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7 21:30 (토)
연구자를 위한 일·생활 균형 지원 시급하다
연구자를 위한 일·생활 균형 지원 시급하다
  • 문애리
  • 승인 2023.09.11 08: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학정론_ 문애리 논설위원 /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 이사장·덕성여대 약대 교수

 

문애리 논설위원

기술의 우위가 국제사회의 패권을 좌우한다는 기정학(技政學)의 시대다. 부존자원이 없는 대한민국이 성장할 수 있는 핵심 요소는 과학기술이며, 과학기술 발전은 결국 인재 양성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인재 수급 상황은 녹록지 않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합계출산율이 1명 아래인 유일한 국가이고, 학령인구가 계속 감소하고 있다. 내후년부터는 이공계 대학원생이 감소하기 시작해, 2050년 전후로 현재 규모의 절반 정도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과학기술 인력 수급 문제는 여성과학기술인 활용 극대화가 해답이 될 수 있다. 과기정통부 발표에 따르면, 2028년까지 신산업분야 과학기술 인력이 4만 7천 명이나 부족해진다. 그런데 이공계 경력단절 여성 규모는 앞선 수치의 4배에 달하는 19만 명이다. 이들이 연구 현장에 복귀해 정착할 수 있도록 해주면 부족한 인력 수요를 상당 부분 채울 수 있을 것이다.

지난달 30일 국회에서 ‘과학기술여성인재 활용 확대 포럼’이 열렸다. 이날 참석한 과학기술계 주요 관계자들은 우리나라의 국가경쟁력 확보와 과학기술 발전을 위하여 여성과학기술인이 과학기술 전반에 활약할 수 있는 여건 조성이 절실하다며 한목소리를 냈다. 

유효한 인적 자원인 여성과학기술인이 연구 현장에서 누수되고 있다. 그 원인은 대부분 임신·출산·육아다. 이공계 경력단절 여성의 66%가 30~40대에 집중되어 있고, 경력단절 여성과학기술인의 77%가 산업수요가 많은 공학 전공자다.

현장성이 중요한 과학기술 분야 특성상 아이를 낳고 키우며 연구개발을 동시에 수행하기 어렵고, 일단 경력이 단절되면 급변하는 과학기술의 속도를 따라잡기 어려워 연구 현장에 복귀하는 데 한계가 있다. 현재 일·생활 균형 제도는 마련되어 있지만 활용률이 저조한 상황이다. 

남녀 모두를 포함하는 중장기적인 과학기술인력 정책을 마련하고, 여성과학기술인의 인력 누수와 이탈을 방지하는 견고한 경력 파이프라인을 구축해야 한다. 그러려면 첫째, 육아기 남녀 연구자를 위한 가족친화적 정책이 확대되어야 한다.

연구비 수혜자는 출산·육아 시 연구비 사용 기간을 연장할 수 있게 하고, 책임연구원이 가족 돌봄 휴가를 쓰는 동안 실험실을 유지할 수 있게 결재 권한을 유지하도록 하는 등의 제도를 검토해야 한다. 대체 연구원 고용을 위한 보조금 지원도 필요하다. 

둘째, 대학원생 연구자에 대한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 한국교육개발원 교육통계연보에 따르면 우리나라 대학원생은 33만 4천 명이며, 이 중 52.4%가 여성이다. 대학원생 연구자들은  직장인으로 인정받지 못해 출산·육아휴직과 직장 어린이집 이용 등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대학원생과 박사후연구원을 포함하는 일·생활 균형 제도 확대가 절실하다.

연구를 위해 출산 시기를 조정·유예하거나 심지어 출산을 포기해야 하는 여성과학자를 접할 때면 무척 안타깝다. 이스라엘 와이즈만 연구소에는 연구자들이 서너명씩 아이를 낳아 기르며, 자녀와 함께 일터에서 점심 식사하는 모습이 낯설지 않다고 한다.

지금도 연구실에서, 강의실에서, 고군분투하는 여성과 그들의 가족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내며, 이들이 편안하게 연구와 육아를 병행할 수 있도록 정책 지원이 확대되길 기대한다.

문애리 논설위원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 이사장·덕성여대 약대 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