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7 14:55 (토)
과학기술계 ‘카르텔’ 운운은 타당한가?
과학기술계 ‘카르텔’ 운운은 타당한가?
  • 이강재
  • 승인 2023.08.28 07: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학정론_ 이강재 논설위원 /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이강재 논설위원

나는 국가 정책에서 과학기술만 중시하는 것을 반대한다. 인문학·사회과학·예술·체육 등이 함께 있어야만 올바른 사회의 발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과학기술을 홀시하는 것은 더욱 반대한다. 과학기술 분야 연구자를 흔들어서도 안 된다. R&D 카르텔에 대한 논의를 보면서 하는 말이다.

사회 곳곳에 카르텔이 만연해 있다면 이를 척결해야 한다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그렇지만 가장 강력한 카르텔로 알려진 법조계·정치계는 그냥 두고 힘없는 사람에게 카르텔을 들이대는 것은 걱정스럽다.

과학기술 분야 종사자는 참담한 심정이다. 자신과 관련된 문제이고 어딘가 그런 요소가 있을 수도 있으니 대놓고 불만을 토로하지도 못한다. 인문학 전공자로서 나는 과학기술 R&D에 대해 카르텔 운운에 동의하지 않는다. 일부 있다고 해도 이렇게 모두에게 혐의를 씌워서는 안 된다.

R&D 예산에는 국립대학 교수 급여나 카이스트 등의 특수목적대학원의 예산이 포함된다. 교육부의 대학재정지원사업 역시 R&D에 포함된다. R&D 예산에는 연구개발 외에 급여성·복지성 비용도 있다는 말이다.

또 어떤 분야는 투자의 성과가 바로 나오지만, 어떤 분야는 성과가 없어도 10년 이상 기다리면서 계속 투자해야 한다. 당장은 실패처럼 보이는 연구가 세상을 변화시킨 사례는 차고도 넘친다. R&D 예산을 ‘콩나물 물 주기’와 같다고 말하는 이유이다.

정부출연연구원의 상황은 더욱 어렵다. ‘PBS’라고 하는 연구비에 기반한 급여 방식은, 고정된 급여를 주면 적극적인 연구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불신에 근거한 것이다. 그럴 사람이 없지는 않겠지만, 적극적인 연구자의 의욕을 떨어뜨리는 방식이다.

적게는 30%에서 많게는 70% 이상을 PBS 방식에 의존하여 급여를 받는 출연연 연구자는 지금도 단기적 성과에 내몰리고 있다. 이제 연구원의 예산과 국가 연구비의 삭감을 통해 연구자의 삶의 질은 더욱 떨어질 것이다.

이들은 아마도 자신의 전공 선택이나 해외가 아닌 국내에서 연구하기로 한 결정을 후회하고 있을 것이다. 다음 세대에게 차라리 의과대학이나 로스쿨에 진학할 것을 권할 것이다. 부유한 환경에서 태어난 사람이 아니라면 의사의 길도 험난하기는 마찬가지다. 고가의 의료 장비와 높은 임대료 등 큰 금액을 금융권에 의존하기에 신규 개업의 중 상당수가 파산한다는 말이 들려온 지도 오래전 일이다.

로스쿨도 졸업 후 변호사 합격률이 50% 정도여서 끝내 변호사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기존의 공고한 변호사 시장을 뚫기도 쉽지 않다. 이처럼 로스쿨 졸업자의 찬란한 미래도 옛말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카르텔로 싸잡아서 혼이 날 바에는 상대적으로 확률이 높은 의사나 변호사를 선택하는 것이 현명하다.

카르텔이라고 부르면서 예산을 줄이고 보여주기를 위해 일부를 처벌하면 여론의 지지를 얻을 수는 있을 것이다. 10년 후 혹은 20년 후의 결과와 관계없이 빈대를 잡기 위해 초가삼간 태울 각오가 있다면 가능한 일이다.

국가의 정책은 새로운 방향의 제시를 통해 기존의 것을 대체할 때 힘을 얻는다. 과거 ‘적폐청산’, ‘범죄와의 전쟁’, ‘사정 정국’ 등이 결코 미래지향적 모습은 아니었다. 지금의 과학기술 종사자를 적극 대우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면 미래에 더 우수한 인재도 이 분야를 외면할 것이다. 나는 과학기술계에 대해 R&D 카르텔 운운하는 것을 반대한다.

이강재 논설위원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