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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진실·개소리 떠들썩한 시대…‘빼기의 철학’이 진리 비춘다
탈진실·개소리 떠들썩한 시대…‘빼기의 철학’이 진리 비춘다
  • 김재호
  • 승인 2023.06.01 08: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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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인터뷰_『소크라테스 스타일』(김영사 | 560쪽) 쓴 김용규 작가

심사위원 만장일치 우송철학상 대상
‘생각-이성-융합의 시대’ 3부작 기획

지금까지 이런 철학 책은 없었다. 바로 지난해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우송철학상 대상을 수상한 『소크라테스 스타일』이다. 미켈란젤로(1475~1564)는 3년 동안 망치와 정으로 차가운 돌덩이를 내리쳤다. 아름다운 「다비드상」(1501~1504)을 만들기 위해 신체 이외의 것들을 전부 제거한 것이다. 바로 소크라테스(기원전 470년경~기원전 399년)의 스타일인 ‘빼기의 철학’이다.

스티브 잡스(1955~2011)는 어떤가? 11년 만에 돌아온 애플에서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은 20가지가 넘는 제품군을 4가지로 축소한 것이었다. 잡스는 나이키의 최고경영자에게 컨설팅 할 때도 쓰레기는 다 버리고 최고의 제품에만 집중하라고 조언했다. 이 책의 저자인 김용규 작가(철학박사)는 책에서 “선택지가 많다는 것은 장점이 아니라 부담”이라고 지적했다.

이 책은 소크라테스가 어떤 사람이었고, 어떤 스타일의 삶을 살았으며,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철학의 장중한 역사를 관통하며 서술했다. 특히 재미와 의미를 두루 갖췄다. 수사학을 활용한 대중성과 논증 차원의 학술적 깊이가 상당하다. 예를 들어, “소크라테스가 태어날 때, 그는 울었고, 세상은 기뻐했다. 그가 죽을 때, 그는 기뻐했고, 세상은 울었다”라는 문장은 해학과 성찰을 동시에 던진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자신의 로고스를 따르는 것이었다. 지난 16일, 김 작가를 서면 인터뷰했다.

김용규작가는 독일 프라이부르크대와 튀빙겐대에서 철학·신학을 공 부했다.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선택하고 그것을 향해 스스로 변화하게 하는 것이 철학의 본분이라 여기며, 대중과 소통하는 길을 끊임없이 모 색해왔다. 『생각의 시대』, 『신』, 『데칼로그』 등을 썼다. 사진=김용규

 

말과 삶의 일치, 죽음 초연한 철학자

죽음 앞에서 초연할 수 있는 사람은 정말 드물다. 다만, 자신의 신념과 철학이 강한 사람은 죽음마저도 초월한다. 김 작가는 “소크라테스는 말(logos)과 삶(bios)이 일치해야 한다는 비판적 태도의 모범을 아테네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라며 “그럼으로써 아테네 시민들의 삶과 공동체의 안녕과 번영에 기여하고자 했다”라고 설명했다. 소크라테스에게 이성과 실천, 말과 행동은 하나였다.

소크라테스를 닮고자 했던 인물이 바로 세네카(기원전 4년경~기원후 65년)이다. 김 작가는 책에서 “신적 영원성과의 합일이라는 ‘존재론적 승화’에 대한 믿음이 깔려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살 줄도 알고 죽을 줄도 아는 이러한 용기는 미국 시카고대 교수였던 파울 틸리히(1886∼1965)가 이름 붙인 ‘존재에의 용기’이다. 그래서 어떤 조각가는 ‘소크라테스-세네카 쌍둥이 흉상’을 만들었다. 3세기 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흉상은 독일 베를린 고미술관에 전시돼 있다.

 

소크라테스(기원전 470년경~기원전 399년)는 빼기의 원칙을 통해 편견을 없애고자 했다. 이미지=픽사베이

『소크라테스 스타일』은 디오게네스부터 키르케고르를 거쳐 비트겐슈타인과 바디우, 지젝 등 철학사를 ‘빼기의 철학’으로 뒤집어 봤다는 점에서 전복적이다. “소크라테스는 ‘빼기’라는 원칙을 통해 석상을 만드는 석공이 아니라 진리와 삶을 조각하는 석공이 됐다.” 김 작가는 “그가 세상을 뜬 이후에는 이 빼기의 원칙이 후세 사람들에 의해 한편에서는 사유의 방식으로, 다른 한편에서는 삶의 방식으로 계승이 되어 내려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탈진실·개소리가 난무하는 시대에 소크라테스 스타일은 더욱 긴요하다. 소크라테스의 사유 방식은 그의 스타일이 됐고, 지금까지 영향(이펙트)을 끼치며 개소리와 가짜뉴스가 판을 치는 세상을 깨우친다. 누구든 진리에 도달하고자 한다면 억견, 궤변, 편견 등을 하나씩 제거해가야 한다. 김 작가는 “오늘날 각종 매체와 인터넷에는 날조된 지식과 왜곡된 신념, 숱한 오해와 편견 그리고 황당한 미신과 궤변, 터무니없는 가짜 뉴스가 홍수처럼 범람하고 있다”라며 “포퓰리스트는 거짓말을 식은 죽 먹듯 하고, 각종 경제적·사회적·정치적·종교적 이익집단은 이데올로기화돼 대중을 기만·선동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소크라테스가 소환되는 이유다.

소크라테스는 50세 전까지 석공 일을 했다. 가업을 이어 받은 것이다. 특히 소크라테스가 어렸을 때그의 아버지는 몇 날 며칠이 걸리는 델포이 신전에까지 무리하게 가서 아들의 미래를 신탁했다. 소크라테스가 공부를 해도 되는지, 교육의 차원에서 물어본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어렸을 때 가난해 교육과 거리가 멀었다. 그러자 친구인 크리톤이 소크라테스가 공부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 도왔다. 소크라테스는 전쟁에 참여했고, 늦은 나이에 결혼했다. 소크라테스는 친구의 딸과 두 번째 결혼도 했다. 27년이나 지속된 펠레폰네소스 전쟁으로 고대 그리스에 과부가 많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소크라테스의 ‘빼기의 철학’은 기독교의 사랑, 불교의 무나 공, 도가의 도를 연상하도록 한다. “동서고금의 모든 도덕적·종교적 교훈과 수행·수련의 공통점이 자신의 사유와 삶에서 ‘빼기의 원칙’을 고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김 작가는 “소크라테스는 논박을 통해 우선 상대가 논리적 모순에서 벗어날 수 있게, 다시 말해 경건, 절제, 용기, 아름다움, 정의와 같은 미덕들에 대한 편견과 억견을 버릴 수 있게 하려고 혼신의 힘을 다했다”라며 “그 결과 아테네 사람들이 진실하고 아름다운 윤리적 삶을 살게 함으로써 진리와 정의가 바로 선 이상적인 도시국가로 변화시키려고 했다”라고 답했다. 독일의 철학자 페터 슬로터다이크의 자기 수련, 프랑스의 철학자 미셀 푸코(1926∼1984)의 자기 돌봄 등이 같은 맥락이다.

 

 

‘자기 수련-돌봄’으로서 빼기의 원칙

소크라테스 스타일인 ‘빼기의 철학’을 학습하는 방법은 “내적으로는 안락과 사치 및 과시를 추구하는 인간의 원초적 욕망에 불복종하고, 외적으로는 소비물질주의를 강요하는 후기자본주의 체제의 부당한 요구에 불복종하자는 것”이다. 김 작가의 설명에 따르면 올해 1월 24일, 미국 핵과학자회의(BSA)는 ‘최후의 심판일 시계’의 초침을 파멸을 상징하는 자정쪽으로 10초 더 이동시켰다. 이제 지구 종말까지 남은 시간은 90초다. 지구는 이미 이산화탄소 한계치인 400ppm을 넘어섰다. 재앙을 피하려면, 2015년에 체결된 파리기후변화협약의 목표치인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2050년까지 0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자국 이기주의는 문제를 악화시키고 있을 뿐이다. 이젠 정말 시간이 없을지도 모른다. 김 작가는 “빼기 혁명은 우리 시대의 요청이자 정언명령(定言命令)”이라며 “소크라테스를 소환해 ‘사유방식의 혁명’, ‘삶의 방식의 혁명’을 일으켜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소크라테스 스타일』은 2022 우송철학상 대상을 받았다. 김 박사는 “우송철학상은 철학의 현실화, 현실의 철학화를 위해 애쓰셨던 우송 김태길 전 서울대 철학과 교수의 뜻을 기리기 위해 만든 상”이라며 “시민들이 진실하고 아름다운 윤리적 삶을 살게 함으로써, 사회를 진리와 정의가 바로 선 공동체로 변화시키려고 했던 김태길 교수의 뜻을 받들라는 준엄한 명령으로 생각한다”라고 답했다.

김 작가는 ‘생각-이성-융합의 시대’ 3부작을 기획해 추진하고 있다. 이성의 시대는 추후 ‘플라톤 스타일’, ‘아리스토텔레스 스타일'로 이어질 예정이다. 다만, 출판 시장의 굴곡에 따라 사정은 바뀔 수 있다.

이 책의 3장에는 빅토르 위고(1802~1885)의 명언이 담겨 있다. “역사란 미래에 울려 퍼지는 과거의 메아리다.” 그 옛날 소크라테스가 진리를 비추기 위해 논박술과 죽음으로 외친 역사는 지금도 어디선가 울림을 주고 있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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