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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스러운 동물성애자
성스러운 동물성애자
  • 최승우
  • 승인 2023.01.10 17: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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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노 지히로 지음 | 최재혁 옮김 | 연립서가 | 280쪽

‘주파일(zoophile=동물성애자)’이라는 논쟁적인 주제를 다룬 이 책은 읽기 전부터 어느 정도 각오가 필요하다. 기존의 세계관에 균열을 가져온다는 의미에서 책이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는 카프카의 언급을 새삼 떠올리게 한다. 이 책을 접하면 독자들은 상식과도 같은 질문을 던질 것이다. 주필리아(Zoophilia=동물성애)’는 동물을 성적 도구로 삼는 ‘수간(bestiality)’과는 다른 개념인가? 동물에게 성욕을 느낀다는 점 자체가 정신병리학적으로 이상성욕(변태)은 아닌가? 상대방의 의사를 무시한다는 점에서 동물학대나 ‘페도필리아(pedophilia=소아성애)’와 다름없는 범죄행위가 아닌가?

저자 역시 의구심 속에서 세계 유일의 ‘동물성애자 옹호단체’ 제타(ZETA)의 멤버를 찾아 독일로 필드워크를 떠난다. 그곳에서 저자는 흔히 ‘동물학대자’나 ‘변태’라고 쉽게 규정되는 그들이 ‘성스러운 주’(Saint Zoo; ‘주’는 그들이 주파일을 줄여 부르는 약칭), ‘성인군자’라고 불리는 아이러니한 현실을 마주한다. 파트너인 동물에게 ‘퍼스낼러티(personality)’를 느끼며 대등한 관계를 꿈꾸는 그들과 생활하며 저자는 자신에게 절실한 질문인 인간, 사랑, 섹스의 문제에 다가선다. 성폭력을 당했던 자신의 상처가 아물기를 바라며 시작한 연구였지만, 상처는 치유되지는 않아도 타인을 이해하는 열쇠가 될 수 있다면 괜찮다고 깨닫는다.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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