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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를 품은 이를 위한 변명
증오를 품은 이를 위한 변명
  • 최승우
  • 승인 2023.04.04 16: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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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한진 지음 | 성균관대학교출판부(SKKUP) | 416쪽

“어쩔 수 없는 구조가
증오의 싹을 틔운다”
개념과 기원, 대상과 주체, 작동방식과 그 해법까지
총체적으로 모색해본 증오의 사회학

계몽과 관용이란 관습적 해결방식의 한계 넘어
이해와 공존의 섬세한 문제의식으로 풀어나간
사회가 만드는 보편적 질병, 증오의 실체에 대하여


“증오는 사회구조가 만들어내는 보편적 질병”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현대의 증오론이다. 사회학의 한 흐름인 갈등론에서 갈등이 이미 일반적 현상으로 간주되는 것처럼, 갈등의 한 양상인 증오 또한 일상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게 더는 낯설지 않다.

이 책은 현대사회의 다양한 증오현상들에 대해, 용납할 수는 없지만 이제 이해할 수는 있는 일이란 문제의식 속에서 보다 섬세한 사회학적 접근을 시도해본 문제작이다.

기독교 서구사회에 대한 증오를 자양분으로 삼고 있는 급진적인 이슬람주의 세력, 세계화와 이주민에 반발하는 유럽의 극우주의, 중동의 성소수자혐오와 이주민혐오현상, 한국의 여성혐오와 이주민혐오현상, 프랑스를 두 세계로 갈라놓은 동성결혼 논쟁, 주로 백인이자 기독교인으로 구성된 수백 개의 증오단체를 보유한 증오의 나라 미국 등의 사례들을 토대로, 증오의 구체적 현상들에 대한 심층 분석과 그 이해의 배경이 되는 이론적 논의들을 동시에 개진해나간다.

무엇보다 이 책은 여성, 유대인, 이주민, 난민, 빈자, 장애인, 동성애자 등 증오의 대상 집단들에 집중해왔던 그간의 일반적인 증오론들과 달리, 증오의 주체, 즉 증오를 품고 표출하는 이들에게 더 초점을 맞춘다.

구조와 권력이 부지불식간에 증오를 초래해버리는 환경에선 평범한 누구나 증오의 담지자가 될 수 있기에, 이 책에서 증오의 주체들을 응시하는 태도는 차분하고 신중하다.

일견 의아하게 다가오는, 증오를 품은 이들을 위한 ‘변명’은 여기에 호응하는 것이다.

다양한 증오현상들에 직면해서는 교화나 제재를 통한 근절을 목표로 삼는 기존 방식들을 재고하고, 증오에 대한 이해와 인정, 나아가 그와의 공존이라는 새로운 입장과 전략을 숙고해본다.

주체의 재성찰을 통해 타자와의 공존을 모색하는, 성균관대학교 학술기획총서 ‘知의회랑’의 서른네 번째 책이자 두 권으로 기획된 ‘증오의 사회학’ 2부작 가운데 첫 권이다.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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