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9 01:00 (월)
“대학이 사라진다”…교수 역할 과감하게 바꿔라
“대학이 사라진다”…교수 역할 과감하게 바꿔라
  • 김재호
  • 승인 2023.09.27 09: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자 인터뷰_『초인류』(웅진지식하우스 | 380쪽) 쓴 김상균 경희대 교수

교수가 제시하는 대략의 지도를 훑어본 후에는

학생 스스로 디지털 매체를 장대하게 탐험하며 배워야 한다.

의문을 품기 위해서는 더 많은 이들,

더 다양한 이들과 만나고, 충돌해야 한다.

『초인류』의 핵심은 인간이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인공 진화기’에 들어섰다는 것이다. 그 과정을 존재·마음·관계·행동의 진화로 그려냈다. 김상균 경희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인공지능을 포함해서 이제껏 인류가 만든 기술이 무엇인지, 왜 그 기술을 만들었는지, 그 기술이 인류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줄지를 얘기하고 싶었다”라며 “마음을 탐험하는 자가 기술을 통해 바라본 인류의 오늘과 내일, 그게 이 책”이라고 설명했다. 

4장 행동의 진화 중 ‘대학이 사라진다’가 인상적이다. 첫째, 교수의 역할을 과감하게 바꾼 대학이 등장한다. 이제 교수는 멘토·촉진자·데이터 분석가·첨단기술 활용 전문가 역할을 한다. 둘째, 학습 주체가 다변화·세분화하면서 생소한 강의명의 과목이 늘어날 것이다. 셋째, 전달식 강의는 절반 이상 사라지고, 온라인 플랫폼·자동화된 튜터가 하드스킬을, 교수는 소프트 스킬을 가르친다. 

그렇다면 기초학문에서도 정말 그러할지 의문이다. 전통적 대학의 위상인 기초학문(순수과학, 문사철 등) 분야에서는 여전히 고전과 텍스트 해석, 기존 법칙에 대한 이해와 시행착오 등이 중요하다. “기초학문의 중요성은 여전하고, 지속하리라 예상한다. 그러나 기초학문을 배우는 과정에서 현재 방법이 그대로 통하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학생들이 기초학문 영역에서부터 자신의 관점을 갖고, 여러 의문을 품기를 바란다. 기초학문의 텍스트 자체, 기초학문을 배우는 과정, 둘 모두에 관해 의문을 품었으면 한다.” 

김 교수는 “교수가 제시하는 대략의 지도를 훑어본 후에는 학생 스스로 디지털 매체를 장대하게 탐험하며 배워야 한다”라며 “의문을 품기 위해서는 더 많은 이들, 더 다양한 이들과 만나고, 충돌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비효율과 헤맴을 통해 인류가 더 높은 창의와 더 다양한 창발에 도달하리라 믿는다.”

중앙대에서 제어계측공학을 공부하고, 연세대에서 산업공학으로 석사, 같은 대학원에서 인지과학으로 박사를 했다. 강원대 산업공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다수의 기업과 프로젝트를 진행했으며, 갤럭시코퍼레이션, 게임문화재단, 롯데정보통신, CJ나눔재단의 사외이사를 맡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메타버스: 디지털 지구, 뜨는 것들의 세상』, 『메타버스 2: 10년 후 미래를 먼저 보다』, 『게임 인류』, 『브레인 투어』, 『기억 거래소』 등이 있다.

 

모든 영역 수업에 필요한 철학적 접근

특히 『초인류』는 철학·철학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김 교수는 본인이 철학자는 아니지만, 모든 영역의 수업에 철학적 접근이 담겨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러면서 버트런드 러셀(1872∼1970)의 말을 인용했다. “과학은 당신이 아는 것이고 철학은 당신이 모르는 것이다.” 김 교수는 “기술과 과학에 관한 인류의 이해, 철학에 관한 인류의 이해, 두 이해 사이의 간극이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라며 “그 간극을 좁혀야 인공 진화 시대에 우리가 진정한 인간다움에 도달하리라 믿는다. 그리고 그 간극을 좁히기 위해 배움의 터전에 더 많은 철학적 고민을 담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인공 진화기에 나타날 철학적 이슈는 크게 네 가지다. 인간 존재·인간의 주체성·사회적 문제·지구 생태계. 『초인류』에는 김 교수의 수업법이 종종 등장한다. 바로 게이미피케이션, 롤플레잉, 시뮬레이션 등의 교육 방식이다. 토론을 할 경우, 토론 카드를 활용해 토론자들이 서로 정서적 반응을 피드백하도록 이끌고 있다. 그 목적은 학생들이 철학적 상황·맥락에 자신을 온전히 몰입하게 하고, 자신의 내면·본질적 자아와 소통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아울러, 다양한 견해를 받아들이고 소화하면서 새로운 생각을 낳게 하려는 것이다. 

“올해 봄, 벨기에에서 한 남성이 인공지능 챗봇과 수개월의 대화 끝에 인간 존재에 관한 환멸을 느끼며 자살을 택했다. 이를 기술과 인간이 공존하는 시대의 창발로 바라보고, 앞으로 넘어가도 될지에 관한 의문이 든다.” 디지털로 모든 것이 분석되는 환원주의보다 만남과 관계의 창발이 더욱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김 교수는 이같이 답했다. “환원주의보다 창발적 접근이 더 중요하다고 나도 믿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가 비선형성, 예측 불가능성이라는 창발의 본질이 가져올 문제를 간과하고 있다는 생각도 지우기 어렵다. 일례로, 인공지능이 창발적으로 행동할 경우, 그 행동에 대한 윤리적 책임을 누가 질지가 모호하다.”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창발로 인해 문제점도 발생하고 있다. 이미지=픽사베이

 

깊고, 지속적인 관찰과 사회적 논의 과정

그렇다고 견고한 틀 안에 모든 것을 담아 창발을 멈추게 한다는 뜻은 아니다. 김 교수는 창발의 필요조건으로 두 가지를 제시했다. “깊고, 지속적인 관찰과 그에 따른 사회적 논의 과정이다. 관찰은 귀찮은 감시가 아니며, 사회적 논의는 불필요한 브레이크가 아니다. 관찰과 논의를 던져버리고 무작정 달리기보다는 감시와 논의를 짊어지고 지금보다 좀 더디게 나아가도 좋다. 창발은 자연의 본질이고, 예측 불가능한 초월적 가치를 만들 수 있으나, 인류가 수용하며 따라갈 수 있게 속도를 조절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초인류』에서 또한 인상적인 대목은 자신의 감정 돌보기를 위한 삶의 동반자로서 글쓰기였다. 김 교수에게 글쓰기란 어떤 의미일까? “그저 쉬운 표현, 짧은 문장, 명확한 의도로 쓰고자 노력한다.” 그의 필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책을 쓰기 전에는 목차를 잡는 데 시간을 오래 보낸다. 메모장에 적지 않더라도 머릿속에서 뼈대가 다 잡힐 정도로 오래 고민한다. 뼈대가 잡히면, 그 뒤에는 책상에 붙어서 살을 붙이면 된다.”

앞으로 김 교수는 마음을 중심으로 기술·배움·비즈니스·사회를 해석하고, 변화를 이끄는 작업을 이어가려 한다. “최근 들어, 돈과 경제를 중심으로 인간의 욕망, 심연을 다룬 방송용 예능 콘텐츠를 기획하는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기술을 통해 교육의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한 플랫폼 개발에도 참여하고 있다. 요컨대, 학교에 있는 연구자이지만, 논문이나 전문서에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매체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다. 무리한 도전, 영역의 침범으로 비칠 수 있으나, 그게 내가 꿈꾸는 삶의 여정이다.” 

*** 아래는 인터뷰 전문이다. 

△『초인류』를 매우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이 책을 집필하시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왜냐하면, 책이 다루는 범위가 문학부터 역사, 철학, 언어학, 과학, 기술 등 광범위하고, 사진이나 그래프가 하나도 없는데도 술술 읽혀서, 애초에 ‘초인류’라는 키워드로 방향을 잡고 쓰신 것 같습니다. 책에 인용되는 임철우의 『그 섬에 가고 싶다』부터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까지 인용되는 작품들도 ‘초인류’와 아주 잘 어울립니다. 심지어 최근 기업들의 사례와 전략 등도 ‘초인류’로 수렴됩니다.

기술이 인간, 인류에게 미치는 영향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이 만든 기술이기에, 인간이 그 기술의 이면을 모두 알고 통제하리라 믿고 있는 듯합니다. 그래서 그런 기술을 얕잡아보거나 눈앞의 용도 위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는 시기가 짧아지고, 개별 기술이 서로 얽히면서 우리가 예측하지 못했던 결과가 인류 사회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인간이 만든 기술, 기술이 만든 인간. 이런 관점으로 상황을 해석해 보고 싶었습니다.

인공지능, 메타버스, 뇌-컴퓨터 연결, 로봇, 생명공학, 양자컴퓨팅 등의 기술은 신기하고 편리한 제품을 만드는 데 쓰이는 용도를 넘어섰습니다. 인간의 정신과 육체를 새로운 단계로 확장하고 있습니다. 인간 스스로 자신이 만든 기술을 통해 인공 진화 단계에 진입했다고 바라봤습니다. 기술 기반의 인공 진화가 인류를 어떤 존재로 바꾸고 있는지, 인류는 무엇을 욕망하고 느낄지, 인간 사회의 관계는 어떻게 변화할지, 우리는 어떻게 배우고 일하며 소비할지, 이런 주제들을 거시적, 총체적으로 살펴보고 싶었습니다. 물론, 벅차고 무리한 시도였습니다. 제가 그 모든 내용을 충분히 풀어낼 이야기꾼이라고 자신하며 저지른 시도는 아니었습니다. 그저 누군가는 부족한 조각이라도 모아서 인공 진화의 화두를 던져야 한다는 필요 의식이 있었습니다.

그런 필요 의식을 바탕으로, 제가 30년에 걸쳐서 연구하고 경험한 여정을 정리하는 마음으로 집필했습니다. 이쯤에서 잠시 저에 관해 얘기하겠습니다. 인간은 동일한 현상을 모두 다르게 인식하고 해석합니다. 따라서, 제가 어떤 인식과 해석의 배경을 통해 인공 진화를 바라보는지 소개하는 게 필요합니다.

20대 중반, 저는 사업을 했었습니다. 약을 달고 살 정도로 몸과 마음이 힘든 시절이었습니다. 당시 저를 힘들게 했던 원인은 기술, 제품보다 사람에 있었습니다. 동료와 고객, 그들이 저를 힘들게 했습니다. 그들을 원망하기도 했지만, 몇 년이 지나고 나니, 저를 힘들게 했던 원인이 그들에게 있지 않았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들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던 제 부족함이 저를 힘들게 했음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저를 갉아 먹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제 곁에 있었던 동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런 부족함을 채우고 싶어서, 인간의 마음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학부 졸업 후 공부한 학문이 산업공학, 인지과학, 교육공학인데, 그 중심에는 언제나 인간의 마음이 있었습니다.

이 책은 마음을 통해 인간을 탐험해 온 제 인간 과학(human sciences) 여정을 담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기술을 중심으로 인간을 풀어보고자 했습니다. 제가 받은 하나의 질문, 하나지만 여럿이 반복해서 물어오는 질문이 제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그 질문에 답하고 싶었습니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밀어내지 못할 직업은 무엇인가요?” 이게 그 질문입니다.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질문의 주어는 인공지능입니다. 인간이 만든 기술인 인공지능이 주어이고, 인간은 목적어입니다. 인간이 기술을 만들었는데, 그 기술은 역으로 인간을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은 세상의 물음에 관한 저자의 답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을 통해 인공지능이 밀어내지 못할 직업이 무엇인지 답하지는 않습니다. 그보다 저는 그 질문에 담긴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봤습니다. 그 마음에는 자신과 가족의 오늘과 내일에 관한 걱정, 불안, 두려움이 담겨있었습니다. 슬프고 안타까웠습니다. 인간이 만든 기술을 인간이 두려워하는 현실.

인공지능을 포함해서 이제껏 인류가 만든 기술이 무엇인지, 왜 그 기술을 만들었는지, 그 기술이 인류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줄지를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인류의 미래를 논한다고 해서 수십 년, 수백 년 뒤의 얘기를 하지는 않습니다. 그 미래는 인류의 오늘에 이미 닿아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탐험하는 자가 기술을 통해 바라본 인류의 오늘과 내일, 그게 이 책입니다. 인류가 기술을 통한 인공 진화로 넘고자 하는 선, 그 선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를 얘기하고자 이 책을 준비했습니다.

책에서 여러 문학작품의 문장을 인용한 이유는 이렇습니다. 고전과 현대문학에서 그려낸 사회의 단면을 인공 진화의 시대에 투영해서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투영된 모습을 통해 독자 스스로 새로운 질문을 품기를 기대했습니다.

△“학생들은 정형화된 이론이나 지식은 온라인 플랫폼, 자동화된 튜터 등을 통해 배우게 되며, 앞서 언급했듯이 멘토, 촉진자, 데이터 분석가 등의 역할을 하는 교수들을 통해 소프트 스킬을 키우게 됩니다.”(295쪽), “현재 형태의 교수라는 직업은 당연히 소멸하리라 봅니다. 다만 현재 역할과는 완전히 달라진 역할의 교수가 등장하리라 봅니다. 그때가 되면 교수가 아닌 다른 직함으로 그 직업을 부를 수도 있습니다.”(323쪽)이라고 적으셨습니다. 매우 공감이 갑니다. 교수의 역할이 “티칭에서 코칭으로 변화”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전통적 대학의 위상인 기초학문(순수과학, 문사철 등) 분야에서는 여전히 고전과 텍스트 해석, 기존 법칙들에 대한 이해와 시행착오 등이 중요합니다. 기초학문 분야에서도 학생과 교수의 변화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보시는지요?

기초학문의 중요성은 여전하고, 지속하리라 예상합니다. 그러나 기초학문을 배우는 과정에서 현재 방법이 그대로 통하지는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학생들이 기초학문 영역에서부터 자신의 관점을 갖고, 여러 의문을 품기를 바랍니다. 기초학문의 텍스트 자체, 기초학문을 배우는 과정, 둘 모두에 관해 의문을 품었으면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생들이 스스로 움직여야 합니다. 교수가 제시하는 대략의 지도를 훑어본 후에는 자기 스스로 디지털 매체를 장대하게 탐험하며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의문을 품기 위해서는 더 많은 이들, 더 다양한 이들과 만나고, 충돌해야 합니다. 교수가 통제하는 좁은 강의실에서 이런 경험이 발생하기란 어렵습니다.

장대한 탐험, 방대한 만남과 충돌을 통해 기초를 쌓았으면 합니다. 입시교육을 통해 몸에 밴 받아먹기 배움에서 벗어났으면 합니다. 지적 여정의 시작인 기초학문에서부터 그렇게 하면 좋겠습니다. 물론, 더디고, 시행착오가 많은 방법입니다. 그러나 각종 기술이 미친 듯이 효율화, 최적화를 추구하는 시대에 인간의 배움은 일편 비효율적인 헤맴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장기적으로는 이런 비효율과 헤맴이 인간을 더 인간답게 완성하리라 믿습니다. 비효율과 헤맴을 통해 인류가 더 높은 창의와 더 다양한 창발에 도달하리라 믿습니다.

△파트 4 ‘행동의 진화’에서 ‘철학이 전부이다’를 잘 읽었습니다. 특히 “인간이 자유로워지고자 이룩한 인공 진화가 오히려 인간의 자유를 무너뜨릴 위험이 있습니다”가 흥미로웠습니다. 아울러, ‘기술 결정론과 인간 선택론’을 대비시키셨습니다. 코딩하는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인해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자신의 직업이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고도 합니다. 앞으로 어떤 분야의 철학 교육(예를 들어, 윤리학, 분석철학, 형이상학, 교양철학, 종교철학, 문화철학 등) 혹은 어떤 방식의 철학 교육(예를 들어, ‘정의란 무엇인가’ 강의 같은 집단 토론 방식 혹은 소규모 관점과 역할 바꾸기, 내재된 보편 도덕 문법의 깨우침 등)이 필요할까요?

기자님께서 언급하신 분석철학, 형이상학, 교양철학, 종교철학, 문화철학 등의 모든 분야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기술을 통해 신의 초월성에 접근하는 상황에 관해 종교철학적으로 살펴봐야 합니다. 시공간의 물리적 특성이 틀어지고 존재에 관한 새로운 접근을 보여주는 메타버스와 로봇에 관해 형이상학적으로 고민해 봐야 합니다.

우리가 고민해야 할 영역의 극히 일부이겠으나, 저는 인공 진화기에 나타날 철학적 이슈를 크게 네 가지로 나눠서 생각했습니다. 첫째, 인간 존재에 관한 고민입니다. 생명공학, 나노기술의 발전은 인간 뇌의 특정 영역이나 기능을 활성화하거나, 생체적 형질을 바꾸는 데 쓰이게 됩니다. 이해력과 사고 수준을 확장하기 위한 시도인데, 여기서 두 가지 문제가 발생합니다. 윤리적으로 인간 생체의 어느 부분까지 조작할 수 있느냐의 문제, 개인의 경제력에 따라 생체 조작을 활용하는 수준이 달라지면서 부의 불균형이 지능의 불균형으로 이어질 수 있게 됩니다. 장기적으로는 장애, 질병 치료 등의 제한된 목적에 대해서만 이런 기술이 적용되도록 규제하는 상황이 되겠으나, 그런 규제를 피해 가려는 이들이 증가할 것이어서, 이에 관한 인식 확산 및 교육이 중요한 테마로 떠오르리라 예상합니다.

또한, 인간, 기계, 자연계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인간이라는 존재의 의미를 탐구하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해집니다. 마음, 의식에 관해 인간, 기계, 동식물의 차이점을 탐구하여, 지구상에 공존하는 서로 다른 존재가 새로운 세상에서 어떻게 연결될지 판단하는 철학적 기준을 이해해야 합니다.

둘째, 인간의 주체성에 관한 고민입니다. 생명공학, 나노기술, 인공지능, 양자 컴퓨팅,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메타버스, 사물 인터넷, 로봇, 이 책에서 주로 언급한 기술들입니다. 이런 기술이 인류 사회 전반에 녹아들면서, 인류가 기술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되어 인간의 책임감이 줄어들고 기술의 출력물을 수동적으로 수용하게 됩니다. 인간이 자유로워지고자 이룩한 인공 진화가 오히려 인간의 자유를 무너트릴 위험이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술 결정론과 인간 선택론 사이에서 인간이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셋째, 사회적 문제에 관한 고민입니다. 인공 진화와 관련된 제반 기술의 급속한 발전과 적용은 개인정보 보호, 보안, 오용 또는 의도하지 않은 사고 등 수많은 윤리적 이슈를 만들게 됩니다. 또한, 거대한 기술 중심 사회에서 나타나는 권력 편중, 불평등, 불균형 등이 새로운 갈등 요인으로 대두합니다. 이러한 사회적 딜레마를 이해하고 해결하기 위해 법과 제도가 대규모로 정비되어야 합니다. 이에 관한 사회 구성원의 의식 수준을 높이고, 함의를 이끌어 내기 위해 인공 진화의 사회적 문제에 관한 교육이 필요합니다.

넷째, 지구 생태계에 관한 고민입니다. 인공 진화를 통해 인류가 지구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더 방대해집니다. 또한, 인류는 뇌-과학 인터페이스, 인공지능 기술 등에 힘입어 동물의 생각과 감정을 일정 부분 읽어낼 수 있게 되어, 지구상에 있는 동식물을 대하는 관점이 지금과는 크게 달라지리라 예상합니다. 미래 인류를 위한 환경 보존이라는 단순한 목표를 넘어서서, 지구 생태 전반에 인류가 어떤 역할을 할지를 답하기 위해 준비해야 합니다.

제 수업에서는 이런 주제에 관한 교육 방식으로 게이미피케이션, 롤플레잉, 시뮬레이션 등을 주로 택하고 있습니다. 철학적 이슈가 때로는 내 삶과 멀어 보이거나, 깊게 들어가기에는 불편한 마음이 드는 경우가 적잖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이 좀 더 편하게 몰입할 수 있도록 그런 방식을 쓰고 있습니다. 일례로, 토론할 때는 토론카드를 활용해서 토론자들이 서로 정서적 반응을 피드백하도록 이끌고 있습니다. 수십 명의 학생이 하나의 상황을 재현하면서, 각자의 역할에 빠져들어 고민을 공유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이렇게 접근하는 목적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학생들이 철학적 상황, 맥락에 자신을 온전히 몰입하게 하는 것. 둘째, 자신의 내면, 본질적 자아와 소통하게 이끄는 것. 셋째, 다양한 견해를 받아들이고 소화하면서 새로운 생각을 잉태하는 것입니다.

저는 철학을 체계적으로 공부하지 않았고, 철학자는 더욱더 아닙니다. 그러나 철학적 접근은 제 수업뿐만 아니라 모든 영역의 수업에 담겨야 한다고 믿습니다. "과학은 당신이 아는 것이고 철학은 당신이 모르는 것이다." 버트런드 러셀이 남긴 말입니다. 저는 기술과 과학에 관한 인류의 이해, 철학에 관한 인류의 이해, 두 이해 사이의 간극이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간극을 좁혀야 인공 진화 시대에 우리가 진정한 인간다움에 도달하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그 간극을 좁히기 위해 배움의 터전에 더 많은 철학적 고민을 담아야 합니다.

△삶의 불확실성과 죽음에 관한 관점 변화에 대해서 서술하시면서 “지구라는 생태계가 거대한 기계 속에서 측정 및 분석되고, 시뮬레이션되면서 인류가 품은 불확실성의 상당 부분은 해소됩니다.”(107쪽)라고 적으셨습니다. 이 대목에선 디지털로 모든 것이 분석된다는 ‘환원주의’가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환원주의보다는 서로 다른 것이 부딪쳐 발생하는 ‘창발’이 더욱 중요한 것 같습니다. 물론, 김 교수님께서 이 부분을 간과했다는 게 아니고요. ‘관계의 진화’와 경험의 다양성과 도전 등에서 계속 강조하고 계십니다. 제가 궁금한 것은, 만약 창발이 중요하다면 더 나은 창발을 위해 필요한 조건은 무엇일까요? 이에 대한 김 교수님의 고견을 여쭙니다. 

질문하신 대로 지구라는 생태계가 거대한 기계를 통해 측정, 시뮬레이션 되는 부분이 지금보다 증가하리라 예상합니다. 인류가 현 단계에서 품은 불확실성의 많은 면이 빠른 속도로 해소되리라 기대합니다. 이제껏 과학과 기술의 역사는 언제나 그런 과정이었습니다. 밝혀진 후에는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나, 밝혀지기 전까지는 신비의 영역이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의문이 풀리지는 않으리라 봅니다. 해소 뒤에 더 큰 의문들이 등장하리라 예상합니다. 본디, 인간의 삶이란 작은 질문을 풀면서 더 큰 의문을 품게 되는 아이러니의 연속입니다.

기자님의 말씀처럼, 환원주의보다 창발적 접근이 더 중요하다고 저도 믿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가 비선형성, 예측 불가능성이라는 창발의 본질이 가져올 문제를 간과하고 있다는 생각도 지우기 어렵습니다. 일례로, 인공지능이 창발적으로 행동할 경우, 그 행동의 윤리적 책임을 누가 질지가 모호합니다. 올해 봄, 벨기에에서 한 남성이 인공지능 챗봇과 수개월의 대화 끝에 인간 존재에 관한 환멸을 느끼며 자살을 택하기도 했습니다. 이를 기술과 인간이 공존하는 시대의 창발로 바라보고, 앞으로 넘어가도 될지에 관한 의문입니다.

물론, 견고한 틀 안에 모든 것을 담으려 한다면 우리 사회의 창발은 멈추게 됩니다. 그러나 두 가지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깊고, 지속적인 관찰과 그에 따른 사회적 논의 과정입니다. 관찰은 귀찮은 감시가 아니며, 사회적 논의는 불필요한 브레이크가 아닙니다. 관찰과 논의를 던져버리고 무작정 달기기보다는 감시와 논의를 짊어지고 지금보다 좀 더디게 나아가도 좋습니다. 창발은 자연의 본질이고, 예측 불가능한 초월적 가치를 만들 수 있으나, 인류가 수용하며 따라갈 수 있게 속도를 조절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에필로그의 ‘창을 여는 열쇠’에서 창의성과 도전 정신 함양, 경험의 다양성 확보, 자신의 감정 돌보기를 강조하셨습니다. 특히 자신의 감정 돌보기에서 삶의 동반자와 글쓰기를 강조하는 대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책에 담긴 가상과 미래에 대한 이야기들도 재미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김 교수님에게 글쓰기란 어떤 의미이며, 더 나은 글쓰기를 위한 팁이 있다면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글을 읽어보면 그 사람, 작가가 보입니다. 글은 나를 투영한 결과물입니다. 글만큼 누군가를 온전히 투영하는 매개체가 있는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삶을 투영하는 가장 온전한 매개체이기에, 작가나 학자가 아니어도 글쓰기는 소중합니다.

제가 초단편, 단편, 장편 소설을 쓰고, 등단하기도 했으나, 문장을 유려하게 쓰지는 못합니다. 그저 쉬운 표현, 짧은 문장, 명확한 의도로 쓰고자 노력합니다.

책을 쓰기 전에는 목차를 잡는 데 시간을 오래 보냅니다. 메모장에 적지 않더라도 머릿속에서 뼈대가 다 잡힐 정도로 오래 고민합니다. 뼈대가 잡히면, 그 뒤에는 책상에 붙어서 살을 붙이면 됩니다. 방법은 단순합니다. 꾸준하면 됩니다. 300쪽의 책을 한 달 내에 완성한다면, 매일 10쪽을 쓰면 됩니다. 오래 생각하고, 꾸준하게 쓰는 게 전부입니다.

△‘초인류’와 인공 진화기 관련해서 대학/교수사회에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대학, 교수 사회에게 하는 말보다는 저 자신에게 하는 다짐부터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어제의 습성으로 오늘을 살 생각을 하지 말자고 다짐합니다. 내 역할이 진정 오늘과 내일을 살아가는 학생, 그들이 나아갈 사회에 도움이 되는가를 돌아보고 있습니다. 교수라는 직업, 대학이라는 조직이 나를 위해 존재하는지, 아니면 학생과 사회를 위해 존재하는지 스스로 답할 수 있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세상의 변화 속도를 인정하고, 그 속도에 맞게 대응하면 좋겠습니다. “김 교수, 내가 교수 생활 30년 해봤더니, 세상 잘 안 바뀌더라. 그러니 이것저것 해보려고 애쓰지 말고, 그냥 배운 대로 가르치면 되는 거야.” 제가 교수직을 시작했던 첫해에 선배 교수가 제게 했던 말입니다. 제가 예전에 배웠던 주제, 배웠던 방법과 다르게 수업을 설계하고자 노력했는데, 그런 저를 안쓰럽게 보며 걱정을 담아 해준 조언이었습니다. 그 선배 교수의 말이 옳고 그름을 떠나서, 그 말은 제 교수 생활의 화두가 되었습니다.

정말 세상은 변하지 않았는지, 변하지 않을지, 저는 고민했습니다. 지구에 현생 인류,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한 시기가 대략 30만 년 전입니다. 현대인에게 익숙한 전자, 기계, 디지털 기술의 대부분은 최근 100~200년 이내에 만들어졌습니다. 인류의 역사를 길이 1m 정도의 끈으로 놓고 본다면, 전체 인류의 역사 중에서 0.5mm 정도 기간에 완성된 셈입니다. 인류의 전체 역사를 놓고 보면, 인류의 주관적 짐작보다 기술의 발전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고 있습니다.

디지털 기술 분야를 보면, 1990년에 30만 명에 불과했던 전 세계 인터넷 사용자는 2020년 기준으로 46억 명을 넘어섰습니다. 30년 만에 생긴 변화입니다. 생명공학 분야를 보면, 1994년 최초의 유전자 변형 토마토가 등장했는데, 2019년 기준으로 전 세계에서 재배되는 면화의 13.5%, 대두의 48.2%가 유전자 변형 작물입니다. 세상의 변화는 점점 더 빨라지고 있습니다. 그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건, 부정하건, 변화의 속도는 그저 현실입니다.

인류는 빠른 변화를 넘어서, 문명의 전환기에 서 있습니다. 인류의 내일은 오늘과 다릅니다. 오늘의 언어만을 배운 이는 내일의 세상을 살아가지 못합니다. 내일의 인류에게 필요한 언어는 무엇이고, 어떻게 배움으로 이끌지 고민해야 할 시점입니다.

배움의 대상이 되는 주제, 텍스트, 교수법 등 모든 것을 원점에서부터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현실적으로 가장 아쉬운 점은 이렇습니다. 여전히 대학 교육의 대부분이 극장식 강의실에서 이론 전달식으로 진행됩니다. 어디부터 손댈지 애매하다면, 강의실부터 뜯어고치면 좋겠습니다. 공간이 변화하면, 사람 간 상호작용이 달라집니다. 상호작용이 달라지면, 사고가 바뀝니다. 그런데, 대학 공간의 대부분이 제가 학부를 다니던 30년 전과 별반 다르지 않은 점이 가장 안타깝습니다. 배움에서 우리의 상호작용과 사고가 여전히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을, 그 공간이 묵묵히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추후 어떤 연구나 저술을 하실 계획이신가요?

제 주제는 인간의 마음입니다. 마음을 중심으로 기술, 배움, 비즈니스, 사회를 해석하고, 변화를 이끄는 작업을 이어가려 합니다. 결과물을 풀어내는 방법, 매체에 관해서는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싶습니다.

뇌과학에 관해 장편소설을 통해 이야기해 봤고, 메타버스에 관해 초단편소설을 통해 이야기해 봤습니다. 최근 들어, 돈과 경제를 중심으로 인간의 욕망, 심연을 다룬 방송용 예능 콘텐츠를 기획하는 작업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기술을 통해 교육의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한 플랫폼 개발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요컨대, 학교에 있는 연구자이지만, 논문이나 전문서에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매체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습니다. 무리한 도전, 영역의 침범으로 비칠 수 있으나, 그게 제가 꿈꾸는 삶의 여정입니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