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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규X이승우’ 그리고 BTS 슈가
‘김용규X이승우’ 그리고 BTS 슈가
  • 김재호
  • 승인 2023.07.03 18: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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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딜레마-역설’이라는 삶의 삼중주

최근 BTS 슈가는 월드투어를 하며 화제를 몰고 다녔다. 지난달 솔로 공연은 다음 달 앙코르 공연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노래 실력도 실력이지만, 슈가의 작사 능력도 대단하다. 공동으로 작사·작곡한 「사람」(Agust D)이라는 노래는 꽤 철학적이다. 인생의 모순을 잘 드러낸 가사가 빼어나다. 

“없으면 있고 싶기도 있으면 없고 싶기도”는 줏대 없는 인간의 마음을 여실히 드러낸다. “너의 평범함은 되려 나의 특별함 / 너의 특별함은 되려 나의 평범함”은 질투와 시기로 점철된 우리 삶에 작은 울림을 준다. 또한 “사람들은 변하지 너도 변했듯이 / 세상살이 영원한 건 없어 / 다 지나가는 해프닝”은 역설적이게도 지금 바로 이 순간이 소중하다는 걸 일깨운다. 

 

받아들인 꿈은 계시, 받아들이지 않은 현실은 허구

삶은 이율배반과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위대한 질문이 위대한 인물을 만든다고 한다면, 그 질문은 모순을 향해야 한다. 요즘 푹 빠져서 읽은 이승우 작가(조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의 소설 『독』(위즈덤하우스)도 이 세계에 가득 찬 모순을 짚어낸다. 누구나 그러한 이율배반을 경험하는데, 작가는 예리하게 그 지점을 포착해낸다. “받아들인 꿈은 계시가 되고, 받아들이지 않은 현실은 허구가 된다. 꿈도 수용하면 현실이고, 현실도 수용하지 않으면 꿈이나 마찬가지다.”(278쪽) 

소설의 주인공은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무능력하다. 그는 사형수나 베일에 가려진 마담의 얘기를 글로 써야 먹고 살 수 있는 상황이다. 특히 어렸을 때 누나와 자기를 버리고 도망간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그러다 뜻하지 않게 마담을 통해 벗어날 수 없는 사건에 휩싸인다. 이 책에 대해 정홍수 문학평론가는 작품해설 「파르마코스, 속죄양/구원자의 발명」을 통해 “그(주인공 임순관)는 속죄양이자 거꾸로 뒤집힌 왕의 자리로 간다”(318쪽)라고 평했다. 정 평론가는 “어쩌면 평범할 수도 있는 우리 시대의 한 인물이 스스로가 키운 망상 안에서 세상의 속죄양이자 구원자로 변신하는 반영웅의 서사를 완성한다”라며 “망상에 기초한 임순관의 구원론은 실패할 수밖에 없는 가짜 혁명의 서사”라고 지적했다.(320쪽) 

부자유를 경험해야 자유로울 수 있는 처지, 적절한 혹은 극단의 고통이 있어야만 행복할 수 있는 역설이 바로 우리가 사는 세계다. 최근 얘기를 나눈 김곡 작가는 “챗지피티한테는 고통이라는 저항이 없다”라고 일갈했다. 고통을 모르는 챗지피티가 과연 어떤 좋은 글쓰기를 할 수 있단 말인가. 사실 글쓰기는 고통을 기반으로 한다. 무언가를 끄집어내는 것도 고통이요, 그걸 어떻게든 말이 되도록 쓰는 것도 고통이다. 이승우는 소설 속 주인공을 내세우며 다음과 같이 적었다. 

“쓰는 자는 기록할 가치가 있는 무언가가 있어서 쓰는 것이 아니다. 그런 사람도 있지만, 모두 그렇지는 않다. 어떤 사람은 그것 말고는 달리 할 일이 없기 때문에 쓴다. 예컨대 내가 그렇다. 진정으로 삶을 사는 자는 쓰지 않고, 쓰려고 하지 않는다. 쓰지 않고도 그는 살아 있기 때문이다. 삶이 결여된 사람만이 쓰고, 쓰려고 한다. 왜냐하면 그는 쓰는 행위를 통해서라도 삶의 비어 있는 부분을 메꿔야 한다고, 보충해야 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예컨대 내가 그러하다.”(『독』의 4월 7일 목요일 일기 중)

BTS의 슈가처럼 이승우 작가 역시 반어법을 자유자재로 활용한다. 이승우의 에세이집 『소설가의 귓속말』(은행나무)을 보면, “욕망이 강한 사람은 만족할 줄 모르고, 만족할 줄 모르기 때문에 욕망한다”라는 문장이 나온다. 욕망과 만족이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얽혀 있다. 아울러, 이 작가는 선택과 자유에 대해 깊이 있는 성찰을 보여준다. “상황 속에 있는 인간은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자유롭지만,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부자유하다. 어느 것을 선택하든 선일 수 없는 상황에서 어떤 선택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인간의 자유는 권리가 아니다.”

소설가 이승우에게 이 세계는 탐색의 대상이다. 그중 가장 흥미로운 건 바로 자기 자신이다. 이 작가는 앞의 에세이집에서 “나는 내가 가장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내 말과 글이 허우적거림인 이유이다. 그러나 모른다는 것은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아니고 꾸준해야 할 이유이다”라고 적었다. BTS 슈가가 ‘사람’에 대한 성찰을 노래로 표현한 것처럼, 이 작가 역시 인간에 대한 특히 자기 자신에 대한 탐구를 열심히 한다. 내가 나를 모르기 때문에 부지런히 글쓰기를 할 수밖에 없다.  

“가장 알 수 없는 사람이 내 자신이다. 나는 나를 믿을 수 없고 나를 믿을 수밖에 없다. 나는 나를 사랑할 수 없고 나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나는 나일 수 없고 나일 수밖에 없다. 나는 나의 주인이고 나의 종이다. 나는 너무 많다. 너무 많은 나들 가운데 어느 하나가 나를 대표하는 것이 아니고 각각의 나들이 합쳐져서 하나의 온전한 나를 이루는 것도 아니다. 이렇게 말해도 충분히 말해지지 않는 것이 사람이다. 어떻게 말해도 충분하지 않으므로, 않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말해야 하므로 모든 말은 불완전하다. 어떻게든 말하는 것은 일종의 허우적 거림이다. 이 몸짓은 무엇이라도 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놓인 자가 하는 무엇이다.”

 

프로타고라스의 딜레마 그리고 양립주의

BTS 슈가, 이승우의 독법이 닮은 것과 같이 철학자 김용규도 모순을 맞닥뜨리는 정수를 보여준다. 철학자에게 그것은 ‘딜레마’로 불린다. 김용규는 『신: 인문학으로 읽는 하나님과 서양문명 이야기』(IVP)에서 딜레마를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프로타고라스의 딜레마나 양립주의의 성립 가능성을 풀이한다. 전자는 에우아톨로스라는 제자와의 소송을 얘기한다. 제자는 스승에게 수업을 받기 전, 수업을 다 듣고 나서 첫 번째 소송에서 지면 수업료를 안 내도 된다는 말을 듣는다. 이 철없는 제자는 첫 번째 소송을 스승에게 걸었다가 역습을 당한다. 후자는 “강제하는 자는 모든 것을 알고 있지만, 강제당하는 자는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한정된 상황’ 아래서는 양립주의가 문제없이 성립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된다. 

신(하나님)을 설명하는 방식도 역설적이다. 신은 만물을 규정하기에 규정할 수 없다. “하나님은 만물의 궁극적 근원이라는 자신의 속성상 그 어떤 것으로도 규정할 수 없는 무규정자, 그 무엇으로도 한정할 수 없는 무한정자라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만물의 궁극적 근원이 될 수 없지요.”(85쪽) 이성이 아닌 믿음의 종교성을 강조하는 대목에서도 이율배반이 등장한다. 믿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김용규는 “믿을 수 있는 것을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라면서 “믿을 수 없는 것을 믿는 것이 믿음”이라고 적었다.(644쪽) 아브라함은 믿을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김용규의 글쓰기 스타일도 모순 어법을 사용하는 듯하다. 『소크라테스 스타일』(김영사)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들이 나온다. “이제 세상에는 거짓과 개소리가 가득하고, 진리와 정의는 아득하다.”, “소크라테스가 태어날 때, 그는 울었고, 세상은 기뻐했다. 그가 죽을 때, 그는 기뻐했고, 세상은 울었다.”
 
요컨대, 김용규 철학자, 이승우 작가, BTS 슈가는 어딘가 닮아 있다. 이 세계와 삶이 그리 간단치 않으며, 수많은 모순과 딜레마, 역설의 삼중주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특히 그 틈새들을 빼어난 수사학으로 드러냈다는 점에서 탁월하다. 그 결과, 독자나 청자는 위로를 받는다. 왜냐하면 나만 그렇게 힘든 게 아니라는 걸 알아챌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나만 이 세계에 고립돼 있지 않다는 걸 공감하고 위로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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