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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방학과 호모 비아토르 
여름방학과 호모 비아토르 
  • 신희선
  • 승인 2023.09.04 08: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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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_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신희선 숙명여대 교수

여름방학에 자동차로 북미 지역을 여행했다. 미국 마이애미에서 캐나다 오타와에 이르기까지 북동쪽으로 올라가는 ‘로드 트립’이었다. 덕분에 20여년 전 유학했던 미국의 사우스 캐롤라이나대학도 다시 가보고, 에모리대학, 신시내티대학, 미시건대학을 비롯해 캐나다의 웨스턴대학, 토론토대학, 오타와대학 등 10여 개가 넘는 대학의 캠퍼스를 거닐어 볼 기회가 있었다. 8월 한 달 동안 미국·캐나다의 여러 대학을 보면서 ‘주마간산’으로 느낀 몇 가지 단상을 적어본다.

명문대학은 건물부터 자신의 역사를 보여주었다. 옛 건축물을 박제화하지 않고, 언제 만들어졌는지 내력을 소개하는 동판을 세워놓고 건물을 유지보수하며 여전히 사용하고 있었다. 전통이 느껴지는 고풍스런 대학 건물이 예술 작품처럼 깊은 감동을 주었다. 관광객이 대학 캠퍼스를 찾는 이유가 될 정도였다.

또한 여름방학 동안 기숙사 시설을 외부에 개방해 운영하는 덕분에, 캐나다에서는 대학 레지던스에서 숙박하며 작은 칼리지 분위기를 경험하기도 했다. ‘캠퍼스 타운’이라는 말처럼 도시와 대학의 경계를 구분짓기 어려울 정도로, 주민이 개를 끌고 산책을 하거나 벤치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광활한 캠퍼스 공간이었다. 한국 대학의 경우, 개별 대학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한정된 공간에 강의실 건물만이 조밀하게 배치되어 있다면, 미국과 캐나다 대학은 방대한 공간에 학생들이 아웃도어 활동을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시설이 캠퍼스 곳곳에 있었다.

수영장·야구장·테니스장·커다란 스타디움이 포함된 캠퍼스에서 ‘공부’는 강의실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다양한 클럽과 학생 교류를 장려하는 활동 중심의 교육을 지향하고 있음을 가시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해당 대학을 상징하는 교표와 짧은 모토를 담은 깃발을 캠퍼스 곳곳에 매달아 학생을 고무시키고 있었다. 사우스 캐롤라이나대학은 “Behold the Remarkable WE(주목할 만한 우리를 보라)”,  토론토대학은 “The Impossible is a Challenge(불가능은 도전이다)” 등의 문구가 쓰인 아름다운 깃발이 나부끼는 장면을 카메라에 담으며,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해당 대학의 비전을 보는 듯 했다.

한국의 경우, 서울집중 현상으로 지방대학 위기가 현실이 되고 있지만, 미국과 캐나다는 지역마다 대학의 정체성과 존립 이유가 뚜렷한 크고 작은 명문대학이 있었다. 국제화된 교육환경으로 세계 곳곳에서 온 학생을 마주칠 수 있었다.

특히 이번 여행에서 캐나다는 첫 방문이었기에 새로움이 더했다. 이민자를 적극 수용하는 다문화 사회답게 다양한 민족과 인종을 만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다양한 젠더 정체성을 포용하는 사회임을, 거리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2003년에 동성결혼을 법제화한 나라답게, 다니는 곳마다 성적 다양성을 상징하는 ‘무지개’ 색깔을 볼 수 있었다. 건물 앞에 붙은 무지개 로고, 무지개 빛깔의 횡단보도도 흔히 볼 수 있었다. 대학 캠퍼스에도 젠더중립 화장실이 있고 무지개 깃발이 캐나다 국기, 대학 교기와 함께 나부끼고 있었다. 동성애에 대한 불편한 시선과 소수자에 대한 무시와 혐오로 갈등을 빚고 있는 한국 사회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했다.

김영하는 『여행의 이유』에서 여행은 우리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닌 자’가 되는 경험을 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한국에서 사회적으로 부여된 교수로서의 정체성을 잊고, 이름만 들었던 대학 캠퍼스를 방문객으로서 거닐며 낯선 도시에서 이방인이 되었던, ‘호모 비아토르’ 시간이 어떻게 몸과 마음에 축적되고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지만, ‘늘 새롭게 배우는 자’로서의 자아를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학생도 지난 여름방학동안 몸을 움직여 세상을 만나고 직접 경험한 이야기를 안고 9월의 캠퍼스로 돌아올 것이다. 여행의 결과가 무엇일지 “당장은 알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다시 일상으로 복귀한 이후 사람과 세상에 대한 좀 더 깊은 이해와 폭 넓은 시선을 가지게 되길.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고, 여행은 서서하는 독서”라는 말처럼 그렇게.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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