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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방’과 ‘질방’을 배우며
‘양방’과 ‘질방’을 배우며
  • 노희영
  • 승인 2023.08.21 08: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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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
노희영 고려대 미디어학과 박사과정

양방과 질방. 양적 연구 방법론과 질적 연구 방법론의 줄임말이다. 사회과학 분야에서 이 단어들은 나름 편리한 분류를 위한 용어로 자리매김한 듯하다. 이러한 용어보다 실증주의, 해석주의 등 철학적 관점을 명칭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입장도 있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편의상 계량과 일반화를 목적으로 사용하는 연구를 양방, 현상에 대한 의미를 분석, 해석하는 연구를 질방으로 칭하고자 한다.

개인적으로 석사과정에서 질적 연구 방법론을 처음 배웠고 연구에 적용했다. 당시에는 양방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인지 두 방법론의 구분이 와닿지 않았다. 하지만 양적 연구에 집중하고 계신 교수님들이 많은 학교에 진학하며 양방과 질방 모두 공부하게 됐다. 지난 2년 동안 새로운 방법론을 배우는 과정에서 적잖은 당혹감을 느꼈다. 질방을 계속 사용해 왔던 박사과정생으로서 제일 힘들었던 것은 양방에 대한 기초도 없이 바로 심화학습을 해야 하고, 기존에 공부했던 연구 방법론은 따로 공부해야 한다는 피로감이었다. 

하지만 필수 수업 외에도 의도치 않게 양방을 배워야 할 상황들이 계속 발생하면서 이런 피로는 점차 완화될 수 있었다. 다양한 방법론을 배우면서 얻은 가장 큰 도움은 ‘사고의 확장’이었다. 질방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처음 양방 수업과 이론을 접했을 때 상당한 문화적 충격을 느꼈다. 추상적인 개념을 측량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야 했고, 이론화 과정도 다수에게 일반화가 가능한 방향으로 전개해야 했다. 양방 수업을 듣고 과제를 하는 내내 많은 것들이 생소했다.

하지만 오히려 이러한 지점들이 자신에게 익숙한 영역을 낯설게 보도록 해서 양쪽을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개인의 연구 설명에 전달력이 향상되는 것을 느끼기도 했다. 예를 들면, 예전에 양방 연구를 공부하는 학생들과 잡담하다가 “연구 대상으로 12명은 너무 적다(양방)”와 “연구 참여자가 12명이어도 충분할 수 있다(질방)”는 입장으로 나뉘어서 소소히 얘기한 적이 있었다. 이런 토론을 통해서 개인의 연구 내용을 전달할 때 어떻게 다양한 배경을 가진 청중의 이해를 도울지 습득할 수 있었다.

양방 수업을 들으면서 개인의 연구 성향이나 기존에 배웠던 방법론에 대한 선호가 더 확고해진 측면도 있었다. 이러한 지점 때문에 통계 관련 수업을 들으면서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다른 방법론을 배우는 것은 그에 대한 철학을 배우는 일이므로 일정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대학원에서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대부분 대학원생은 자신이 추구하는 철학적 방향성에 부합하는 하나의 방법론을 선택해 학문적 깊이를 더해가는 경우가 많고, 공동 연구도 유사한 관심사와 방법론을 공부하는 사람들끼리 팀을 짜는 경우가 더 많다.

각종 프로젝트, 과제, 조교 업무, 개인 연구를 하기도 바쁜 상황에서 다른 방법론을 배우는 데 시간을 쓰는 것에 종종 스스로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 또한, 최근 학문적 ‘융합’이나 데이터 사이언스 활용을 강조하며 ‘이를 하지 않으면 마치 도태될 것처럼’ 종용하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인지 다른 연구 방법을 공부하지 않는 것에 대해 개인적으로 불안감을 느끼기도 했다. 어떤 방식으로 한정 된 시간과 사회적 요구 사이에서 개인의 연구 영역을 넓혀가야 할지, 현 사회와 대학에서 그토록 강조하는 ‘융합’은 무엇이며, 어떻게 하면 다른 방법론적 관점을 유지하면서도 다양한 주제의 공동 연구를 수행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됐다.

현시대에서 ‘융합’은 일반적으로 다른 것들을 합쳐서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A+B=C”의 의미를 강조하는 듯하다. 예를 들면, 로봇공학과 종교 분야에서 협업하여 AI 로봇 목사를 만드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타분야의 융합 자체보다는 어떤 문제를 탐구할 것인지 연구자들의 문제의식과 목적을 공유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질방과 양방은 인식론적으로 너무 상반되어서 어느 한쪽이 다른 방법론을 ‘보조’하는 방향으로 활용되기 쉽다. 그런 상황에서 특정 분야의 성장을 위한 목적으로 융합을 요구한다면 각기 다른 방법론의 문제의식이나 철학적 관점을 존중하기보다는 비교적 널리 수용되는 방법론 혹은 관점에 다른 한쪽이 환원되는 방식으로만 융합이 진행될지도 모른다.

결과적으로 아직 고민에 대해서는 답을 찾아가는 중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자신이 주로 활용하는 방법론과는 다른 방법론을 공부해 보는 것은 해볼 만한 시도가 아닌가 싶다. 개인이 가진 지식의 깊이와 넓이를 확장하는 것은 매우 힘들지만, 다른 방법론의 세계에 잠시 몸담아 본다면 그 세계의 연구자들과 그들의 연구로부터 새로운 관점과 연구 기술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같은 주제를 다른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 이 또한 박사과정에서 경험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노희영 고려대 미디어학과 박사과정

애니메이션, 재현, 종교(기독교), 창의노동, 창작과정, 자기계발서사, 탈성장, 데이터 사이언스에 관심을 두고 있다.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한국교회의 섬김문화와 노동소외-청년 창의예술노동자에 대한 심층 인터뷰를 중심으로」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고려대학교 미디어학과에서 박사과정 중에 있다. 최근에는 연구를 글 외에 어떤 방식으로 전달할 수 있을지 궁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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