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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학 발전의 엔진이 없다”…교육만 하고 연구는 없다
“교양학 발전의 엔진이 없다”…교육만 하고 연구는 없다
  • 김재호
  • 승인 2023.01.04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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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교육의 전개: 독일편’이 주는 시사점

지난해 11월, 한국교양교육학회와 전국대학교양교육협의회는 교양교육총서 1권인 『자유교육의 전개: 독일편』(리버럴아츠)을 전자책으로 출간했다. 이 책은 독일 대학의 탄생·개혁과 교양교육의 기원을 다루며, 학문에 매진하는 교수의 역할 등을 다뤘다. 저자는 칸트(1724~1804), 훔볼트(1769~1859), 슐라이어마허(1768~1834), 파울젠(1846~1908), 보데(1864~1922)이다. 옮긴이는 홍성기 아주대 명예교수(동서비교철학), 이진오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서양근대독일철학), 이진우 포스텍 명예교수(정치·사회철학), 황종민 전문번역가(서울대 독어독문학과 대학원 박사수료), 서정일 목원대 스톡스대학 창의교양학부 교수(독문학), 이민경 가톨릭관동대 VERUM 교양대학 교수(서양사)이다. 감수·해제는 박일우 계명대 명예교수(기호학), 홍성기 명예교수가 맡았다. 

“독일의 철학부가 새로운 진리의 탐구를 목표로 설정해 연구활동을 강조했만, 한국의 교양교육 담당자들은 교양교육의 의미를 말 그대로 교육에만 두고 있다. 따라서 연구활동이나 논문의 경우도 대부분 교육에 집중돼 있다.”

이진우 포스텍 명예교수(정치·사회철학)는 슐라이어마허의 「독일적 의미의 대학 이념」을 번역했다. 원래 이 원고는 계명교양총서 30번째 『대학의 이념』(2000, 계명대학교출판부)에 수록됐던 내용이다. 『자유교육의 전개: 독일편』에 재수록했다. 1999년에 쓰인 옮긴이의 말은 여전히 의미하는 바가 크다. “바깥 사회는 대학의 이념을 포기하고 시장의 논리에 따라 변화하라고 요구하고, 대학 안의 지성인들은 냉소의 비웃음을 감춘 채 저항할 수 없는 시대정신의 비위를 맞추고 있다.” 그 원인에 대해 이 교수는 “근본적으로 대학의 본질과 사명을 망각한 데서 기인”한다고 밝혔다. 

대학에서 중요한 것은 대화이다. 강연으로도 생각이 소통될 수 있으나, 궁극적으로 교수와 학생은 대화로 학문을 발전시킨다. “대화는 잠자고 있는 삶을 깨우고 그 최초의 흔들림을 이끌어낼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이다.” 아울러, 수업 이외에 사적인 장에서 대화를 나누는 것도 중요하다. “진정한 의미에서 대화가 이루어질 수 있는 선생과 수강생 간의 사적인 교류이다.” 특히 교수들에게 중요한 건 활력, 열정, 신중함, 명료함 등이다.

 

 

교수들이 연봉 올려달라고 정부에 호소

홍성기 아주대 명예교수(동서비교철학)는 「18세기-19세기 독일대학의 변신」을 썼다. 그 당시 독일의 대학들 역시 지금의 우리와 마찬가지로 재정과 학생 정원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다. 귀족의 자제들을 대학에 유치하기 위해 대학 간 경쟁이 심했다. 또한 대학의 재정은 정부 예산·기부금·학생들의 등록금에 크게 의존했다. 교수들이 연봉을 올려달라고 정부에 호소하기도 했다. 18세기 독일대학에서 있었던 일이다. 

심지어 취업 문제에까지 노력을 기울였다. “17세기와 18세기에는 대학의 목적이 진로를 위한 훈련을 제공하는 데에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대학의 설립 목적은 지역 절대군주의 정치-종교적 통치이념에 충실한 성직자와 관료의 배출에 있었다. 만일 대학이 졸업 후 취업이라는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지 않을 경우 문을 닫아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홍 교수는 18세기 독일 대학이 안고 있던 문제들이 한국의 교양교육학계의 이슈들과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18세기 독일의 직업교육 중시 경향, 열악한 대학 재정, 입학생 감소에 따르는 대학 간의 경쟁 심화, 철학부의 자원 부족, 19세기 중후반 대학재정의 국가 의존 및 국가주도 대학정책 등은 한국의 교양교육이 처한 상황과 흡사하다”라고 지적했다. 19세기 전후 독일에서는 대학개혁 담론으로 철학부(학예학부) 강화를 핵심 과제로 삼았다. 한국교양교육학계가 지난 10여 년간 기초학문이나 자유학예 중심 교양교육 정상화에 매진해온 것과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독일과 한국의 가장 큰 차이점은 연구의 병행 여부이다. 홍 교수는 “독일의 철학부가 새로운 진리의 탐구를 목표로 설정해 연구활동을 강조했지만, 한국의 교양교육 담당자들은 교양교육의 의미를 말 그대로 교육에만 두고 있다”라며 “따라서 연구활동이나 논문의 경우도 대부분 교육에 집중돼 있다”라고 분석했다. “여기서 교양교육 담당자들은 자신의 ‘본래 전공 분야의 연구’와 ‘교양교육에 대한 연구’를 분리하고, 드러내지는 않지만 대부분 전자에 가치를 두고 있다고 보인다.”

독일은 ‘세미나’로 생산적이고 창의적인 연구·교육 일치의 교수법을 발전시켜왔다. 홍 교수는 “우리에게는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교수방법 즉 교양학 발전의 엔진이 없다”라며 “이런 핵심 교육-연구 방법론이 교수조직과 연계돼 그 학문적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론도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비판했다. 한국 대학의 교양교육은 정부의 대학역량 평가 지침 등에 의해 퇴보하고 있는 상황이다.  

아울러, 홍 교수는 그 당시 독일 대학의 국제교류도 강조했다. “18세기에 만연했던 지방주의를 벗어나 19세기 중반 이후에는 교수와 학생의 이동성 증가로 대학의 수준이 상승했으며, 이어 외국의 유학생과 학자들의 방문으로 국제화됐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홍 교수는 “한국 내에서 대학 간의 학술교류와 함께 좋은 교양과목을 공유하는 학생들의 이동이 필요하며, 이는 온라인 교육을 통해 상당 부분 현실화 될 수 있다”라며 “국내 대학 간의 교류만으로는 학자들이 에코 챔버(닫힌 체계에서 기존에 지닌 정보만 반복적으로 수용하는 현상)에 갇히기 쉽다”라고 우려했다. 

 

지난해 11월, 한국교양교육학회와 전국대학교양교육협의회는 교양교육총서 1권인 『자유교육의 전개: 독일편』(리버럴아츠)을 전자책으로 출간했다.

 

가르침·배움의 자유가 대학 살린다

이민경 가톨릭관동대 VERUM 교양대학 교수(서양사)는 메이블 헤인즈 보데(1864~1922)가 쓴 「독일의 대학들: 독일 대학 시스템에 관한 파울젠 교수의 저서에 대한 리뷰(1905)」를 번역했다. 메이블 헤인즈 보데는 영국 잉글랜드 태생으로 인도 파리어, 산스크리트어, 불교 분야 연구를 수행한 여성 학자로 알려져 있다. 

눈에 띄는 내용은 바로 독일 대학이 추구했던 ‘가르침의 자유’이다. 독일 대학에는 늘 교수와 객원강사라는 두 부류의 강의자가 있다. 프리랜서 객원강사는 학문적으로 보자면 “세계에서 가장 자유롭다”라고 여겨진다. “사상의 자유, 연구와 교육의 완전한 자유는 철저하게 보호된다. 전통과 교리가 탐구의 한계를 정하던 시대, 대학교수가 해야 했던 모든 것이 과거에 축적된 지식을 전수하는 것뿐이었던 시대는 지나갔다.” 자유의 기준은 “교수자와 수강자들에게 어떤 생각이 요구되거나 또는 금지될 수 없다”라는 것이다. 

학생도 자유를 누려야 한다. “독일 대학에서 학생의 ‘배움의 자유’는 학습을 전혀 하지 않을 자유까지 확장된다.”, “대학이 고등학교처럼 되지 않으려면, 학습과 노력에 있어 자유를 허용하고 자유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결론을 피할 수 없다.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독일 대학이 지적 독립의 고향이자 훈련장으로서 도달하고자 하는 높은 이상에 접근할 수 없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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