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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긴 여울 3
기나긴 여울 3
  • 김재호
  • 승인 2023.06.30 11: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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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백 | 문예바다 | 256쪽

실존적 사랑과 휴머니즘 혁명의 여성 연대기

이영백 중국 푸단대 석좌교수의 대하소설 《기나긴 여울》이 금번 3권 출간으로 완간됐다. 계간 종합 문예지이자 문학 전문 출판사인 《문예바다》에서 출간된 이 역사소설 시리즈는 작년 가을 1권을 시작으로, 2권이 나온 금년 겨울을 거쳐 여름에 대미를 장식하게 됐다. 통상 대하소설 집필에 수년, 십수 년이 걸리는 데 비해, 이영백 교수는 1년도 채 안 돼 3권 분량을 생산했다는 점에서 그의 왕성하고도 폭발적인 필력을 가늠할 수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대를 이은 모녀 사이인 네 명의 여인들은 독립운동가, 민주화투쟁가, 산업역군, 기업인 등으로 대한민국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시대 현실의 어려움과 개혁 참여의 필요성을 인식하면서도, 개인의 자아실현 역시 포기하지 않고 달성해나가는 모습에서 건강한 시민의식과 건전한 세계관을 발견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한국 현대사를 다뤄온 여타의 대하소설들이 특정 영웅의 서사시를 지나치게 미화하거나, 좌우 이념에 사로잡혀 역사 해석의 편향성을 일부 보여준 것과 달리, 독립적 자아로서의 자유스러운 행복 추구와 건설적인 사회 변혁 동참을 조화롭게 접목시켰다는 점에서 문단의 호평을 이끌어내고 있다. 

작가는 출간 의도를 밝힌 글에서 "여성적인 것은 일반적으로 폭력적인 것이 아니다. 전쟁과 폭력이 아닌 배려와 수용, 어머니의 사랑과 인내 이런 아주 고귀한 것들이 포함되어 있지 않는가"라며 "따라서 이런 여인들 얘기를 제대로 쓸 수가 있다면 이를 통해 폭력과 전쟁으로 얼룩졌던 한국 사회를 위로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한국 현대사에서 여성 영웅들의 기여와 희생 사실을 발굴, 조명한 문학작품들은 종종 있어 왔으나, 이처럼 4대에 걸친 여성 연대기를 통해 우리 사회의 변화상과 도약의 과정을 통시적, 공시적으로 묘파한 소설은 《기나긴 여울》이 처음일 것이다. 특히 여성을 사회 개혁과 역사 발전의 주역으로 형상화하면서도, 자아실현 추구에서의 갈등과 사랑에 대한 열망을 부여함으로써 고뇌하는 실존적 인간의 면모를 수준 높게 그려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미화와 윤색으로 점철된 허구의 영웅담이 아닌, 지극히 현실적이고 인간적인 여성 담론이자 자신 앞에 놓인 개인과 역사의 문제들을 고민할 수밖에 없는 솔직한 성장통이다. 부인과 배제, 폭력과 파괴의 좌파적 역사 해석에서 벗어나, 개인의 실존적 자유를 추구하고 행복과 사랑이라는 인생의 원초적 목적을 긍정함으로써, 역사 현실 속에 살아 숨쉬는 여성성을 휴머니즘적으로 승화시켰다는 평가가 나온다. 

《문예바다》 대표로 재임하고 있는 백시종 전 한국소설가협회장은 "이영백의 소설은 철저한 사료 조사와 분석을 거쳐 서사의 면밀함을 밀도 높게 구현했다"며 "사랑 추구와 혁명 참여의 중대 기로에 선 4대 모녀의 아름다운 고뇌와 선택에서 인간의 실존적 면모를 발견할 수 있어 참신한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논했다. 

본 소설의 해설을 맡은 신승민 문학평론가는 "이영백 소설은 작중 인물의 ‘자아실현’에 방점을 찍고 있다. 애인과의 사랑, 가족 일구기, 직업적 성취 등이 중심 서사가 되어 극을 전개하고 있다"며 "배경 무대가 되는 역사현실은 인물의 삶과 평행을 이루며, 그러나 ‘괴리되지 않고’ 균형 잡힌 상태로 전진한다. 인물은 평정심을 갖고 자아실현을 추구하면서도, 역사현실에 대한 우려와 개혁 의지를 줄곧 고수하며 살아간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신승민 평론가는 "이영백 소설에서 ‘역사 바로 세우기’는 일상생활과 결코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 자기 삶을 잘 가꾸어나가는 사람이 인생의 중심을 잡고 역사를 밝고 바르게 바꿔나가는 데 더욱 힘을 제대로 쓸 수 있다는 것"이라며 "이영백 소설은 네 여인의 인생 개척사를 조명하면서, 이념에 대한 복종을 신봉하거나 투쟁 일변도의 신념을 주입하지 않았다. 인간을 도구가 아닌 목적으로 보는 휴머니즘적 세계관이다"라고 평가했다. 

물리학계 석학인 작가 이영백은 한국물리학회장, 한양대 물리학과 석학교수를 역임하고 현재 중국 푸단대 석좌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정회원과 한국문인협회, 한국소설가협회 회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집필 소설로는 《사랑, 이별, 그리고 결혼의 랩소디》, 《외계행성에서는 와인을 드세요》, 《과거와의 네 가지 해후》와 각 동명의 중국어판 등이 있다. 금번 3권 출간으로 완간된 《기나긴 여울》 시리즈 역시 중국어판으로 번역 중에 있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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