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7 19:50 (토)
사상의 복원…‘신체실감’의 관심·관계성에서 열린다
사상의 복원…‘신체실감’의 관심·관계성에서 열린다
  • 박동섭
  • 승인 2023.07.07 10: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역자가 말하다_『레비나스, 타자를 말하다』 우치다 타츠루 지음 | 박동섭 옮김 | 세창출판사 | 296쪽

레비나스와의 충돌을 일부러 연출하며 사상 복원
폐허가 된 작품은 커뮤니케이션 현장에서 재구성

사상 혹은 철학에 대한 독해는 두 가지 지향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재현적 지향’이고 또 하나는 ‘확장적 지향’이다. ‘재현적 지향’은 레비나스 사상의 상세한 ‘겨냥도’를 묘파하면서 레비나스 사상을 정확하게 재현하려는 지향이다. 이 지향은 궁극적으로는 ‘텍스트 비평’의 형태를 취하게 된다. 그러나 ‘텍스트 비평’으로의 지향에는 ‘오리지널 텍스트’의 실재를 전제로 하는 소박한 ‘리얼리즘’이 깔려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반면에 저자인 우치다 다쓰루는 레비나스 이외의 타자(주로 라캉)의 아이디어를 보조선으로 채택해서 레비나스의 사상을 보완하고, 때로는 레비나스와의 충돌을 애써 연출함으로써 레비나스 사상의 가능성을 끌어내는 방향을 취하고 있다. 즉 ‘확장적 읽기’를 실천하고 있다. 저자의 말로 바꾸면 ‘완전기호의 읽기’다.

이 책은 무엇보다도 레비나스 사상의 핵심을 해명하기 위해서 레비나스의 가르침에 따라 ‘자유롭게, 그리고 과감하게 발명의 재능을 발휘’하고 있다. 즉 ‘타자와 사자’라는 개념을 축으로 ‘가능성’으로서의 사상의 핵심을 밝히는 독해전략을 취하고 있다. 그때 라캉, 후설과 하이데거 나아가서는 카뮈와 무라카미 하루키와 같은 몇몇 타자의 사상을 보조선으로 도입해 레비나스 사상과의 대화적인 접합을 시도했다.

레비나스가 우리에게 남긴 문자로는 그의 사상은 물론이거니와 입말조차 재현할 수 없다. 문자가 말의 흔적이긴 하지만, 원래 말과는 단절된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의 유인이다. 문자는 과거 수행된 커뮤니케이션 장의 폐물이기 때문에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시 커뮤니케이션의 현장을 구성할 필요가 있다. 물론 당연한 말이지만 재구성한 커뮤니케이션의 장은 원래의 장이 될 수 없다.

레비나스의 작품도 똑같다. 그것은 사상의 폐허이다. 폐허가 낙원이 아닌 것처럼 폐허인 작품을 문자 그대로, ‘사상 그 자체’로 간주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작품은 다시 커뮤니케이션의 공간에서 복원될 필요가 있다.

레비나스의 작품은 온전히 복원될 수 있을까? 사진=위키피디아

그런데 복원은 오리지널(레비나스의 사상)에는 도달할 수 없는 실천이다. 보통 복원은 ‘복고적인 활동’이라고 간주된다. 실제로 복원자는 복원의 정당성과 자신이 진정한 역사의 계승자임을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복원자의 이데올로기에 지나지 않는다. 오리지널(작품)은 이미 폐허로밖에 남아 있지 않으므로 그것을 ‘복원’하고 싶은 동기가 생겨나는 것이지 오리지널이 있다면 복원 행위 그 자체가 필요치 않다. 

사상을 복원하기 위해서는 읽는 이의 신체와 삶, 그리고 간청이 필요하다는 레비나스의 가르침을 통해서 우리가 간취해야 할 것은 사상에 대한 복원이란 늘 현재의 독자의 신체실감에 기초한 관심과 관계성 속에서 열린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복원은 순수한 과거가 될 수 없고 늘 어긋남의 산출을 필연으로 한다. 

비유적인 표현을 사용하자면 우치다 다쓰루의 레비나스 사상에 대한 해석은 고대의 유적에 남겨진 단지 한 장의 악보를 보고 자신의 전용 악기로 그것을 연주하려는 연주가의 자세와 비슷하다. 연주가는 그 고대의 ‘악보’를 연주하기 위해 악기를 손수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때에 따라서는 원곡이 만들어진 무렵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재료’와 당시에는 아무도 몰랐던 공법으로 만들어진 ‘악기’일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연주 방법 또한 고대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방법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연주자의 ‘신체’와 ‘삶’이 빚어내는 고유한 음감과 리듬감, 그리고 질주감으로 인해 해당 연주가가 아니고서는 그 누구도 재현할 수 없는 ‘음조’가 나올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럼에도 그때마다 연주가가 자신의 ‘실존’을 걸고 연주를 하는 한, 그것은 ‘동일한 작품’(사상)의 새로운 ‘상’을 관객들에게 보여 줄 것이다. 실제로 커버를 하는 모든 뮤지션은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정형적인 해석을 기교에만 의존해서 반복하는 사람보다도 “이 곡에 이런 해석이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라며 놀랄 만한 창의적 퍼포먼스를 보여 준 사람을 높게 평가한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우리는 우치다 다쓰루를 ‘사상의 복원사’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레비나스와 그의 제자인 우치다 다쓰루는 레비나스 독해를 위해 우리에게 ‘연주가’가 될 것을 넌지시 요구한다. 그리고 자신의 전용 악기와 연주 방법으로 연주할 때야 비로소 레비나스라는 고대 악보는 2023년 대한민국에서 복원될 것이다. 

 

 

박동섭
독립연구자
일본 츠쿠바대 인간종합과학 연구과에서 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사로 살다』, 『레프 비고츠키』, 『해럴드 가핑클』, 『회화분석』, 『우치다 선생에게 배우는 법』, 『상황인지』, 『에스노메소돌로지』를 집필했고, 『보이스 오브 마인드』, 『수학하는 신체』, 『수학의 선물』, 『단단한 삶』, 『심리학은 아이들 편인가』, 『스승은 있다』, 『망설임의 윤리학』을 우리말로 옮겼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