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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타자를 회생시키다…정세랑에서 김초엽까지
숨겨진 타자를 회생시키다…정세랑에서 김초엽까지
  • 나병철
  • 승인 2023.09.08 10: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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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말하다_『정동정치와 언택트 문학』 나병철 지음 | 문예출판사 | 560쪽

감성적 불평등성 만드는 신자유주의의 정동 권력
불평등성 증상으로서 스크린·소설책의 유령 출몰

21세기에 들어서 기후 위기와 함께 가장 절박한 위협은 심화된 사회적 불평등성일 것이다. 오늘날의 불평등성의 심각성은 사회 구조를 인식해도 그 모순을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잘 나타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 책은 그런 고착성의 원인이 경제적 불평등성의 영속화 장치로서 그 이면에 놓인 감성적 불평등성에 있음을 살펴봤다. 

마르크스는 세계 자체의 원리를 인식하면 해방된 평등한 세상이 열린다고 강조했다. 그는 자본주의가 자신을 해체할 무기를 들 사람을 스스로 만들어냈다고 주장했다. 마르크스가 인식한 것은 자본주의의 사회적 타자였으며, 그는 프롤레타리아라는 타자를 만든 자본주의 자신의 증상(라캉)을 간파했던 셈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라는 순수자본주의는 사회적 타자를 추방하는 보이지 않는 권력을 작동시켰다. 타자의 추방은 마르크스가 예측하지 못한 자본주의의 제2의 증상이며, 그 무증상의 증상으로 인해 사회적 타자는 투명 인간이나 혐오의 대상으로 배제됐다. 그처럼 해체의 무기를 들 사람을 미리 배제하는 것이 바로 감성적 불평등성을 만드는 신자유주의의 정동(情動, affection) 권력이다. 타자를 추방하는 감성적 불평등성의 사회가 되면 90%들이 수동적 정동에 예속되기 때문에 문제를 인식해도 사회는 잘 변화되지 않는다. 

이처럼 문제의 핵심이 존재론적 정동에 있기 때문에 이제 마르크스적인 인식의 정치는 정동 정치와 결합될 수밖에 없다. 이 책은 스피노자와 들뢰즈, 마수미에 의해 발전되어온 정동 정치의 개념을 불평등한 사회를 해결하는 존재론적 무기로 재구성했다. 우리 시대에는 비판적 사상이나 대항 헤게모니에 앞서 정동정치가 먼저 실천돼야 불평등성의 난제를 해결할 수 있다. 

정동 정치의 필요성은 오늘날의 대중문화와 문학이 스스로 보여주고 있다. 월러스틴은 차별과 불평등성이 극단화되면 도처에서 유령이 출몰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오늘날은 거리가 조용한 대신 스크린과 소설책에서 먼저 유령이 출현하고 있다. ‘기생충’의 기생충, ‘오징어 게임’의 깐부, ‘버닝’의 나체, 그리고 ‘사하맨션’과 ‘해피 아포칼립스!’의 좀비가 모두 우리 시대의 유령이다. 이처럼 스크린과 소설책에서 유령이 출몰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증상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타자의 추방이라는 제2의 증상은 해체의 무기를 제거함으로써 신자유주의 시대의 사람을 절망에 빠뜨렸다. 그러나 제2의 증상을 알리는 유령이란 배반당한 유토피아를 포기할 수 없다는 응시의 신호이다. 해체의 무기를 들 사람을 상실한 우리 시대의 희망은 정동적 유령을 구출하는 정동 정치에 있다.

마르크스가 프롤레타리아의 정치학을 말했다면 정동 정치는 배제된 타자의 정치학이다. 이 책은 피케티가 말한 U자형 커브를 타자의 정치학으로 재구성했다. U자의 양극단은 타자를 상실하고 인문학과 문학이 쇠약해진 시대이다. 이런 시대에는 타자를 혐오하고 화려한 캐슬만 바라보기 때문에 사람들이 매번 실패하면서도 미로를 맴돌게 된다. 그런 정동적 어둠 속에서도 피케티와 바스카 선카라, 사이토 코헤이는 사회주의가 시급하다고 외치고 있다. 그러나 정동 정치에 의해 타자가 되돌아오고 90%가 능동적 정동을 회생시키지 않으면 불평등성이 해소된 활력적인 세상은 오지 않는다. U자 양극단의 한쪽을 살았던 김남천은 일상에 숨겨진 여성 타자에게 희망을 걸었다. 이 책은 오늘날의 화제작 역시 여성 타자를 비롯한 숨겨진 타자를 회생시키는 문제 의식을 갖고 있음을 살펴봤다. 정세랑, 정진영, 권여선, 한강, 장은진, 이재웅, 김탁환, 김초엽 등의 작품은 모두 그런 소설이다. 

오늘날은 코로나 바이러스 이상으로 정동적 바이러스에 감염된 시대이다. 그로 인해 벌거벗은 얼굴을 상실한 채 떠도는 타자가 바로 정동적 유령이다. 우리가 살펴본 작품은 정동적 유령이 언택트 미학의 방식으로 회생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프롤레타리아의 정치학은 사회적 타자들이 맨얼굴로 만나게 했다. 그러나 벌거벗은 얼굴을 상실한 오늘날의 타자의 정치학에서는 떨어진 채 손을 잡는 언택트 윤리가 필요하다. 정동 정치와 언택트 미학은 타자를 귀환시켜 능동적 정동을 회생시키며 다시 한번 존재의 물결을 일으키게 해 줄 것이다. 

 

 

 

나병철 
한국교원대 명예교수·현대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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