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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도 진정한 자유를 주자
대학에도 진정한 자유를 주자
  • 손화철
  • 승인 2023.09.25 09: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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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_ 손화철 논설위원 / 한동대 교양학부 교수·기술철학

 

손화철 논설위원

내가 재직하는 한동대는 1995년 개교 때부터 학생이 무전공으로 입학하여 2학년 때 조건 없이 전공을 선택하는 시스템을 유지해 왔다. 처음에는 모든 학생이 연관 분야의 전공 두 개를 묶어서 선택해야 했지만, 이제는 본인이 원하는 전공 두 개를 분야에 상관없이 선택할 수 있고 중간에 전공을 바꾸는 것도 무제한 허용한다. 처음에는 무모한 시도였으나, 이제는 다른 대학도 전공 선택의 자유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바꾸고 있다.

자유로운 전공선택이 듣기는 좋지만, 결코 간단치 않다. 제약 없이 전공을 택하게 되면 시기별로 학부 쏠림 현상이 일어난다. 학생의 증감에 따라 교수 수를 조정할 수 없기 때문에 한 때 복작이던 교실이 한산해지기도 하고, 학생 수에 비해 교수의 수가 적어 고생하는 학부도 있다. 입학한 학생을 두고 내부에서 경쟁하는 상황이 초래하는 문제도 없지 않다.

학생은 학생대로 고생이다. 다양한 정보도 제공하고 본인의 적성을 찾는 탐색을 장려하지만, 갓 스무 살 젊은이에게 가벼운 선택은 아니다. 때로는 차라리 점수에 맞추어 전공을 택하고 망설일 시간에 공부에 매진하는 게 나은가 싶은 때도 없지 않다. 부모의 압력을 받는 경우도 있다. 부모가 선호하는 특정 전공에 가지 않으면 등록금을 안 주겠다고 한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왕왕 들린다.

그러나 결국 자유는 경쟁력이다. 학생에게 자유를 주기 위해 학교는 일정한 비용을 치러야 하고, 학생은 자신의 적성과 미래에 대한 고민의 시간을 보내지만, 그런 투입에 비해 산출이 훨씬 크다. 교수는 자기 전공의 매력을 알리려 노력하고, 학생은 입학할 때 생각하지도 못했던 진로를 선택하게 된다. 학교의 구조도 유연해져서 사회적 요구에 상대적으로 더 민감하게 대처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대학은 학생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는 방향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데, 정작 대학은 그만큼 자유롭지 않다. 대학마다 다른 형편과 역사가 있으니 각자의 특성과 장점을 살려 학생을 가르쳐야 할 텐데, 그러기엔 따라야 할 규제가 너무 많고 여기저기 눈치 봐야 할 곳은 더 많다. 정권 교체 때마다 바뀌는 키워드와 중점 의제에 따라 이런저런 재정지원사업이 명멸하고, 각자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기도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최근에는 정부가 학생에게 더 많은 자유를 주라고 대학을 강제하는 모양새마저 연출되고 있다. 정부가 칼자루를 쥐고 있으니 반응하지 않을 수 없는데 도무지 어느 장단에 춤을 추라는 것인지 알 수 없을 때도 있다.

우리나라 대학이 재정적 자율성을 상실하고 국가의 선별 지원에 기댄지 이미 오래다. 어느새 정부는 출제자가 되고 대학은 성적에 맞춰 원치 않는 학과에라도 가야 하는 수험생 신세로 전락했다. 이 상황은 바람직하지 않다. 약간의 혼란과 추가 비용이 들어가도 학생이 자유롭게 전공을 선택하는 것이 나은 것처럼, 잡음이 생기더라도 대학이 각자 추구하는 교육의 방향을 제시할 자유가 주어져야 한다.

마음이 급하고 갈 길이 보여도 일방적인 정책 기조에 따라 대학을 움직이기보다 대학이 스스로 직접 경쟁하게 해야 한다. 기준을 정해놓고 이기는 대학에게 상을 주는 것이 아닌, 혁신이 기대되는 대학에 과감하게 투자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학생의 경쟁력뿐 아니라 대학의 경쟁력도 자유에서 나온다.

손화철 논설위원
한동대 교양학부 교수·기술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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