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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쟁’이 일군 근대화…민간인 학살 직시해야
‘베트남 전쟁’이 일군 근대화…민간인 학살 직시해야
  • 김주현
  • 승인 2023.08.07 07: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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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말하다_『전쟁자본주의의 시간』 김주현 지음 | 성균관대학교출판부 | 432쪽

한국의 베트남전쟁, 전쟁자본주의의 시간을 응시해야 하는 이유

기회로서의 베트남전쟁에 주목

한국전쟁이 끝났을 때 사람들은 페허가 된 현실에 절망하는 만큼 전쟁을 낳은 이데올로기를 환멸했다. 당대인의 심리를 반영하고 있는 전후 소설들에는 이 점이 명료하게 드러나 있다. 반공과 별개로 모든 것을 파탄 낸 이데올로기 자체는 개인의 의지가 작용하지 않는 거대한 재난이었기 때문이다. 전후 50년이 흘러 일상의 모든 영역과 사회주의 국가의 친자본적 행보까지 수용하는, 자본의 전적인 지배를 친근하게 받아들이는 우리의 이 친자본주의적 감각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이 책은 그 답을 찾고자 ‘한국의 베트남전쟁’을 응시했다. 

우리에게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은‘감정적’으로 너무 다른 전쟁이다. 한국전쟁과‘근대화된 조국’사이에는 우리가 잊은‘제2의 한국전쟁’이 있다. 미국이 연합군을 모으고자 다소 의도적으로 쓴 용어를 한국이 받았다. 한국은 명명되는 쪽이 어떻게 반응하건 베트남전쟁을 시종 이렇게 명명하며 8년 6개월 동안 전투를 치렀고, 종전 25년 만에 파월 한국군의 전쟁 범죄가 문제가 되었다. 현재 이 문제는 우리의 ‘과거사’로서 한국 법원과 국가인권위원회에 정식으로 제소되었지만 여전히 양국 정부는 이 문제에 소극적이다. 그렇다한들 있었던 사실이 없어지지 않는데 말이다. 나는 그것이 모두가 아는 대로 베트남전쟁을 ‘조국근대화’의 기회로 잡은 한국의 국민국가적 무의식이 낳은 결과일 뿐 아니라, 한국전쟁기까지도 불온하지만 ‘사상’의 지위에 있었던 공산주의를 하찮게 여기게 된 베트남전쟁 심상지리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참전 50년, 담론과 재현사에 기입된 민족주의

전쟁은 자본주의 발전을 촉진한다.(Werner Sombart:1913) 자본이 국민국가의 경계를 벗어나 전쟁을 자본 축적의 수단으로 이용하며 주변부 지역을 약탈해온 숱한 사례들이 증명하듯이, 우리는 한국전쟁으로 전후를 극복한 일본을 보았다. 한국이 베트남에 참전한 8년 6개월은 역사상 처음으로 전쟁자본주의를 체험한 시간이었다 그런데 반공국민국가의 구성원으로 한강의 기적을 이룬 전쟁자본주의의 시간은 한국 뿐 아니라 시간을 두고 통일베트남에도 영향을 미친다. 현재 한베 양국의‘경제적 결속’은 과거의 불편한 관계를 딛고 시작되었다. 2017년, 한국과 베트남이 수교 25주년을 맞아 ‘전략적 협력 동반자’관계를 맺은 이래 베트남 학생들은 점점 더 많이 한국에 유학 오고, 다낭은 지금 한국인들의 국민 휴양지가 되었다. 

그러나 한편에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과거사로 고통 받는 이들이 있다. 한국의 시민단체와 진보 언론은 지난 20여 년 간 베트남전쟁을 한국의 과거사로 수용하도록 요구해왔다. 이는 굳이 사과를 요구하지 않은 승전국 베트남정부의 ‘대범한’ 태도와 무관하게 베트남인 피해자들 편에서 한국군이 수행한 작전의 문제성을 직시하자는 시민성의 실천이다.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문제를 흔히 한국의 태평양전쟁 피해자들에 비견할 때 국가책임론은 과거사 해결을 위한 기초 단계나, 우리는 베트남정부의 묵인(!) 속에 이 단계를 건너뛰었다.  

이 책은 한국의 과거사로서 베트남전쟁을 응시하며 참전기 한국: 베트남의 민족주의를 아시아내셔널리즘의 충돌로 설명했다. ‘제2의 한국전쟁’인 월남에서 한국인들은 베트남민족주의와 조우해 한국전쟁과‘다른’베트남전쟁의 특수성에 혼란스러워하면서도 이를 부인하는 모순적인 국민국가적 무의식에 빠져든다. 2장과 3장에서 참전 담론의 변화태를 참전-종전-한베 재수교-2000년–시민평화법정을 전환점으로 삼아 공식담론 지배–참전기억 투쟁-대항기억 형성-시민화해실천으로 범주화했다.

한국군, 베트콩, 난민들과 시민평화법정 이후의 이야기    

한국의 베트남전쟁에는 한국군, 베트콩, 난민이라는 주역들이 있다. ‘황색거인’ 한국군과 ‘작은 괴물’ 베트콩은 분리될 수 없는 쌍으로 존재한다. 한국군이 황색거인으로 존재하기 위해 필요한 절대적 타자가 베트콩이었다. 휴전으로 중지된 한국전쟁의 빨갱이 색출이 한국군 승전담을 통해 완료되는 담론의 효과를 4장에서 풀어보았다. 초라해진 사회주의가 베트남의 개혁개방 정책에 따라 다시 사상의 지위를 회복할 때 이제 이들은 친자본적 관료가 되어 있다. 한국이 인도적으로 받은 ‘월남 난민’들은 한국의 가부장제 민족주의에 따라 한국: 베트남의 젠더 구도를 반복하며 한국인이 난민을 대하는 어떤 문법을 만든다. 1975년 한국에 들어온 베트남 난민들에 관한 서사는 이 책에서 촘촘하게 보고자 한 부분이다.

5장은 2018년‘시민평화법정’이후 민간인 학살 문제의 쟁점들을 두 개의 법정(시민평화법정/<별들의 전쟁>)을 통해 살펴보았다. 시민평화법정은 학살 50주년에 가해국의 시민들이 마련한 귀중한 자리였지만 법정이 남긴 숙제 또한 적지 않았다. 2021년‘극단신세계’가 연극 〈별들의 전쟁〉에서 이를‘가해자의 피해자성’으로 풀어낸 것은 이 문제가 도달한 최근의 수준이다. 이것은 한국의 베트남전쟁 연구자들이 앞으로 마주해 풀어야 할 숙제이다. 전쟁자본주의로 성공한 국민국가의 구성원인 우리에게는 여기에 답할 의무가 있다.

 

 

김주현
인제대 리버럴아츠교육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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