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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거릿 생어의 여성과 새로운 인류
마거릿 생어의 여성과 새로운 인류
  • 최승우
  • 승인 2023.01.10 17: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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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거릿 생어 지음 | 김용준 옮김 | 동아시아 | 280쪽

“인간의 출산은 자연의 일부지만 사회적 존재로서 여성에게는 문명사적 비극!”
가부장제가 여성의 몸을 소유하고 폭력과 시민권 상실을 제도화하였다.
모던 페미니즘의 선구자, 마거릿 생어
피임을 통한 여성 운동과 노동 운동 그리고 인권 운동의 시작
그 전설의 책이 100년 만에 처음 선보입니다.

『마거릿 생어의 여성과 새로운 인류(Woman and the New Race)』는 1920년 출간된 마거릿 생어(Margaret Sanger, 1879~1966)의 대표작이다. 생어는 생전에 “산아제한은 본질적으로 여성교육”이라며 “피임은 여성이 자유라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중요한 첫걸음이자 인간 평등을 위한 첫걸음이다. 더 나아가 인간 해방을 향한 첫걸음이라고도 할 수 있다.”라고 했다. 이처럼 마거릿 생어의 여성 운동은 단순히 여성 인권 신장에 국한되지 않는다. 노동 문제에서부터 아동 인권에 이르기까지 인류 전반의 인권 문제를 포괄한다고 할 수 있다.

책에서 생어는 ‘여성은 피해자’라는 기존의 통념을 거부한다. 여성이 열등한 지위를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통념화되었고, 이는 여성에게 강요된 잘못이며 갚아야 할 빚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잘못된 통념을 바로잡는 일이 저항의 시작이며 ‘페미니즘 정신(feminine spirit)’의 실현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가난과 기아, 노동 문제를 하나씩 진단하고 문제의 해결책으로 산아제한을 일관되게 제시한다. 책의 후반부에서는 종교, 윤리, 법과 제도, 국가 등 거대 담론을 다루며 인구가 곧 국력이라고 생각했던 시각도 어떻게 수정되어야 하는지 의견을 제시한다.

생어의 초기 운동은 급진적이었다. 그의 사상은 정치적·경제적 관점이 아닌 직접 보고 겪은 노동자 여성들의 삶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는 우생학을 지지했다고 비난을 받기도 했던 ‘산아제한(birth control)’ 용어에서 뚜렷한 변별성을 갖는다. 생어가 추구한 산아제한은 당시 미국 주류의 우생학과 일치하지 않았다. 그는 유전적 형질의 우열과 관계없이 모든 여성이 임신과 출산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당시 우생학이 지닌 과학적 권위를 얻고자 산아제한 운동과 동맹을 끊임없이 제안했고 연대했다는 점에서 생어의 업적이 우생학적 비판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현재에도 산아제한과 관련해 피임(contraception)과 낙태(abortion)의 관계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하는 이슈가 있다. 이를 따로 논의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분명 불가결한 유사점들이 있다. 피임과 낙태가 결혼과 성의 측면에서 다양한 영향을 끼쳐 왔고 재생산권이 인간에게 가장 기본적인 자유를 보장해 준다는 사실은 19세기나 오늘날이나 마찬가지다. 즉 여성이 재생산을 선택할 권리가 안전하고 합법적으로 보장되어야 여성을 자유롭게 하고 양성평등이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산아제한 운동은 인권 운동과 마찬가지로 매우 혁명적인 사회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우리는 페미니즘에서 산아제한 운동의 역사를 논하지 않는다. 그러나 책 서문에서 해블록 엘리스가 “현대의 여성 운동은 노동 운동과 마찬가지로 18세기에 시작되었다.”라고 말했듯, 19세기 말에서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재생산권 통제 이슈는 여성의 인권과 문화를 이해하는 데 핵심적이다. 마거릿 생어가 산아제한 문제를 사회적으로 이슈화하면서 미국 사회에서 가족, 여성, 성에 대한 큰 변화를 불러왔고 많은 여성의 삶에 큰 영향을 끼쳤다. 한 여성의 목소리는 미국을 넘어 전 세계에 넘쳐났다. 그가 여성들의 권리를 찾고자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던, ‘여성이 인간으로서 자각하는 뿌리’를 이 책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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