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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실 내 교수와 학생의 구분이 사라진다
강의실 내 교수와 학생의 구분이 사라진다
  • 김태용
  • 승인 2023.09.18 08: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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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말하다_ 『인공지능을 활용한 사회과학 연구방법』 김태용 지음 | 학지사 | 336쪽

GPT-4와 부속 플러그인의 엄청난 창작 능력
‘교수·학습’ 구분 넘어 서로 배우고 가르칠 때

국내의 많은 대학이 챗지피티 사용 가이드라인을 제작해 교수와 학생에게 배포했다. 대부분 외국 대학이 연초에 배포한 것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리고 교수를 대상으로 한두 차례의 관련 교수법 특강을 끝냈다. 이제 된 것일까?

새 학기에 필자는 방학 내내 품고 있던 질문을 학생에게 던졌다. 학생 중에는 인공지능 앱을 매일 사용하는 20~30%와 몇 번 사용해 본 70~80%가 존재했다. 활용능력 차이도 상당히 커 보였다. 그럼에도 ‘챗지피티 플러스’에 가입해서 고급 기능을 써본 학생은 거의 없었다. 월 20달러의 장벽이 있었다. 교수의 경우에도 그 비율은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유료 플랜 가입자의 비율이 학생에 비해 높긴 했지만, 대부분 직설적인 질문을 올려서 답을 얻는 수준인 듯 보였다. 

인공지능 기술의 고도화가 진행되는 현장의 속도에 비하면, 지금의 강의실 상황은 마치 폭풍 전야와 같다. 대비 없이 그 거센 물결에 어찌 대응할지가 걱정스럽다. 정말 이대로 괜찮을까?

이 책의 핵심은 3부 ‘프롬프트 엔지니어링’과 4부 ‘학술연구에 유용한 기능’이다. 이 두 파트 때문에 이 책을 ‘비법서’로 부르기도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제 교수가 학생에게 특정 주제로 소논문을 쓰라, 계산 문제의 풀이 과정과 답을 쓰라, 제공한 데이터에서 주목할 만한 사실을 찾아내 표 또는 도표와 함께 보고서를 작성하라는 등의 전통적 과제를 부과할 때, 정답지를 같이 제공해 준다고 생각을 해야 한다. 챗지피티 플러스에서 쉽게 선택해 사용할 수 있는 900여 개의 무료 플러그인과 ‘고급 데이터 분석’ 기능을 사용하면, 이들 과제에 대한 수준 높은 답안이 즉각 생성되기 때문이다. 결과를 강의 중에 발표하라고 요구하면, 그에 필요한 슬라이드를 뽑아내는 데 30초 정도가 더 소요된다. 상상력 발휘가 필요한 과제를 내는 것이 필요하다는 챗지피티 교수용 가이드라인도 GPT-4와 부속 플러그인의 엄청난 창작 능력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한때 교수법 특강의 주제로 다뤄졌던 ‘플립러닝’의 강의 방식이 거의 유일한 해결책으로 보인다. 지금 큰 소란 없이 2학기가 진행되고 있는 것은 아직 월 20달러를 내고 그 기능을 이용하는 학생이 극소수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 덕(?)에 대학은 체제 전환을 위한 시간을 조금 벌었다.

대학이 교수에게 ‘인공지능 시대를 위한 새로운 교수법’을 고안해 보라고 요구하는 것은 중요한 선결과제 하나를 간과한 것이다. 그렇다. 교수부터 이러한 기능을 배워야 하고, 그 각각으로 가능한 작업의 범위를 명확히 이해해야 한다. 연구에 직접적 도움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치고, 실체를 모르는 상태에서 어떻게 그것을 활용한 교육을 제공할 수 있고, 어떻게 사용윤리를 이해할 수 있으며, 어떻게 학생의 부정행위를 적발해 처분하겠는가! 대학이 교수에게 가이드라인을 제공해 준 것은 일면 적절해 보이지만, 교수가 그 실체를 충분히 모른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 책의 3·4부는 “교수와 학생 모두”가 챗지피티의 기본(무료)과 추가(유료) 기능으로 할 수 있는 학술연구 관련 작업에 어떠한 것이 있고, 어느 범위까지 그것이 가능한가를 마치 컴퓨터 소프트웨어 매뉴얼처럼 상세히 설명해 준다. 이미 시작한 저자의 순회 특강에서는 시연 한 가지를 할 때마다 ‘상상한 것 이상이고, 무섭기까지 하다’는 반응이 연이어 나온다. 더 무서운 것은 이러한 기능이 고작 베타 버전의 초기 단계라는 사실이다.

교육을 ‘교수’와 ‘학습’으로 양분하여, 교수를 대상으로 교수법 강좌를, 학생을 대상으로 학습법 강좌를 제공하고 있는 관행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이제는 교수도 학생과 함께 학습할 수 있고, 학생은 서로가 서로를 그리고 교수(敎授)조차도 교수(敎授)할 수 있다는 발상을 수용해야 한다. "강의실에서 교수와 학생의 구분이 무너지는 것인가?"라고 필자에게 물으면, ‘내용적으로 그렇다’라고 답하겠다.

 

 

 

김태용 
경희대 미디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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