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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로 세평] 바람직한 대학교육
[신문로 세평] 바람직한 대학교육
  • 김짅홍 목사
  • 승인 2001.08.1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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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8-14 10:59:03

김진홍 목사 / 두레마을 대표

여러 해가 지나 기억이 희미하긴 하나 일본의 게이오 대학의 총장이 한국에 와서 산업사회의 대학교육을 주제로 강의한 적이 있다. 그 강의 중에 미국, 일본을 비롯해 한국까지 포함된 선진산업사회가 고등교육에 있어 과오를 범하고 있는 점 3가지를 지적한 내용은 기억에 뚜렷이 남아있다.

첫째는 젊은이들에게 삶의 의미를 깨우쳐 주지 못하고 취직에 필요한 지식이나 기능을 위주로 교육을 전개하고 있는 점이요, 둘째는 젊은이들로 하여금 국가건설의 사명감를 심어 주지 못하는 점이요, 셋째는 부모세대의 고난을 몸으로 익히지 못한 점을 지적했다. 지금 생각해도 매우 적절한 내용이라 생각된다.

첫 번째로 지적한 삶의 의미를 가르치지 못하고 있는 점에 대해 생각해 보자. 인간이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다름아니라 ‘살아감’의 의미를 깨닫고 그 의미를 삶 속에서 실현하며 나가는 삶을 일컬어 인간다운 삶이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대학교육이 젊은이들에게 이점에 있어 그릇돼 있다면 그런 교육은 이미 실패를 전제로 하고 있는 교육이라 하겠다.

내가 대학생 시절에 읽고 감명을 받았던 책 중에 빅터 프랭클(Victor Frankl) 박사가 쓴 ‘죽음의 수용소에서’란 제목의 책이 생각난다. 유대인이었던 저자가 히틀러의 수용소에 갇혀 있던 동안에 경험한 경험담을 기록한 책이다. 저자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처음 들어갔을 때에 동료 수감인들 중에 재능이 뛰어난 사람, 행동이 민첩한 사람, 체력이 강인한 사람들이 골고루 섞여 있었다. 프랭클 박사는 그런 사람들을 보고 느끼기를 다른 사람들은 다 넘어져도 저런 분들은 수용소 생활을 마지막까지 견뎌 나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전연 그렇지 않음이 드러났다. 그렇게 재간이 뛰어나거나, 동작이 민첩하거나, 체력이 두드러지게 강인한 사람들이 쉽사리 허물어지고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사람들은 재간이나 체력이나 동작이 두드러지지 못하나 자신들이 당하고 있는 고난의 의미를 깨달은 사람들이었다고 기록했다. 가장 절망적인 조건에서도 삶의 의미를 깨닫고 그 의미로서 자신을 지탱하며 이웃과 더불어 그 의미를 나누며 작은 빵조각 하나라도 나눌 수 있는 인간성을 지닌 사람들이 마지막까지 살아남았다고 했다. 오늘의 대학교육에서 반드시 되새겨 보아야할 내용이다.

나는 직책상 대학생들을 만나는 기회가 많고 또 대학에서 강의하는 기회가 흔하다. 그래서 실감나게 느끼는 점이 있다. 요즘들어 대학생들의 정신건강이 현저하게 손상을 입고 있다는 느낌이다. 우리가 대학을 다니던 때나 10여 년 전 보다 지금의 대학생들이 우울증, 신경쇠약증, 불면증 등에 시달리고 있는 경우가 현저하게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이유를 들 수 있겠지만 그 중에 가장 큰 이유의 하나가 바로 대학생들의 삶의 의미 내지 삶의 방향을 잃고 있음이 이유가 될 것이다.

두 번째로 지적한 국가건설에의 사명감을 심어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 생각해 보자. 요즈음 들어 대학이 워낙에 많아져서 그렇지 대학생이 됐다는 것은 이미 그 사회와 그 시대를 이끌어 가는 엘리트군에 속하게 되었음을 뜻한다. 그런데 자신의 신분은 그런 엘리트로서의 대학생이면서도 자신의 현재는 미래에 대해 무엇을 어떻게 하며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내용이 없다면 이미 그는 실패한 인생길을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현대교육이 들어서면서 교육에 있어 과거의 修身齊家治國平天下와 같은 목표와 바탕이 실종되고 말았다. 그래서 좀스런 기능인을 양산하거나 방향을 잃은 소시민들을 길러내는 일에 머물고 말았다. 이런 현실을 타개하고 극복해 젊은이들에게 그 시대를 이끌어 가는 국가경영에 주인의식을 품게 하느냐가 교육개혁의 내용과 방향이 돼야 한다.

끝으로 오늘의 대학교육이 젊은이들로 고난을 체득하게 하는 교육을 시행하지 못하고 있는 점에 대해 생각해 보자. 서양속담에 ‘어느 세대나 부모 세대들이 겪었던 고난의 삶을 익히지 못하게 되면 부모들이 겪었던 고난을 다시 되풀이 하게 된다는 격언이 있다. 옳은 말이다. 굳이 석가모니의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삶이 고난의 연속임은 재론의 여지가 없는 말이다. 인생이 살아가는 삶이 그 본질에 있어 고난의 삶이거늘 젊은이들이 부모세대가 닦아놓은 수고로 인해 경제가 부요해 지고 사회가 안정돼 자신들은 가난과 굶주림, 고통과 역경을 헤쳐 나가는 삶을 체험하지 못하게 되면 그런 세대는 반드시 실패하는 세대가 돼 부모님들이 닦아놓은 복을 누리지 못하고 다시 고난의 삶을 살아야 하는 처지에 이를 수밖에 없게 된다. 아무리 교육정책이 바뀌고 교육예산이 늘어나도 교육에 대한 이런 본질적인 깨달음과 개선이 없다면 얻어질 수확은 기대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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