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7 17:20 (토)
세상이 바뀌어도 내 공부나 할 뿐
세상이 바뀌어도 내 공부나 할 뿐
  • 김영진
  • 승인 2023.06.19 15: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학문후속세대의 시선_김영진 동국대 철학과 박사과정

모르는 것이나 궁금한 것을 해결하는 여러 방법이 있다. 그중 하나가 소위 학문이라 말하는 것이다. 글자를 아는 사람이 많지 않고, 글에 담긴 정보를 전달해 주는 교육기관이 많지 않았을 땐 학문하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의 부러움을 샀을 게다. 그런데 현대 사회에 들어서 많은 것이 바뀌었다. 글을 모르는 사람의 수는 근대 이후로 빠르게 줄어들었다. 지구 위에 사는 사람들의 수는 최근 1세기 사이 빠른 속도로 증가했지만 문맹률은 계속 낮아진 덕분이다. 지금은 단순히 글을 안다고 ‘배운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제는 문맹률은 잘 따지지도 않는다. 그만큼 글을 아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그 많은 사람이 전달하거나 공유하는 정보의 양과 질도 달라졌다. 세상이 이렇게 바뀌었는데 먹고사는 방법이라고 해서 이전의 것 그대로이겠는가. 빠르게 변하는 기술, 경제 흐름은 무엇을 좇아야 하는지 방향조차 잡기 어렵다. 모르는 것이나 궁금한 것을 해결하는 방법도 계속 바뀌고 있다. 

요즈음 모르거나 궁금하다고 학교에 가는 아이나 청년은 거의 없다. 솔직히, 궁금한 게 너무 많아서 그것을 알고 싶어 (대)학교를 가지도 않는다. 최고의 학문과 진리가 저 위에 있어 특정 학교에 가나. 그런 사람이 있다고 해도 한 줌의 모래알만큼도 되지 않을 것이다. 이전에는 그런 시절이 있었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가벼운 핸드폰이나 태블릿 하나면, 궁금함의 상당 부분을 해소할 수 있거나, 궁금함을 해결하기 위한 근거를 찾을 수 있다. 특히나 요즈음 몇 년 사이 변해버린 기술과 생활환경도 그런 분위기를 더 강하게 만들었다. 팬데믹으로 인한 비대면 정보 공유와 학습, 그리고 인공지능의 거침없는 등장이 배움과 학교를 동일시하기 더욱 힘든 상황을 만들었다. 

분위기가 이럴진대, 대학원생인들 온전하랴. 이전에는 대학원 다닌다고 하면 그래도 학문에 뜻이 좀 있다고 여겨졌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대학원이 취업 공백을 대체하기 위한 피난처 역할을 하더니, 이제는 대학원생은 반백수와 다름없이 여겨진다. 그렇다고 대학원이 학문적 지식을 독점하는 것도 아니다. 학문적 지식과 정보를 따로 분류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웃기게 되었다. ‘돈이 되는’ 일부 이공계 분야를 제외하면 많은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 그 지식과 정보가 재조합된 새로운 콘텐츠도 온라인 세상에서 더 활발히 생산된다. 더 활발하다고 말하기는커녕 오히려 정보의 주 활동 무대가 학계가 아닌 온라인 세상이 돼버렸다. 

다만, ‘아직’ 세상은 대학원 졸업장을 원하고, 졸업장 있는 사람을 ‘아직’ 조금 더 우대해 줄 뿐이다. 서가에 나오는 최근 교양서적을 보면 전문 학위가 없는 ‘전문가’도 양질의 콘텐츠를 생산해 내고 있다. 전문 서적이라고 해도 질의 평준화는 시간문제일 것 같다. ‘종이’에 익숙한 내가 잘 모르는 온라인 세상은 더 하지 않을까.

궁금한 걸 대답해 주는 인공지능 서비스가 시작됐다. 인공지능은 시간이 갈수록 인간의 물음에 대한 대답의 질을 개선할 것이다. 물론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간 인간의 궁금함에 풍성한 조언과 학습 방향을 제시하는 존재가 지도교수가 아닌 인공지능이 될 날이 오지 않을까 모르겠다. 상아탑이 학문의 인큐베이터의 역할을 언제까지 해줄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 대학원이 아닌 곳에서 논문과 같은 정보를 생산할 세상도 멀지 않은 것 같다. 제도와 행정이라는 그 커다란 느림보 덕분에 세상이 바뀌는데 시간이 좀 더 걸릴 뿐이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대학원에서 공부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다. 거기다 지금 대학원에서 하는 공부가 훗날의 경제소득과 상관없게 된다면 무슨 생각이 드는가. 모르겠다. 난 세상이 변해도 하던 것이 공부니 그냥 할 뿐이다. 여전히 모르는 게 많다. 신기한 전자제품과 재밌는 게임이 나온다고 좋아하던 어린 시절, 시간이 흐르는 게 기다려지고 세상이 바뀌는 즐거울 때가 있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김영진 동국대 철학과 박사과정
동국대 철학과에서 자율주행자동차에 관한 윤리적 논의 비판을 다룬 연구로 석사과정을 마쳤다. 철학의 현대적 모습을 고민하며 연구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