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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중세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
‘서양 중세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
  • 홍용진
  • 승인 2023.09.07 08: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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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思_홍용진 고려대 역사교육과 교수]

역사에 관심이 있는 한국의 독서 대중에게 아마 가장 생소한 분야는 서양 중세사가 아닐까 싶다. 당연하게도 한국에서는 한국사가 가장 중요하고 널리 알려진 분야라고 할 때, 서양 중세사는 아무래도 관심의 폭을 넓혀 가기가 어려운 분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굴곡진 한국의 19~20세기 역사는 같은 시기의 서양사와 바로 직결되고, 16~18세기 동안 전개된 서양 근대사도 19~20세기 역사의 준비 기간으로 많은 관심을 받는다. 르네상스 인문주의와 종교개혁, 신항로 개척과 같은 서양 사회의 격변과 과학혁명이나 계몽사상과 같은 이른바 ‘발전’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와 대비돼야 하는 서양 중세사는 언제나 극복돼야 할 대상이다. 그래서인지 14세기 인문주의에서 만들어낸 ‘중세 암흑기’라는 말은 21세기까지도 한국의 인문학자들에게 당연한 듯이 통용되곤 한다. 그리고 그리스와 로마로 대표되는 서양 고대 사회는 ‘고전’이라 칭할만한 저명한 문화적 업적은 남겼지만, 이에 비해 서양 중세 사회는 이에 비견할 만한 것을 보여주지는 못한 것처럼 보인다.

 

지금도 당연한 듯 통용되는 ‘중세 암흑기’

학문적인 차원에서도 서양 중세사는 접근하기가 난해하다. 고대 관련 문헌은 고전어로 집필됐지만 현대 판본으로 접근하기도 편하고 번역도 많이 돼 있다. 근·현대 관련 문헌은 비교적 이해하기 쉬운 근·현대어로 쓰여 있고 인쇄본으로도 쉽게 다가설 수 있다. 하지만 5~15세기라는 1천여 년 동안 생산된 중세 관련 문헌은 여전히 중세 당시의 수서본(manuscript)으로 남아 있는 경우가 허다하고, 이를 독해하기 위해서는 중세 라틴어나 중세 그리스어, 그리고 중세 유럽어를 공부해야만 한다. 게다가 당대에 쓴 글자를 식별하기 위한 고문서 해독법(Paleography)도 익혀야 한다.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중세의 여러 정치·사회적 사상과 행위는 근대적인 관점으로는 쉽게 납득할 수 없는 경우가 많기에, 당대 철학과 사상에 대한 이해는 물론이거니와 현대적인 인류학·사회학 이론 또는 사회철학을 동원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면 이렇게 난해하고 어찌 보면 큰 의미도, 쓸모도 없어 보이는 서양 중세사는 뭐 하러 공부할까? 결론부터 단순하게 이야기하면 서양 근대사회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여러 개념과 전통을 근본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다. 

그러면 이러한 반문이 따라 나올 수 있다. 아니, 근대는 중세에 대한 저항과 극복을 통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었는가? 그저 근대적인 것과 반대되는 것, 신에게 모든 것을 귀속시킨 채 무지몽매하게 살아온 어두컴컴한 하세월이 중세 아니었는가? 그러면 여기에서 다시 따져보자. ‘중세 암흑기’라는 말은 누가 붙였는가? 바로 인문주의의 선구자인 페트라르카다. 그리고 그는 누가 뭐라 해도 14세기라는 중세를 살아간 인물이었다. 근대 사회의 주요한 요소들은 사실 중세 사회 자체의 위기와 변혁의 과정에서 형성된 것으로, 추후에 역사가들이 근대적이라고 골라내어 이름 붙인 것이 태반이다. 그리고 개설서의 장절 구분과 같은 중세와 근대라는 시대 구분과 달리 역사적 현실은 그렇게 명확하게 양분되지 않는다. 한 사람의 일생에서 유년기와 소년기가 행정적으로는 중학교 입학일자로 구분될지 몰라도, 실제 삶에서는 단절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조선이라는 나라가 국제 무대에 알려지고 당대 세계 질서에 편입되면서 문제가 되었던 개념은 ‘주권’이라는 개념이다. 말이 세계 질서 또는 국제 관계이지, 사실 ‘주권’이라는 개념은 유라시아 극서 지역 모퉁이인 서유럽에서 발명된 독특한 개념이다. 그것은 흔히 1648년 30년 전쟁을 마무리한 베스트팔렌 조약에서 명확히 등장한 것으로, 국가의 크기나 세력과 상관없이 각 국가가 서로 독립적이고 대등한 국가권력을 지닌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으로 이야기되곤 한다. 또한 이 주권은 한 국가 내에서는 최고 권력으로 그보다 상위의 권력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주권은 말 그대로 ‘주인으로서의 최고 권력’이다.

15세기 초기 프랑스에서 천문학과 기하학을 공부하는 성직자들의 모습이다. 서구 사회에서 종교적 위기와 분열로 인해 권력은 국가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그림=위키피디아

 

근대 서구의 기준은 보편적인가

그런데 여기에서 바로 ‘주인’이라는 말에 유념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바로 하나의 독립적인 인격체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주권은 국가라는 가상 인격체가 국가에 속한 모든 것에 대해 주인으로서 가지는 최고권력이다. 그리고 이때의 가상 인격체는 실존하지 않는 것으로 법적으로만 상정되는 인격체, 즉 법인이다. 잘 알려진 토머스 홉스의 『리바이어던』 표지는 바로 이를 명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수많은 인민으로 이루어졌지만 단순한 총합이 아닌, 인민 전체를 뛰어넘는 초월적이고 단일한 인격체인 국가라는 생각은 어디에 기원을 두고 있는가?

중세에서 교회는 종종 라틴어로 ‘에클레시아 크리스티아나(Ecclesia Christiana)’라고 지칭한다. 에클레시아는 민주정으로 유명한 아테네에서 그리스어로 ‘민회’를 일컫는다. 로마 시대에 라틴어로도 정착된 이 말은 ‘그리스도의 가르침(敎)을 따르는 사람들의 모임(會)’이라는 뜻이 된다. 그리고 이 교회는 그 자체로 신비로운 그리스도의 몸(Corpus Christy mysticum)으로 추상화된다. 교회, 즉 종교적인 색채를 지닌 인민의 모임이 그리스도라는 인격체로 투사되는 것처럼, 정치적인 인민의 모임인 국가는 주권자라는 인격체로 추상화된다. 14~16세기 서구 사회에서 종교적 위기와 분열, 그리고 전쟁을 거치면서, 일상적인 평화와 질서를 보장해 주는 권력은 이제 교회에서 국가로 전환되어 갔다. 하지만 이 새로운 국가(State)라는 정치체를 정당화해주는 논리는 중세 교회 이데올로기의 세속적 변형을 수반했다. 물론 이는 고대 사회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생각이었다.

비단 주권이라는 개념뿐만 아니라 19세기 말까지 조선 사회에 생소했던 수많은 근대적 개념과 요소들은 중세적 전통과의 연관성 속에서의 이해를 요구한다. 이는 또한 중세 서구 사회를 일반적인 세계사의 커다란 궤적에서 일탈한, 예외적이고 독특한 문명의 실험실로 바라볼 것을 요구한다. 그리하여 힘의 논리에 의해 우리가 일반적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는 근대 서구의 기준은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중세 서구 이래의 특수한 역사적 상황의 소산임을 이해해야 한다.

홍용진
고려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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