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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개석의 이덕보원과 한일관계
장개석의 이덕보원과 한일관계
  • 조대호
  • 승인 2023.04.10 09: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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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대학은 지금
조대호 중국인민대학 역사학원 박사과정
조대호 중국인민대학 역사학원 박사과정

최근 한일간의 징용문제로 정치권 안팎이 대단히 시끄럽다. 한중일 세 나라의 국제주의라는 주제를 가지고 박사학위 논문을 쓰고 있는 나로서는 이번 정부의 결단이 대단히 의미 있는 진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다만 정치인들의 나팔이 국익보다는 정쟁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한국은 일제 36년 치하의 식민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 무렵 이웃 중국은 반식민지 상황이었고, 대만은 우리보다 더 일찍 식민 통치를 받고 있었다. 중일전쟁 이후 일본은 중국의 동북만주, 경진기(京津冀), 화동과 화남 일대를 점거하고 있었다. 일본의 중국 영토에 대한 무단 점거는 한반도보다야 지배 기간은 짧았지만, 통치 범위는 훨씬 넓었다. 물론, 엄격하게 말하면 전방위적으로 식민 지배를 당했던 대만과 조선에 비해 일본의 중국 정책은 비교적 임시적이고 느슨했지만 단위면적당 일본의 지배를 받았던 사람의 수는 중국 본토가 조선과 대만을 앞질렀다.

식민 지배의 피해는 그 정도를 수치로 표현하기 매우 어렵다. 그러나 중국도 역시 일본으로부터 많은 피해를 입었다. 한국과 중국이 역사문제로 줄기차게 서로 싸워왔지만 지난 한 세기 전만 하더라도 서로가 혁명과 독립을 위해 같은 편에 서서 제국주의와 맞섰다. 이는 한중 교류사 3천 년의 역사상 꽤 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하지만 일본의 패전 후 중국 국민당 정부의 전후 일본에 대한 태도는 우리와 확연히 달랐다. 당시 장개석(蔣介石) 위원장은 이덕보원(以德報怨)이라는 슬로건을 가지고 일본을 용서하자는 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중일전쟁 동안 중국 대륙을 무자비하게 파괴한 일본을 돌연히 용서한다는 중국 최고 지도자의 태도는 이상하리만큼 이해하기 어려웠다. 더군다나 일본에 의해 일어난 전쟁으로 피폐해진 나날을 보내고 있는 중국인들에게 장개석의 이 발언은 어느 때보다 비판적인 분위기를 조성했다. 중국 내 언론에서는 수년간 항전을 지도해온 그를 친일파 혹은 매국노가 되었다며 비판했고 중공은 여기에 선동을 부추겨 중국인의 국민정부에 대한 지지도를 떨어뜨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장개석은 뜻을 굽히지 않고 국민들을 설득했다. 얼마 되지 않아 여론은 급물살을 타면서 장개석에 동조하는 세력이 출현하게 되었다.

사실 이덕보원은 대단히 중국스럽고 중국인의 전통 관념이 스며든 말로, 덕으로서 원수를 용서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덕’과 베푼다 혹은 용서한다의 의미에서 사용된 ‘보’는 고대 중국 황제나 현자들이 자주 쓰던 단어다. 중국인에게는 자신을 높이고 상대에게 ‘후’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1937년에 시작된 대일항전(중국의 입장)에서 중국이 승리를 거머쥐면서 일본에 복수하자는 민족주의가 고조되었을 때 장개석은 정치적 결단이 아닌 미래지향적인 선택을 했다. 그래서인지 얼마 되지 않아 장개석의 결정에 반대하고 비판적인 여론은 생각보다 일찍 잠잠해졌다.

오늘날 장개석을 평가할 때 이와 같은 결단을 내렸다고 해서 양안(兩岸)의 역사학자들은 그를 친일파나 매국노라 부르지 않는다. 오히려 역사에서는 이를 사생결단이라 칭하기 이르면서 그가 내린 선택을 높이 평가한다. 또한, 중일 외교가에서는 이를 좋은 선례로 삼아 우호와 친선 교류의 현장에서 자주 회자되고 있다. 용서란 가해자가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만이 해줄 수 있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중국의 전통사상에 능했던 장개석은 정치적 입지를 고려해 오히려 자신이 大人(덕이나 인정이 많은 의미에서)이 되고 일본이 小人이 되는 것을 의도하여 여론으로부터 오는 후과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우리는 백여 년전 식민통치를 받았던 국가들 가운데 지난 아픈 역사의 상처를 극복하고 가장 높게 다시 일어선 나라 중에 하나다. 한국은 더 이상 구한말 유약한 조선도 아닐뿐더러 다시 한번 제국주의 국가들로부터 착취와 억압에 대해 노출될 우려도 현저히 적다. 지난 독립운동가 선열들의 기록을 샅샅이 찾아봐도 일본을 영원히 미워하라는 말보다는 일본보다 더 나은 나라가 되길 이구동성으로 바라고 있다. 우리는 이제 식민지 역사에 대한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가해자도 용서할 수 있는 大人이 될 수 있다면 오히려 역사 앞에 일본은 더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할 것이다.

조대호 중국인민대학 역사학원 박사과정
중국인민대학 역사학원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시베리아지역 화교와 한인 공산주의자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중국근현대사가 전공이다. 주요 연구영역은 중국공산당사, 국제공산주의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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