자들의 자세가 옳은 것은 물론 아니다. 그렇더라도 뭔가를 베풀고 나면 그 베풂을 기억 세포에 저장하지 말고 차라리 잊어버리는 것이 현명할 터다. 

일찍부터 경쟁하며 살아온 탓인지 대학생들이 경쟁에만 치중하는 현상이 너무 안타깝다. 대학 시절은 올바른 가치관을 형성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시기다. 중고생 때는 공부 경쟁에 치여 살았고, 대학 졸업 후에 사회에 나가면 또 다시 경쟁의 정글이 기다린다. 대학 시절이야말로 남에게 베푸는 가치를 배우기에 좋은 시기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베풀다 보면 과도한 이기주의를 반성하고 이타주의의 가치에도 눈뜨게 될 것이다.

각 대학에서 ‘페이 잇 포워드’ 연속 캠페인을 전개하기를 권고한다. 누군가 나에게 무엇을 해줬을 때 그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새로운 무엇을 해준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김병희 편집기획위원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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