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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권’, 그리고 학생인권조례
‘교권’, 그리고 학생인권조례
  • 송주명
  • 승인 2023.08.14 16: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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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논평_ 송주명 한신대 교수

20대 꽃다운 나이, 서이초 선생님의 절망적 선택에 슬픔을 넘어 참담함을 금할 길 없다. 선생님이 그곳에서는 평안하게 영면하시기를 빈다. 

이번 일을 계기로 학교 현장에서 선생님들의 고통이 재조명되고, 교육을 왜곡하는 여러 요인이 진지하게 성찰되고 극복되기를 바란다.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원인 규명을 통해 보다 촘촘하고 실효성 있는 법적·제도적 장치가 정비되어야 한다.  

이번 비극에 대한 사건조사를 통해 부분적으로 확인되고 있지만, 학교, 특히 초등학교에서 교사 인권은 학부모 민원으로 인한 침해가 중고등학교에 비해 7배 가량 더 두드러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부모가 제기하는 다양한 공격적 ‘악성 민원’ 때문에 교사들이 겪어야 하는 정신적 고통도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아울러 과잉행동장애를 갖고 있거나 다른 형태의 교육적 치유가 필요한 아이들의 ‘교육저해’ 행동도 교사 인권을 침해하는 또 다른 요인이 되고 있다. 그러나 학생 모두가 잠재적으로 교사 인권을 침해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

지난 12일 서울 종각역 인근에서 열린 제4차 안전한 교육환경을 위한 법 개정 촉구 집회에 참여한 교사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교사 인권침해의 핵심은 학부모의 ‘악성 민원’

이번 일을 계기로 정부 여당에서도 몇 가지 대책을 마련 중이다. 교사의 교육지도를 가능하게 하는 아동학대금지법의 개정, 교사 생활지도 고시안 마련, 교권침해 사항의 학생부 기록, 학생인권의 제약을 내용으로 한 학생인권조례 개정 등이 큰 골간이다.

그러나 학생부 기록과 같은 방침은 낙인 효과가 커서 끝없는 쟁송 효과를 부를 것이라는 비판이 크다. ‘징벌’로서 의미는 있을지 모르지만, 이로 발생할 ‘낙인’을 피하기 위해 학부모들이 끊임없이 재판에 호소할 것이고 정책효과도 별로 크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동시에 이러한 대책은 교육적 노력을 애초에 배제해버릴 것이라는 교육계의 문제제기 또한 크다. 나아가 초등학교 교사 인권침해의 핵심이 학부모의 ‘악성 민원’임에도 정부 여당의 방침에는 이것에 대한 효과적인 예방 혹은 대책은 별로 발견되지 않는다. 

교사 인권과 교육지휘권

한편 윤석열 정권은 이번 기회에 학교 현장에서 교사 인권이 아니라 권위주의적인 ‘교권’을 재확립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2009년 김상곤 교육감 이래 전국적으로 혁신교육이 확산되면서 교육의 패러다임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종래에는 지식과 도덕의 ‘우위’에 있는 교사가 교육의 주체이고 학생은 교사의 ‘가르침’을 수용해야 하는 교육의 대상이었다.

그에 비해 혁신교육은 학교민주주의 위에서 학생의 비판적 사고를 키우는 배움중심수업, 창의지성교육을 추진해왔다. 이를 통해 학생과 교사 모두가 교육의 주체로 서고, 지식은 물론 건강한 삶의 태도를 민주적 상호작용 속에서 발전시키려는 접근법이 정착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윤석열 정권이 교사 인권이 아니라, ‘교권’, 즉 ‘교육지휘권’을 강하게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이것은 교사만을 교육의 주체로 한정하고 학생을 객체화하려는 것으로, 예전의 보수-권위주의적 학교와 지식전이교육을 부활시키겠다는 정치적 신호로 읽힌다. 대단한 퇴행이 아닐 수 없다.

왜곡된 ‘교권’ 회복론…학생인권조례가 문제는 아니다

특히 “종북주사파의 대한민국 붕괴시나리오의 일환”이라며 “향후 국정방향은 이를 원상 복구해나가는 데 집중하겠다”는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의 주장은 우리를 아연실색케 한다. 이번에도 진지한 문제해결이 아니라, 물타기, 책임 떠넘기기, 가짜뉴스 매도하기 등 사태의 왜곡과 정치색깔 덧씌우기가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왜곡된 ‘교권’ 회복론을 정당화하기 위해, 대통령, 교육부 장관, 여당, 보수적 교사단체 등 보수세력이 총출동해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정치적 공격에 나서고 있다. 학생인권조례의 발원지인 경기도에서는 임태희 교육감이 명칭을 포함한 전면적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한다. 

학교현장, 특히 초등학교의 경우 교사 인권침해의 주원인이 학부모 ‘악성 민원’이나 지극히 소수 학생들의 과잉행동임에도, 마치 학생인권조례로 인해 학교공동체 전체가 극단적 혼란과 방임상태가 된 것처럼 상황을 호도하고 이로 인해 교사의 교육권이 침해되고 있다고 근거 없는 공격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주요 언론의 분석에 따르면 학생인권조례의 도입과 교사 인권침해 간의 객관적 인과성은 전혀 입증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학생인권조례는 우리 헌법의 가치를 학생생활에 그대로 적용한 학교민주주의의 비강제적 생활규범이다. 우리 헌법을 존중한다면서 학생인권조례를 부정하는 태도를 취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또한 비강제적 규범으로 인해 교사의 인권과 교육권이 심각하게 침해된다는 주장 또한 억지스럽기 그지없다. 

학생인권과 교사인권은 상호 공존 발전해야 

오늘날 학생인권조례는 새로운 민주적 교육환경, 즉 학교민주주의를 뒷받침할 중요한 제도적, 문화적 구조의 하나다. 학생인권조례 때문에 교사인권이 침해된다고 볼 수 없으며, 학생인권과 교사인권은 학교민주주의 속에서 상호 공존하고 발전해야 한다. 문제를 왜곡하고 비극을 이용해 민주주의와 혁신교육을 욕보이고, 자신들의 수구보수적, 냉전적 교육관을 전면화하려는 정부 여당의 행위를 엄중히 비판한다. 

현재 가장 시급한 것은 학교현장에서 교사인권을 주로 침해하는 일부 학부모의 비교육적 ‘악성 민원’을 학교에서 배제하고, 소수 학생들의 ‘교육저해’ 행동을 체계적, 민주적으로 치유하고 필터링할 실효성 있는 제도다. 그리고 학교현장에서 교사의 인권침해가 실제로 발생했을 때, 교사 개인에게 모든 상황을 떠넘기는 것이 아니라 교육당국(교육청) 차원에서 교사인권을 옹호하고 체계적으로 법률지원을 해줄 수 있는 안정된 제도도 긴요하다. 

정부 여당은 더 이상 문제를 정치화시켜서 본질을 호도하지 말고, 학교현장의 교사인권을 실질적으로 보호할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기 바란다.

송주명 한신대 교수
현재 전국교수노조 부위원장을 맡고 있다. 경기도교육청 혁신학교추진위원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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