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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 대신 ‘대화’
‘대치’ 대신 ‘대화’
  • 신희선
  • 승인 2023.10.09 09: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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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_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신희선 숙명여대 교수

“사실 좋은 대화는 시작일 뿐입니다.” 시어도어 젤딘은 『대화에 대하여』라는 책에서 ‘대화의 만찬' 프로그램을 소개한다. 잘 모르는 사람과도 진지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대화 메뉴‘를 제시하며, 단순한 ’말하기‘(talking)가 아니라 사람을 변화시키는 ’대화‘(conversation)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대화의 만찬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상대를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었다”, “나 자신에 관해 많이 배웠다”고 말한다. 서로의 생각과 마음이 전달되는 대화를 통해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달라지면 새로운 시대가 가능하다고 믿는 젤딘은 옥스퍼드 뮤즈 재단을 만들어 가정과 일터에서 대화를 통한 변화를 일으키려 한다. 

이 책을 읽으며 한국 사회의 대화 문화를 돌아본다. 서로에게 거친 언어를 쏟아붓는 정치판에서는 말만 무성하고 진정한 대화가 없다. 같은 날 국회에서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체포동의안과 한덕수 국무총리 해임건의안을 가결시킨 것만 보더라도 대치 상황이 끝이 없다. 

시어도어 젤딘은 ‘경계선에서 나누는 대화’가 특히 소중하다고 강조한다. 자신이 이해하는 것과 이해하지 못하는 경계에 서있는 경우에는 입장이 다른 사람과 나누는 대화를 통해서 비록 한계가 있더라도 함께 뜻을 모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대화를 나누기 이전에는 이해하지 못했더라도, 서로 얼굴을 마주하며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인간적 복잡성과 직면”하고 상호 존중의 감각이 되살아난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 알고 있듯이 대화의 본질은 언어만이 아니다. 서로에 대한 표정과 눈빛, 목소리와 태도를 통해, 혹은 침묵을 통해 무수한 메시지가 오고 간다. 결국 대화는 “손을 잡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삶의 여러 측면으로 친밀감을 확장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생각이 다른 사람과의 대화는, 쉽지 않을지라도 시작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역사를 보면 적과도 대화하고 협상해 왔다. 지금의 한국 정치는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힘으로 제압하려는 ‘대치’(對峙) 국면이 지속되고 있다. 입장이 다르더라도 서로를 인정하며 대화로 문제를 풀어가는 ‘국민을 위한’ 정치는 정녕 불가능한가? 19일간 단식 끝에 병원으로 긴급 이송된 이재명 대표를 두고 법무부장관과 여당의원들이 던진 무참한 말은 조롱의 극치였다. 계속해서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정국 상황에 많은 시민들이 심각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다.

갈등은 힘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하는 가에 따라 증폭되기도 하고 의외로 쉽게 해결될 수도 있다. 말처럼 간단한 일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말로 풀어가야 한다. 지금 정치가 해야 할 최우선 과제는 대화의 자리를 복원하는 일이다. 시어도어 젤딘의 대화를 위한 질문 중 하나를 던진다. “당신이 느끼는 연민의 한계는 어디까지입니까?”

지난 8월 최재천 교수는 서울대 졸업식 축사에서 지배 엘리트에게 일침을 놓았다. “여러분의 선배들은 입으로 번드레하게 공정을 말하지만 실천하지 않는다.” 무감각한 기계적 공평이 아니라 속 깊고 따뜻한 공정이 표준이 되어야 한다며, 졸업생에게 ‘공정하고 따뜻한 리더’가 되어달라고 당부했다.

마사 누스바움도 『시적 정의』에서 법을 다루는 사람이 충분히 이성적으로 판단하기 위해서는 상상력과 공감력이 필요하고, 기술적인 능력만이 아니라 휴머니티를 위한 능력을 배워야 한다고 하였다. 그렇지 않으면 공평성은 우둔해지고 정의는 맹목적이 된다고 했다.

법정만이 아니라 정치 현장도 따스한 감정이 필요하다. 상대방의 입장에 자신을 놓아 보고, 상대에게 고통을 주고 있는 사소한 사정까지도 진지하게 느껴보려는 노력, 서로 다른 생각을 이해하려는 대화를 당장 시작해야 한다. ‘대치’ 대신에 ‘대화’가 미래를 살린다.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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