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09:30 (금)
지방대 혁신, 낯선 새로움에 성숙한 파트너십 필요하다
지방대 혁신, 낯선 새로움에 성숙한 파트너십 필요하다
  • 이길재 충북대 교육학과 교수
  • 승인 2023.04.12 08: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라이즈와 글로컬, 지방대 비상의 모멘텀
지방 고등학생들은 명성 높은 대학을 찾아, 지방대 학생들은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향한다. 그러나 수도권의 팍팍한 삶은 이들에게 평범한 삶을 허락하지 않는다. 사진=픽사베이

학령인구의 급격한 감소가 현실화하고 있다. 지방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 보다 명성이 높은 대학을 찾아서, 그리고 지방대를 졸업한 청년들은 나은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와 같은 고착화된 인구이동의 패턴은 결국 지역소멸이라는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했다. “세계사에 유례없는 인구소멸”이 우리나라에서 진행되고 있다. OECD 38개 국가 중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부동의 꼴찌를 지키고 있고, 2022년에는 합계출산율 0.78명으로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최초로 신생아수가 25만 명 아래로 떨어졌다. 이러한 저출산, 고령화, 수도권 인구집중이 지속된다면 지방의 소멸을 넘어 국가의 소멸은 불가피한 미래가 될 것이라는 점은 자명하다.

여기서 눈여겨볼 숫자가 있다. 서울의 합계출산율이 0.59명이라는 사실이다. 전국의 합계출산율보다 크게 낮다. 수도권으로 몰려든 청년들의 팍팍한 삶은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는 평범한 삶의 일상조차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숫자다. 

라이즈, 조각났던 교육서비스 결합시키는 것

교육부가 먼저 나섰다. 기존 중앙정부 주도의 고등교육 개혁을 위한 정책적 조치가 명확한 한계가 있었다는 점을 인정하고 해당 권한을 지자체에 대폭 이양함으로써 대학과 지자체의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구상이다. 라이즈(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가 그것이다. 라이즈 체제하에서는 대학지원의 행·재정 권한이 지방정부에 이양되고, 지자체와 지역대학의 파트너십이 강화되며, 이러한 토대 위에 인재양성·취창업·정주에 이르는 선순환 지역발전 생태계 구축이 가능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사업의 핵심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고등교육 거버넌스의 분권화가 촉진된다. 그간 대학은 고등교육기관에 대한 재정지원사업이 대학의 자율성을 규제하고 있다고 비판해왔다. 이러한 비판에 대한 정부의 대안이 라이즈 체제이다. 라이즈 체제 구축을 위한 거버넌스의 골자는 지자체의 전담부서와 교육부가 함께 고등교육의 발전 및 특화 방향을 설계하고 이를 협약의 형태로 명문화하며, 독립법인의 법적 지위를 갖는 기구를 설립하여 대학지원계획을 수립·이행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축구경기에 비유하자면 지자체와 교육부가 감독의 역할을 하고, 대학이 선수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감독과 선수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주체인 라이즈 센터는 코치에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이때 큰 틀에서 축구경기가 공정하고 재미있게 돌아가도록 규칙을 만드는 역할을 하는 주체가 대학지원의 방향을 심의 조정하는 기능을 하는 「지역고등교육협의회」 쯤 될 것이다. 정부는 라이즈 체제 운영을 위한 기본계획에서 지역고등교육협의회의 주요 구성원으로서 지역자치단체장, 대학의 장, 산업체 대표 등이 참여할 수 있다고 제시한 바 있다.

둘째, 대학에 대한 재정지원 방식의 변화이다. 기존 대학 재정지원은 사업의 목적이 정부에 의해서 결정되는 방식이었다면 라이즈 체제의 방식은 모든 정부 부처들이 대학에 대한 지원을 위해 집행하는 예산을 통합하여 지원하는 방식이다. 기존의 재정지원 방식에 익숙한 대학의 구성원들이 생각하는 한국연구재단의 역할을 라이즈 센터가 담당하는 것이다.

그동안 대학은 정부가 설계하는 수많은 파편적 재정지원사업에 지원하여 예산을 확보하고, 다양한 예산 간 소위 중복투자를 방지하기 위해서 분리하기 힘든 교육서비스를 이리저리 조각내는 매우 비현실적인 노력에 몰두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라이즈의 재정지원 방식은 영화 터미네이터-II의 액체 금속모델(T-800)을 떠오르게 한다. 이러저러한 재정지원사업이 하나의 계좌에 통합되어 대학들이 원하는 대로 사용할 수 있는 완전체로 결합되는 것이다.

셋째, ‘담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글로컬 대학의 집중육성이다. 그간 대학들은 정부가 미리 재단해서 제시해주는 재정지원사업을 위한 ‘예시’, 혹은 ‘가이드라인’에 길들여져 있었다. 정부는 라이즈 체제에서 대학들로 하여금 기존의 틀을 파괴적으로 혁신하는 과감한 변혁을 요구하고 있다. 전통적인 정부재정지원 방식이 가이드라인까지 친절하게 만들어서 대학들에게 제시하고 대학은 수동적으로 따르는 방식이었다면, 라이즈 체제 구축은 그 가이드라인까지도 대학의 자율에 맡기겠다는 것이다. 

글로컬대학은 말 그대로 로컬이지만 글로벌을 지향해야 한다. 대학의 입장에서는 선도적인 사례로 거듭나기 위해 스스로 혁신하고 지역을 이끌고 나가야 하는 숙제를 떠안게 된 것이다. 성공적 글로컬대학 모델 구축을 위해서는 권역 내 대학 간 연합모델 구축, 거버넌스 체제 혁신, 교육프로그램의 재구조화, 행·재정의 혁신, 대학운영 관련 규제혁신 및 자율적 성과관리 체제의 설계가 필요할 것이다. 

마지막 특징이 위의 세 가지가 실질적으로 구체화되고 작동할 수 있도록 만드는 지역대 맞춤형 규제의 혁신이다. 기존의 중앙집권적인 재정집행 방식과 운영방식에 익숙해진 루틴을 만들었던 각종 제도적 틀을 과감하게 혁신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정부가 열어주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읽힌다. 이를 위해 정부는 지방대학육성법을 개정하여 고등교육혁신특화지역으로 지정하고 대학의 혁신을 가로막는 각종 장애물들을 과감하게 걷어내되 규제샌드박스를 적용하여 법이 개정되기 이전이라도 혁신을 이행할 수 있는 길을 터주겠다는 것이다.

‘담대한 개혁’에는 ‘담대한 비용’이 필수

잘 설정된 방향이다. 그간 대학의 구성원들이 끊임없이 정부에 제시했던 문제의식을 고려한 정부의 적극적인 고등교육체제 혁신의 방향성 제시라고 판단된다. 그러나 성공적인 고등교육 생태계의 혁신을 위해서 집중적인 숙의가 필요한 지점이 있다. 첫 번째로 대학경영의 전문성과 자율성을 보장하는 거버넌스의 정립이다.

기본계획에서 시도별로 지역주도의 대학재정지원사업 등 고등교육정책에 관한 사항을 심의·조정하는 권한을 갖는 지역협의체(추후, 지역고등교육협의회 신설 근거를 ‘지방대육성법’을 개정해 마련)를 구성하도록 하였다. 이 위원회 조직의 권한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가 본 사업의 성공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그 규칙을 만드는 과정에 지자체, 대학, 산업체, 거기에 ‘등’까지 참여시키는 공동지배구조(Shared Governance)를 설정한 것은 결국 지역의 미래는 지역에서 주도적으로 결정해야 한다는 대전제를 제시한 것이다.

둘째, 라이즈 정책의 실행을 위한 충분한 예산이 확보될 필요가 있다. ‘담대한 개혁’에는 ‘담대한 비용’이 필수적이다. 라이즈 체제 실행 계획에서 2025년 2월 말까지 시범지역 운영 기간에는 직접적인 예산 지원이 없다는 점은 실망스러운 대목이다. 물론, 지자체-대학 협력기반 지역혁신 사업의 사업비 일부(15%)를 활용하거나 2024년 종료되는 재정지원사업을 단계적으로 통합시키면서 예산을 확보할 계획을 제시하고 있으나, 초기에 과감한 혁신을 설계할 수 있도록 충분한 예산의 확보는 필수적이다.

끝으로, 지자체와 대학의 구성원들이 낯선 새로움에 성숙한 파트너십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지자체와 대학은 일방향적 관계가 아닌 ‘수평적 파트너’로 상호 협력하며 라이즈체제를 이행해야만 한다. 20세기 초 농업과 과수원 산업 중심이었던 실리콘밸리가 부와 부가가치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기까지는 거의 100여 년의 노력이 필요했다. 긴 호흡으로 지자체와 대학이 협력적 거버넌스에 기초해 비전과 목표를 구상해내고 실행해야 가능한 일이다. 지역소멸의 진행을 저지하고 지역과 함께 비상(라이즈)하는 대학의 혁신을 기대하며 글을 맺는다.

이길재 충북대 교육학과 교수·교육혁신본부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