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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학자의 삶을 즐기는 마음으로
독학자의 삶을 즐기는 마음으로
  • 김경수
  • 승인 2023.08.14 08: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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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
김경수 연세대 비교문학협동과정 석사 졸업

독학자의 자세로 대학원에 다녔다. 대학원 입학 첫 학기에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시작했으므로 필자는 자연스레 모든 강의를 비대면으로 들었다. 조교 일로 출근해야 할 때를 제외하면 세 학기 가깝게 학교에 가지 않았다. 학과 행사도 오프라인으로 열리지 않아 원우를 만날 기회도 없었다. 학계에 속해 있어야 하고, 논문과 학회 등 여러 활동을 해야 한다는 정보를 알려주는 선배도 만나기 힘들었다. 

학위논문에 대한 피드백을 공유할 원우나 선배도 없이 지낸 데다가 학위논문 주제로 선택한 인터넷 밈은 국내에 선행연구가 거의 없는 분야였기에 참고할 문헌도 찾기 어려웠다. 해외 논문도 커뮤니케이션 연구에 치우쳐 있었다. 영화학과 매체학, 후기구조주의 등으로 인터넷 밈을 연구한 나와는 방향이 달랐다. 인터넷 밈과 담론 사이의 거리감이 큰 나머지 “과연 이 연구를 진행해도 되는가”를 계속 자문했다. 독학자로 살아남아야 했다. 저만의 세계관에 갇혀버리게 되는 독학자의 함정에 빠지지 않을까 두렵기도 했다. 나 자신을 숱한 실존적인 질문에 빠뜨리면서 자유와 방종, 몽상과 고독 사이에서 연구를 이어갔다.

이 글을 쓰기 전까지 오랜 시간 망설였다. 나 같은 독학자를 학문후속세대라 부르기에는 자격이 미달이기 때문이다. 우선 연구자로 활동한 적도 학회에 참가한 경험도, 해외 논문을 번역하거나 논문을 투고한 경험도 없이 석사를 졸업했다. 일 년 가까이 학위논문을 지도할 교수님도 못 구한 채로 갈팡질팡 헤매다가 겨우 학위논문 심사를 통과했다. 석사 논문을 쓰는 도중에 연구자로의 재능도 없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학술적 글쓰기가 버거운 데다가 형편과 건강도 엉망진창이었고 함께 고난을 견뎌낼 친한 동료 연구자도 없었다. 유학을 하기에도 어학 능력이 부족했다. 학위를 따도 하염없이 시간강사 생활을 전전하지 않을까 두렵기도 했다. 주위 친구가 농담으로 “이왕 가는 김에 박사도 할 거야?”라는 질문은 피하기에 급급했다. 그런데도 대학원은 괴롭지 않았다. 대학원에서 여러 분야를 헤매며 방황했어도 나중에는 기어이 쓸모가 있었다.

이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것은 나 같은 독학자가 대학원 곳곳에 숨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학위를 자격증으로 여기고 온 이도 있을 것이고 사회생활로부터 도피하고자 대학원에 온 이도 있을 것이다. 연구자의 사명을 지니고 온 사람이 오히려 일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솔직히 나는 앞서서 이야기한 두 가지 이유에 다 속한다. 

인터넷 밈에 관한 선행 연구와 비평이 거의 없으므로, 서둘러 인터넷 밈 비평이라는 미개척지를 정복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대학원에 진학했다. 취업전선에서 허덕이는 친구를 보고 사회생활이 두려운 것도 한몫했다. 대부분이 대학원을 수단으로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런 사람마저도 독학자 중 일부라는 것이다.

독학자의 대부분은 공부 중독자일 것이다. 이를 감안할 때, 지금 대학원에 가는 학생은 어리석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학계에 진입하는 데에 어느 정도 요구되는 선행 담론이 있고, 이를 선행 학습하기에도 벅차다. 우선은 학계 밖에서 여러 아카데미가 활성화되는 실정이기에, 대학원에 가지 않더라도 공부를 더 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고 있다. 거기서는 연구자의 사명을 지니지 않더라도 학계에 속하지 않더라도 즐기기만 해도 어느 정도 목적은 충족된다. 학비를 마련하기에 여러 힘든 사정이 있을 수 있는데도 굳이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에는 어느 정도 무모함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순수하게 배움에 대한 열정으로만 대학원에 간 독학자는 대학원을 이야기하는 데에 거의 배제된 존재나 마찬가지다. 학계에 속하지 않았지만, 아마추어보다 프로에 가까운 그들은 논문이나 학회 등 연구 성과를 드러내지 않는 한 어디를 가든지 독학자일 수밖에 없다.

중요한 건 즐겜(즐겁게 게임)하는 마음이다. 오타쿠는 보통 하나의 장르만 덕질하지 않는다. 그 장르에 뒤엉킨 여러 분야를 넘나들려는 초학제적인 열정이 기본으로 깔려 있다. 아무 곳에도 속하지 않기에 모든 곳에 속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이들이다. 즐거움에 기반해 있지, 실적을 내야 한다는 압박에 기반해 있는 것이 아니다. 논문이나 학회 등이 아니더라도 대학원에서 공부하는 것 자체를 즐기는 원우의 목소리가 드러날 수 있는 공간이 생기길 바란다. 덕후가 세상을 바꾼다는 세간의 말마따나 덕후가 대학원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김경수 연세대 비교문학협동과정 석사 졸업
석사 학위 논문 『한국 인터넷 밈의 계보학-<야인시대> 밈 이미지에 대한 매체적 연구』을 썼다. FM 청년 영화평론가상로 등단했으며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영화 전문 매체< Coar>, <여성동아>에서 콘텐츠 관련 비평을 연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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