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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선생님을 지켜주세요!
아름다운 선생님을 지켜주세요!
  • 안상준
  • 승인 2023.09.18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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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_ 안상준 논설위원 / 국립안동대 사학과 교수 

 

안상준 논설위원

임용 2년차 20대 교원이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수많은 교원이 울분을 토로했고, 살아남은 행운을 통탄했다. 교육 당국의 만류와 징계 협박에도 불구하고, 지난 9월 4일 교원들은 49재 집단행동으로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었다.

교육당국은 급조한 대책을 내놓았다. ‘교원 마음건강 회복 지원을 위한 공동 전담팀(TF)’ ‘아동학대 사례판단위원회’ 등 현장에서 일어나는 교권 침해에 대응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시급한 대책부터 처리하고 근원적 대처를 궁리할 시간적 여유가 필요할 때이기도 하다. 

그럼, 근원적 대처의 방향은 무엇일까? 그 답은 역시 교원의 외침에서 찾아야 한다. “우리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다.” “정부가 교육에 대한 권리를 온전히 보장하고, 억울한 아동학대 낙인과 악성 민원으로부터 지켜주길 바랄 뿐이다.” 교원의 저항은 기본적으로 가르치는 본업의 회복을 지향한다. 즉 ‘선생님’의 역할과 지위를 되찾고 싶은 것이다. 

딸이 중학생일 때 나눈 대화가 떠오른다. “우리 반 아이들은 다 담요를 가져와.” “학교에서 담요가 왜 필요한데?” “수업 시간에 덮고 자려고.” 거짓말 같았다. “그럼, 선생님에게 야단맞지 않아?” “그냥 놔둬.” 중학교 교실의 풍경을 도무지 상상할 수 없었다.

수업을 마친 아이들은 대부분 학원으로 몰려갔다. 그곳이 진정한 배움터인 양 기운을 차려 열심히 공부하고, 일부 학생은 그것도 모자라 독서실에서 자습하고 자정을 넘어 집으로 간다. 이렇게 일찌감치 어린 학생들은 승자독식 사회의 이데올로기를 체화하고, 학부모는 노후 자금까지 털어 기꺼이 경제적 부담을 짊어진다. 

학교는 ‘교육의 장’이 아니라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이라는 자조적인 평가가 나온다. 대학 진학을 위한 고품질 교육 서비스를 사교육 시장에서 구매하는 학생과 학부모에게 과연 학교는 무엇일까? 그들에게 교원은 어떤 존재인가? 냉정하게 말해서, 학교는 학업능력의 서열을 공인하는 기관이고, 교사는 행정업무를 처리하고 학원에 갈 아이들을 보살피는 직원에 불과하지 않은가? 

서울 한 초등학교 정문 위에 이 학교 학부모회가 내건 현수막 사진이다. 

공교육기관으로서 학교의 기능과 교원의 존재 이유를 회복하지 못하면 교권의 회복은 단연코 불가능하다. 부모의 품을 벗어나 아이가 만나는 최초의 어른이자 배움과 관계를 이끄는 스승으로서, 나아가 타인과 함께 사는 예절과 모범을 안내하는 길잡이로서 초등학교 선생님의 역할은 지대하다. 인간의 이성이 깨어나고, 개성이 발현되고, 감성이 극도로 풍부해지는 청소년 시기에 그들의 인생 항로에 첫 번째 안내자가 바로 중등학교 선생님이다. 

학생의 개성과 능력을 존중하고 그에 맞는 교육으로 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인재로 키워내야 한다. 선생님이 학생의 개성을 파악하고, 적절한 방법으로 학습능력을 향상하고, 그에 맞는 직업적 전망을 제시하는 과정에서 학생은 자신의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고, 가이드로서 교원의 역할은 빛난다. 최근 EBS에서 방영한 세계의 교육 시리즈는 이런 분위기를 여실히 보여준다.

아직 늦지 않았다. ‘글루미 선데이’의 우울한 선율이 교단에 더 멀리 퍼져나가기 전에 교원에게 선생님의 역할을 돌려주어야 한다. 교권이 바로 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학생과 학부모의 다짐이 처연하게 들린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는 ‘선생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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