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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연’에는 고양이가 있다
‘민연’에는 고양이가 있다
  • 최빛나라
  • 승인 2023.07.24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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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이하 민연)에는 고양이가 있다. 그 고양이가 자랑이다. 민연에는 냥인도 있고, 낭인(浪人)도 있다. 이것이 자랑거리가 될 거라고 결코 생각지 못했다. 각자의 세계에서 따로 놀던, 부평초 같은 냥-낭인들은 민연에서 만나 협업하는 즐거움을 만끽한다. 전공‧나이‧성격‧취향 무엇 하나 같은 게 없다. 그런데 재밌고 그래서 서로 배울 것이 많다. 신나는 학문 현장이다.

그러나 공부나 연구만 함께 하는 것이 아니다. 민연은 우리에게 삶터인 동시에 쉼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30여 년을 비흡연자로 살던 내가 민연에 와서 골초가 됐다. 불혹(不惑)을 목전에 두고 논문 쓰기에 끙끙 앓다가 폴폴폴 뿜어보는 줄담배의 참맛을 배운 것이다. 고운 말씨는 구수한 조롱에 능해졌고, 외로운 몸은 독일제 반려 가전의 황홀함도 알았다. 어두운 골목길에서 혹시라도 마주칠까, 고양이에게 지녔던 막연한 공포증은 민연 한편에 길냥이 밥 차리는 기쁨으로 대신 채워졌다. 

민연에는 고양이가 있다. 퉁퉁한 체구에 한쪽 눈을 잃은 턱시도냥이는 ‘까치’가 되었다. 작고 여리게 생겼지만 배짱만큼은 어느 고양이보다 두둑한 치즈냥이는 ‘라떼’라고 부르기로 했다. 까맣고 하얀, 노랗고 붉은 털 뭉치에 어울리는 이름이다. 그러나 생김으로 붙인 이름이 까치와 라떼 자체를 설명해 주지는 못한다. 까치는 어디선가 싸우다 다쳐 애꾸눈인 상태로 민연 마당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생긴 것은 카리스마가 넘쳤으나 알고 보니 쫄보다. 

라떼는 똥꼬발랄한 새끼냥으로 처음 만났다. 그러나 이 깜찍한 얼굴로 멀리까지 하악질을 해대며 이 구역을 평정해버리고는 까칠한 대장냥이가 됐다. 다른 생김, 다른 성격의 까치와 라떼는 공통적인 속성도 있다. 고소한 냄새를 풍기는 사료와 깨끗한 물을 찾아 민연 마당을 오가지만 결코 쉽게 곁을 내주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민연에는 아직 존재를 쉽게 드러내지 않는, 혹은 먼 데서 보았으나 아직 이름 없는 고양이들이 숱하다. 

민연의 냥-낭인들은 길고양이와 비슷한 습성을 지녔다. 고된 풍찬노숙, 정처 없이 떠도는 야인의 삶, 먹고살아야 하는 문제로 보따리장수라는 별칭답게 전국 방방곡곡 영역을 넓혀 시간 강의를 뛰며 사는 방식이 그러하다. 배불리 밥 먹을 수 있고, 얼큰하게 술 마실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반겨 움직인다. 다행히 민연이라는 교차 지점에서 만난 우리는 배부르고 등 따습게 공동의 연구 막노동을 수행하게 됐다. 시일이 정해져 있어 더욱 간절하고 정답다. 

냥-낭인들은 학문후속세대라 불린다. 학문에 감히 기성이라는 것이 있는지, 비전임과 전임을 나누어 신진과 기성을 구분하는 그 명명법이 무척이나 애매하고 우습다. ‘학문후속세대’는 완곡어인가 멸칭인가? 그러나 ‘학문후속세대’의 연구는 기성의 연구와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 집고양이와 길고양이가 세상에서 전혀 다른 대접을 받고 살지만, 생물학적으로 다른 존재가 아닌 것처럼 말이다.

집고양이가 모든 측면에서 길고양이보다 좋은 것만이 아니고, 길고양이도 그들 사는 방식에 대한 ‘가오’가 있다. 그리고 동가식서가숙하는 비전임신진-학문후속세대에게도 ‘늬 집엔 이거 없지?’하는 ‘가오’가 있다. 이것이 정신 승리로 여겨질지라도 상관없다.

‘학문후속세대’라는 이름에 걸린 기대가 무엇인지 짐작할 수 없지 않으나, 그러한 기대나 예측 바깥에서 자유롭게 놀고 싶다. 냥님들도 그 행동이 언제나 예측불가하고 돌발적이기에 더욱 매력적인 존재가 아니겠는가. 돌발과 엉뚱은 학문후속세대만이 누릴 수 있는 재미고 냥-낭인만의 ‘가오’다.

공자님을 좋아하진 않지만, 어쨌든 공자님도 말씀하셨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온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원망하지 않는다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공부, 친구, 즐거움이 함께다. 무려 『논어』의 첫 구절이다. 

물론 군자가 아닌 나는 성질을 참지는 못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같이 성질부려주고 울분 토하며, 끝내주게 놀고 함께 공부하는 나의 ‘위로들’이 있다. 이것이 나의 자랑이 될 거라고 전날에는 결코 생각지 못했지만, 이제는 쩌렁쩌렁 외쳐 우쭐거리고 싶다. 민연에는 고양이가 있다. 그리고 냥-낭인도 언제나 같이 있다! 
 

 

최빛나라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 
한국과 베트남을 중심으로 동아시아의 옛 문학과 문화를 비교하는 작업에 흥미를 두고 있다. 고려대 국어국문학과에서 「한·월 관음보살의 형상 비교 연구: 설화와 도상을 중심으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무엇보다 재미있는 것을, 무엇이든 재미있게 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민연에서 함께 공동 연구를 수행 중인 <호모 아토포스의 인문학: 한국 문학/문화의 '이름 없는 자들'과 비정형 네트워크>팀의 동료들과도 같은 마음으로 만났다. 아직 만나보지 못한 세상 많은 동료들과도 언젠가 교차하는 지점이 있으리라 기대한다. 냥-낭인의 노는 방식이 궁금하다면 놀러오시길. @homoatopos(본계정) @homo_topos(부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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