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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천년사’ 논란 지역민·연구자로서 말한다
‘전라도 천년사’ 논란 지역민·연구자로서 말한다
  • 문다성
  • 승인 2023.09.11 08: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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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
문다성 전남대 사학과 박사수료
문다성 전남대 사학과 박사수료

역사에 흥미를 갖고 대학에 와서 연구자를 꿈꾸며 공부한 지도 10여 년이 훌쩍 지났다. 여전히 부족한 공부와 연구를 하고 있지만, 『전라도 천년사』를 둘러싼 논란은 좀처럼 진정될 기미가 없어 마음이 착잡하다. 연구자로서, 그리고 지역민으로서 이 사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전라도 천년사』(이하 『천년사』)는 전라도 정도 천년을 맞이한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년에 걸쳐 편찬된 제법 장대한 역사서이다. 당초 『천년사』는 지역민의 염원과 혈세, 각 분야 전문가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사업이기에 편찬위와 시ㆍ도민 연대 사이의 격양된 논쟁 자체는 충분히 있을 법한 광경이다. 

우리의 굴곡진 역사를 생각했을 때, 『일본서기』나 ‘임나일본부설’과 같은 민감한 서술에 보인 일부 지역민의 날선 반응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편찬위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이미 효력을 다한 논리를 다시 소환해, 집필진을 비롯한 역사학계와 연구자를 ‘조선 총독부의 역사관을 추종하는 자’로 매도한 채, ‘식민사학’과 ‘강단사학’이라는 굴레를 덧씌우는 것이 과연 합당한지 의문이다. 

논란의 중심에 있는 우리나라의 고대사 분야는 상대적으로 그 자료가 너무 부실하여 국내외 다양한 유형의 자료를 망라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고대사를 수록한 역사서의 대부분은 ‘사실과 기록의 시점’, ‘사건과 기록의 주체’가 다르거나 불분명한 경우가 셀 수 없이 많기 때문에 세심한 비판과 검증을 거듭해야 한다.

단적으로 『삼국사기』를 통해 고대사를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편찬자인 김부식이라는 고려인과 그의 시대를 먼저 살펴야 하며, 『삼국사기』로 정리ㆍ기록되기까지 시공간을 달리한 주체와 자료의 혼입을 생각해야 한다. 더하여 그 과정에서 산재한 착종과 오류까지도 주의해야 한다. 이러한 ‘사료비판’을 거쳐 여러 겹으로 쌓인 베일을 걷어 내야만 고대사를 겨우 말할 수 있게 된다.

이와 같은 과정을 생각하면 고대사를 비롯한 역사 연구에서 칼로 베듯 이야기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기에 역사 관련 설명에서 자주 보이는 확언하지 않는 표현과 태도는 보통의 사람들에게 재미없고 답답할 수 있다. 하지만 당장 한 치 앞도, 한 길 사람 속도 알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하물며 온전치 않은 자료를 통해 아득히 먼 옛 시대의 일을 어떻게 단언할 수 있을까.

중ㆍ고등학교 시절 『국사』와 『한국근현대사』를 달달 외웠음에도 대학에서 공부하며 당혹스러웠던 기억이 떠오른다. 교과서에 실린 한 단어, 한 줄이 사실 수많은 연구의 결과 중 하나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연구의 대부분이 하나의 결론으로 수렴하지도 않는다.

‘정설’ 혹은 ‘다수의 설’이란 장기간에 걸쳐 연구자들이 검토와 비판을 반복하며 ‘그나마’ 도달한 수준이며, 현재의 시점에서 유효할 뿐 언제라도 새로운 자료와 연구로 대체될 수 있는 불안한 설명이다. 그렇지만 반대로 현재의 연구 성과들은 그만큼 지난한 탐구의 결실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존중의 토대 위에서 토론과 비판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천년사』의 방식도 기본적으로 이와 다르지 않다. 새롭게 발굴된 자료들을 반영하여 기존의 연구를 비판하고 재해석했다. 동시에 왜곡을 바로잡고 실상을 온전하게 드러내어 우리 지역의 역사적 위상을 새롭게 인식하고 대내외에 공유하고자 했다. 이와 같은 취지와 방향에 공감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지역민이자, 연구자로서 『천년사』를 두고 일방적으로 전면 폐기를 운운하는 것에 동의하기 어렵다. 폐기는 그저 미봉에 불과할 뿐, 오히려 지금의 논란에 이르기까지 양측에 주어진 일말의 개선과 성찰의 여지조차도 무마되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사람이 하는 일이므로 집필 내용에는 실수와 오류가 있을 수 있고, 편찬과정에서 행정 절차와 지역민의 의견 수렴에 대한 이해가 다를 수 있다. 그렇다면 문제의 소재를 분명히 하여 책임과 의무를 다해 고쳐나가면 될 일이라고 본다. 토론을 통한 해결이 아닌, 편향된 논란과 의혹 양산으로 대결 구도에 매몰된다면 『천년사』를 바라보는 모두에게 상처만 남을 뿐이다. 우리 지역과 학문의 후속세대로서 『천년사』에 쏠린 지역민의 관심과 연구자들의 노력만큼 정당한 이해와 비판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문다성 전남대 사학과 박사수료
전남대에서 한국고대사를 공부하고 있다. 「신라 김인문의 웅천주 수봉지와 박유의 식읍」으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신라의 영토의식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 AIEDAP 호남권 사업지원단의 전임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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