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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정치와 언택트 문학
정동정치와 언택트 문학
  • 김재호
  • 승인 2023.07.04 16: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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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병철 지음 | 문예출판사 | 560쪽

차별과 불평등이 고착된 세계를 변화시키려면
존재론적 무력감을 극복하는 정동정치가 필요하다!

한국문학을 동시대 감각으로 분석하며 비평의 장을 다각적으로 확장해온 나병철 교수가 2년 만에 새로운 문학비평서를 선보인다. 저자가 이번에 주목한 것은 한국문학과 대중문화에서 나타나는 ‘감성적 불평등성’이다. 감성적 불평등성이란 빈곤한 타자들을 인간 이하의 존재로 강등시키는 차별을 말한다.

‘존재 자체’가 피폐화된 시대에는 문제를 인식해도 사람들이 잘 움직이지 않는다. 저자는 오늘날의 선결과제, 즉 인격적 자긍심을 회생시켜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초유의 정치적 주제로 떠올랐다면서 그러한 새로운 존재론적 정치의 주제를 ‘정동정치’라 정의한다.

정동정치는 피폐한 존재의 회생을 감성과 정동의 문제에 연결시키는 존재론적 정치이다. 저자는 스피노자와 들뢰즈가 발전시키고 마수미가 현대화한 정동정치의 개념을 21세기 불평등성의 문제를 해소하는 해결책으로 재구성한다.

『기생충』, 『오징어 게임』, 『버닝』 등 우리 시대의 화제작들은 모두 극단의 불평등성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기생충』에서 ‘냄새’, 『오징어 게임』에서 연대의 해체, 『버닝』에서 에로스의 상실은 모두 존재론적 정동과 연관이 있다. ‘세계 자체의 원리’로부터 해결책이 나온다고 말한 마르크스는 이성적 인식을 중시했다.

반면 저자는 오늘날 감성적 차별과 연대의 해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존재의 진리와 정동의 문제가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불평등한 세상을 변화시키고 쓰러진 사람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려면 인격적 존재를 회생시키는 정동정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책은 『보건교사 안은영』(정세랑), 『침묵주의보』(정진영), 『레몬』(권여선), 『월드 피플』(이재웅), 『작별하지 않는다』(한강),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김초엽) 등의 현대문학 작품, 『기생충』, 『오징어 게임』, 『버닝』,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용균이를 만났다』 등의 영상 작품을 통해 감성적 불평등성과 침묵하는 권력에 대항하고 존재의 오류와 싸우며 21세기의 도전적인 ‘정동정치의 선언’을 촉구하는 스크린과 소설책의 유령을 면밀히 들여다본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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