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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교육의 길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교육의 길
  • 김병희
  • 승인 2023.06.26 08: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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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_ 김병희 편집기획위원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김병희 편집기획위원

내비게이션(navigation). 지도를 보여주거나 지름길을 알려주며 자동차 운전을 도와주는 장치나 프로그램을 뜻한다. 사람들은 보통 ‘내비’라고 부르는데, 우리말 순화어로는 ‘길 도우미’가 맞다. 내비게이션의 원뜻이 항해라서인지 영미 문화권에서 내비게이션이라 말하면 무슨 말인지 잘 모르고, 지피에스(GPS)라 하면 금방 알아듣는다.

일본에서는 영어를 조합해 새 단어를 만드는 재플리쉬(Japlish) 조어법을 써서 ‘카나비(カーナビ)’라 부른다. 뜬금없이 웬 내비게이션 타령이냐 하겠지만, 학생을 가르치는 지혜를 내비게이션에서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내비게이션은 절대 화를 내지 않는다. 운전자가 안내하는 대로 가지 않고 다른 길로 가더라도 내비게이션은 결코 화내는 법이 없다. 오히려 새로운 경로를 찾아주며 운전자가 목적지까지 갈 수 있도록 계속 도와줄 뿐이다.

교수를 비롯한 여러 선생님의 경우는 어떠할까. 학생이 자신의 가르침에서 벗어나 다른 길로 가려고 하면 불같이 화를 내면서 야단칠 때도 적지 않다. 제자가 어긋나면 참아주고 기다려주다가 내비게이션처럼 새로운 방향을 제안해주며 학생이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도록 다른 길을 찾아주면 안 되는 것일까?

내비게이션은 최신 자료를 업데이트한다. 새 길이 나면 도로 정보도 바뀌게 마련이다. 그때마다 내비게이션은 새로운 도로 정보를 수시로 업데이트한다. 자동차를 운전하다 보면 내비게이션이 엉뚱한 곳으로 데려가기도 한다. 심할 때는 낭떠러지가 코앞인데도 계속 직진하라고 안내한다. 오래전에 세팅된 도로 정보를 따라가다 벌어지는 낭패다.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가 최신 자료를 얼마나 자주 업데이트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디지털 문명에 익숙한 디지털 원주민들에게 오래전의 아날로그 정보를 반복적으로 가르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비게이션은 멀티미디어 기능이 있다. 내비게이션은 경로 안내 이외에도 즐겁게 운전하도록 배려한다. 선택에 따라 음악 감상도 할 수 있고, DMB 영상도 시청할 수 있다. 지루해질 수 있는 운전자에게 내비게이션이 주는 즐거운 혜택이다.

강의 시간에 학생이 꾸벅꾸벅 존다고 해서 혼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학생이 밤새 게임을 했거나, 힘든 알바에 지친 탓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강의를 얼마나 지루하게 했으면 학생을 졸게 하는지 자신의 강의 방식을 되돌아보며, 멀티미디어처럼 즐거움을 주는 강의를 개발해야 하지 않을까?

내비게이션은 든든한 조언자 역할도 한다. 내비게이션은 본분에 충실하면서도 실제로 도움이 되는 조언을 해준다. 과속단속 카메라가 몇 백 미터 전에 있다며 과속하지 말라고 경고하거나, 유료 도로의 통행료가 얼마인지도 알려준다. 하이패스 차선이나 현금 지불 차선도 안내한다.

교수가 학생 상담 시간에 학생들에게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는 구체적인 조언을 얼마나 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시간 때우기 식의 학생 상담은 이제 그만. 학생에게 지금 도움이 되는 현실적으로 유용한 조언을 해줘야 하지 않을까?

심지어 내비게이션의 역기능마저도 교육에 도움이 된다. 오로지 내비게이션에 의존해 운전한다면 운전자는 결국 길치나 방향치가 될 것이다. 내비게이션이 보편화되기 이전인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운전자들은 지도를 보며 목적지를 찾아갔다. 지금은 내비게이션이 고장 나면 아예 운전 자체를 하지 못할 운전자도 꽤 있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교수가 학생의 입속에 지식을 떠먹여주는 식의 교육에만 치중한다면, 학생들은 결국 공부의 길치나 방향치가 되지 않을까? 

학생 스스로 공부의 독도법(讀圖法)을 깨우치도록 하는 선생님들의 길 안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초행길 운전자에게 내비게이션이 든든한 길벗이 되듯, 가르치는 선생님들도 지식 초행길의 학생들에게 든든한 도우미가 돼야 한다.

도로가 복잡할수록 운전하기가 더 어렵듯이, 세상이 복잡해질수록 공부하기도 더 어렵다. 이런 때일수록 교수님들께서 내비게이션의 네 가지 순기능과 한 가지 역기능을 교육 현장에 접목해보면 어떨까 싶다. 출퇴근할 때마다 길 안내만 받지 마시고 교육 내비게이션도 함께 켜시길!

김병희 편집기획위원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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