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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의 아나키스트 열전 158] ‘야성을 회복해야 문화를 회복할 수 있다’
[박홍규의 아나키스트 열전 158] ‘야성을 회복해야 문화를 회복할 수 있다’
  • 박홍규
  • 승인 2023.09.25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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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의 아나키스트 열전 158 게리 스나이더①
게리 스나이더. 사진=트위터

올해도 끔찍한 더위를 겪었지만, 이제는 이게 매년 겪을 일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덤덤해져서 더 끔찍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모두들 여전히 에어컨을 두 세대나 켜대고 자가용을 굴려 국내여행을 하고 비행기를 타고 해외여행을 하는 등등, 기후위기에 악영향을 준다는 행동을 조금도 망설임 없이, 아니 도리어 더 열심히 하는 것일까? 

코로나19 이후 에어컨커녕 선풍기 켜는 것도 조심스럽고, 모든 국내외 여행을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어리석은 행동일까? 코로나19 3년 동안의 ‘유폐’ 생활의 고통을 여행으로 풀려고 한다는 해석도 있지만, 코로나19가 자연 파괴로 인한 것이었음을 벌써 잊고 다시 파괴에 나섰단 말인가? 

그래서인지, 오래 전 1970년부터 문명의 파괴로부터 자연을 보호하고, 인간을 ‘야생적인’ 자아와 다시 연결하고, 자기 묵상, 공동체 및 자연에 내재된 느낌으로 되돌리는 삶을 살고 있는 게리 스나이더가 더욱 그립다.

올해 아흔세 살이지만 캘리포니아 태평양 연안을 남북으로 뻗는 시에라네바다 산속에서 한겨울에도 난방 없이 홀로 사는 스나이더는 자기처럼 사는 사람이 동서고금에 많다고 하면서 별일이 아니라고 해서 좋다. 홍보를 피해 매일 좌선을 하며 평생 생태학적 사고를 지지하며 대승불교, 생물지역주의, 사회적 아나키즘으로 그의 관점과 철학적 방향을 발전시켜왔다.

1930년 대공황 초기에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태평양 북서부 시골 농장에서 자라 인디언 신화와 시, 선과 도교를 공부한 그는 “개울이 질식하고 송어가 죽고 길이 죽었다”며 백인의 인디언 학살과 자연 파괴를 혐오하면서 반세기 이상 산속에서 외롭게 살고 있다. 시집 『거북섬』(Turtle Island)에 실린 ‘먼지투성이 교정기’(Dusty Braces)에 나오는 다음 시는 그의 20세기 초엽 성장과 함께 목격한 자연파괴를 노래한다. 

“네 새끼들/ 내 아버지/ 와 할아버지, 목이 뻣뻣한/ 펀치, 광부, 흙 농부, 철도 노동자//
쿠거와 그리즐리를 죽였다 // 아홉 활. 당신의 가려운/ 내 신발도,// -당신의 바다 떠돌이/
마음씨 좋은 아들” 

게리 스나이더의 시집 『거북섬』 표지

벌목꾼·산불 감시원·선원 등으로 일한 노동자 시인

어린 시절 시골에 살면서 스나이더는 동물이 죽어가고 자연이 파괴되는 것을 목격했다. 도로를 만들기 위해 언덕이 불도저로 무너지고 태평양 북서부의 숲이 벌목 트럭을 타고 마술처럼 떠내려가는 것을 보면서 경이로움과 함께 자연보호 의식이 생겼다. 그리고 인디언과의 교류를 통해 그들의 생각과 관습을 이해하게 되었다.

뒤에 스나이더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이른바 원시인을 멸시하고 자본주의가 자연과 황무지의 파괴에 미치는 영향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점을 비판했다.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시를 사랑하며 쓰기 시작한다.

위에서 본 시집에 실린 「시인으로서」에서 그는 “작은 시를 쓰는/ 지구 시인들은 누구의 도움도 필요하지 않다”고 쓴다. 10대 초반에는 칼 센드버거(Carl Sandburg)와 에드가 리 마스터스(Edgar Lee Masters)의 시를 즐겨 읽었고 17세에는 D. H. 로렌스(D. H. Lawrence)와 월트 휘트먼(Walt Whitman)의 시를 즐겨 읽었다.

‘시인의 임무는 숲을 지키는 것’이라 하며 스스로 선택한 벌목꾼, 산불 감시원, 선원 등으로 일한 노동자 시인 스나이더는 1957년 화물선을 타고 일본에 건너가 임제종의 선불교를 공부했지만, 출가가 형식이라는 이유로 거부하고 1969년 일본에서 돌아와 산속에 들어가 평화와 환경운동에 헌신하며, 동양철학과 불교의 대중화에 공헌하였다. 그래서 그에 의하면 시인은 자신을 위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해 말한다.

그는 당신은 당신 자신을 넘어서야 한다고 우리에게 말한다. 그가 좋아하는 일본의 13세기 선사 도겐(道元)처럼 그는 “우리는 자아를 잊기 위해 자아를 연구한다. 그리고 당신이 자아를 잊을 때 당신은 모든 것과 하나가 된다. 그래서 시는 작은 자기 용어로 자기표현을 할 수 없다”고 한다. 스나이더는 인간의 관심을 넘어 자연의 중요성을 표현하고자 하며, 심지어 그의 시는 야생 자연의 입장도 받아들인다.

게리 스나이더의 『야생의 실천』 표지

‘지역에서 살며 일해야 문화를 키울 수 있다’

1970년부터 20년 동안 자신의 삶을 기록한 『야생의 실천』은 야생과 접촉하고 주변의 들판을 “야생 잠재력이 완전히 표현되고 다양한 자신의 질서에 따라 번성하는 생물과 무생물의 다양성”의 장소로 살아가는 사회경제적 생활을 추구한 책이다. 지역에서 살며 일해야 문화를 키울 수 있고, 야성을 회복해야 문화를 회복할 수 있다고 하는 생물지역주의(bioregionalism)를 주장하면서 “식물과 동물의 고통을 이해하고 느끼며 모든 생물체에 대한 존중감을 가지는” ‘거북섬의 관점’을 제시한다.

위에서 본 그의 시집 제목이기도 한 거북섬이란 인디언들이 미국을 가리키던 이름이다. 인디언적 관점의 생물지역주의는 인간이 자의적으로 구분한 정치적·행정적 지역이 아니라 장소, 가령 분수령이나 산등성이 등과 같은 지형이나 기후 패턴 혹은 식생대에 따라 다시 구분하고, 이런 생태지리적 특성과 그것에 따른 최적의 생활양식을 통해 장소에 헌신하는 재거주(reinhabitation)를 실천하는 운동이다.

거북섬에서 재거주하는 삶의 목표는 인디언의 생활방식을 배우며 장소에 헌신하는 자연친화적인 삶을 살면서 장소에 대한 ‘원주민성’(nativeness)을 갖는 것으로, 그것은 후손에게까지 이어져 이상적 공동체를 형성해야 한다. 이 공동체에서 실현하는 자연 생태계와 인간의 이상적인 공존이야말로 환경 위험과 생태계 파괴를 막을 수 있다고 역설하는 그는 「아이들을 위하여」에서 거북섬에서의 재거주가 지속되기를 바라며 후손들에게 다음의 세 가지를 조언한다. “함께 머물고/ 꽃을 배우며/ 가벼이 떠나라.”

게리 스나이더는 올해 아흔 세살이다. 사진=트위터

대학 교단에 섰지만 평생 노동자로 살았다

스나이더는 대학 교단에 서기도 했으나 그때도 여전히 노동을 했으니 교수직은 부업에 불과했다. 그 때문인지 대학에 대해 남긴 글이 거의 없고, 사제지간이니 학맥이니 학파니 학회니 학술논문집이니 하는 것과도 무관했다. 그러니 부모나 친구처럼 그도 평생 노동자로 살아왔다.

스나이더는 사회주의자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사회주의에 기울어 마르크스의 영향을 받았지만, 자본주의하의 노동이 인간을 소외시키기는커녕 소외를 피하는 방법이라고 하면서 인간 중심 사고와 생산성 추구가 문제라고 본다. 따라서 자본주의는 물론 사회주의도 생산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비판한다.

“저들은 복잡한 것들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우리를 수천명씩 사로잡아/ 일을 시킨다/ 이 마을과 길로써/ 세상은 엉망이 되어 간다.” 스나이더의 노동관도 선불교에서 말하듯이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라”(一日不作 一日不食 일일부작 일일불식)는 것이다. 그에게 노동은 고전보다 중요하다. “무슨 소용인가, 밀턴,/ 우리의 나락한 조상,/ 과일 먹은 사람들의 실없는 이야기가.” 선불교처럼 노동을 수행으로 보는 스나이더는 나아가 돌길을 만드는 노동을 하면서 그것을 시와 같은 예술의 창작으로 본다.

“네 마음 앞에 이 단어들을/ 돌을 놓듯이 두어라/ 단단히 맞게, 손으로/ 장소에 맞게, 꼭/ 공간과 시간 안에 있는/ 마음의 몸 앞에.” 그래서 “내가 무엇을 배웠던가/ 내가 몇 가지 도구를 적절히/ 사용하는 것 외에 무엇을 배웠던가?” 낫과 괭이와 삽으로 충분한 나도 배울 것이 없다.

스나이더는 기술을 거부하지 않지만 인간이 기술의 노예가 아니라 주인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의 규모가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이 점에서 그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를 쓴 에른스트 슈마허의 불교적 노동관과 통한다. 원자력과 같은 거대산업은 중앙집권으로 지역성을 파괴하고 자연환경과 생명을 파괴하기에 반대한다.

박홍규 영남대 명예교수∙저술가
일본 오사카시립대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하버드대, 영국 노팅엄대, 독일 프랑크푸르트대에서 연구했고, 일본 오사카대, 고베대, 리쓰메이칸대에서 강의했다. 현재는 영남대 교양학부 명예교수로 있다. 전공인 노동법 외에 헌법과 사법 개혁에 관한 책을 썼고, 1997년 『법은 무죄인가』로 백상출판문화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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