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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비평: 리얼리즘에서 장르의 정치학으로
영화비평: 리얼리즘에서 장르의 정치학으로
  • 안시환 영화평론가
  • 승인 2006.06.0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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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의 최근 경향에 대해 탈정치적, 탈역사적인 위험성을 지적하는 것은 일견 타당해 보인다. 지금의 한국 영화는 그러한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사실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지적은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을 지나치기 쉽다. 대중 영화는 본질적으로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

 

탈정치적인 영화가 오히려 가장 적극적으로 정치적인 발언을 행하는 텍스트로 전환되는 역설이 존재하며, 또한 사회의식을 삭제하고 단지 오락거리로 기획된 영화라 하더라도, 그것이 대중들에게 지지를 얻거나 소통에 실패하는 과정에는 대중들의 역사적, 정치적 (무)의식이 징후적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 사회의식이 사라진 영화를 오히려 더욱 정치적으로 독해해야 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먼저 ‘웰컴 투 동막골’(박광현, 2005)에 주목해보자. ‘어린아이들이 막 자란다’고 하여 동막골이라 명명된 가상의 마을에 미군과 남북한 군인들이 모여들면서 발생하는 사건을 담아내는 ‘웰컴 투 동막골’은 역사의 무게로부터 자유롭고자 하는 탈역사적인 시선이 어떻게 현시대의 역사의식을 가장 극적으로 드러내는지를 적절히 보여준다. 한국 전쟁이 남긴 상흔을 한 마을의 소용돌이로 축약하여 제시하려는 시도는 이미 ‘은마는 오지 않는다’(장길수, 1991), ‘그 섬에 가고 싶다’(박광수, 1993) 등에서도 다루어진 설정으로 그리 새로울 것이 없다.

▲웰컴 투 동막골 ©
하지만 ‘웰컴 투 동막골’은 비슷한 설정을 취하면서도 이들 영화와는 반대 방향으로 서사의 물꼬를 돌림으로써, 자신만의 흔적을 새긴다. 영화 속에서 동막골 자체가 속세에서 벗어난 별천지처럼 묘사되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마을 사람들의 ‘순진무구함’의 모든 것을 설명하지는 못한다. 주민들은 마을 밖의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에 도통 관심이 없다. 달리 말해, 동막골 주민들의 그 순진무구한 삶의 태도는 세상에 대해 눈을 감고 귀를 닫아버린 ‘무지에의 욕망’에서 비롯된 산물이라는 것이다. ‘웰컴 투 동막골’은 무지에의 욕망이 빚어낸 순진무구한 시선으로 역사적, 정치적 의식을 대체함으로써 현시대의 역사 의식을 징후적으로 드러낸다.

 

‘은마는 오지 않는다’와 ‘그 섬에 가고 싶다’가 한 마을의 순결함이 얼룩지는 과정에서 한국 사회의 치부를 비판적으로 들여다본다면, ‘웰컴 투 동막골’ 그 역사의 치부를 소재의 차원으로 한정하고 역사적 문제의식을 판타지라는 영화 장르의 관습으로 소화해 버린다. ‘웰컴 투 동막골’은 그 순수한 세계관이 장르 영화의 마술적 해결 과정에서 한국 전쟁의 치부를 은폐한 대가로 얻어진 것이라는 점에서 동의하기 힘든 작품이 되고 말았다.

 

흥미로운 점은 2005년 흥행작 대부분이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장르 영화의 관습 속에서 은폐함으로써 순수한 세계관을 옹호하는 경향을 보였다는 점이다. 때문에 최근의 한국 영화에서 사회의식이 증발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혐의를 검토하는 작업은 역사나 사회적 구조의 모순 보다는 영화 장르의 관습을 더욱 강조하는 최근 한국 영화의 경향에 대해 논의했을 때만이 가능할 것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문제는 한국 영화의 사회의식의 부재에 대한 지적 속에는 리얼리즘 영화에 대한 낭만적인 향수가 은연중에 묻어난다는 것이다. 시간을 거꾸로 돌려 1990년대로 돌아가면, 1987년 이후 발생한 ‘코리안 뉴웨이브’(Korean New Wave)의 사조 속에서 시대정신과 호흡하며 오락거리에 머물던 한국 영화에 역사의 숨결을 불어넣으려던 야심찬 시도를 만날 수 있다.

 

‘칠수와 만수’(박광수, 1987), ‘구로아리랑’(박종원, 1989), ‘남부군’(정지영, 1990), ‘하얀전쟁’(정지영, 1992), ‘태백산맥’(임권택, 1994),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박광수, 1995), ‘꽃잎’(장선우, 1996) 등이 코리안 뉴웨이브의 대표작들이다. 그 진정성에 대한 평가에서는 보다 냉정할 필요가 있겠으나, 이들 작품들이 한국 근대사의 트라우마를 영화화하는 과정에서 한국 영화의 질적 성장을 이끌어낸 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현재의 한국 영화를 두고 사회의식의 부재를 말할 때 이러한 리얼리즘적 관점이 그 평가의 기준으로 암암리에 작용하는데 반해서, 지금의 한국 영화에 이러한 리얼리즘 운동을 기대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2000년대 이후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를 이끌고 있는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류승완 등의 감독뿐만 아니라 최근 데뷔하는 젊은 감독들은 무엇보다 ‘영화적 상상력’을 강조한다.

 

이들 감독들에게 리얼리즘이 바탕으로 하는 현실이라는 전제 조건은 자유로운 상상력에 가해지는 제한이자 족쇄일 수 있다. ‘웰컴 투 동막골’에서도 드러나듯, 최근의 한국 영화는 현실과 역사에서 소재를 발굴하되 이를 영화적으로 각색하고자 하며, 이 과정에서 사회의식이 증발이라는 한계가 노출되는 것이다.

 

하지만 리얼리즘이 영화의 사회의식을 평가하는 절대적 기준이 아니며, 영화의 상상력을 앞세우는 장르 영화가 리얼리즘 이상의 사회의식으로 더 광범위한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실제로 이창동 감독의 ‘초록 물고기’(1997)와 ‘박하사탕’(2000)은 필름 누아르와 남성 멜로드라마의 관습을 빌려 한국의 근대사를 이야기했고, ‘살인의 추억’(봉준호, 2003)은 미스터리 스릴러를 통해 광기어린 1980년대 한국 사회를 빼어나게 형상화했으며, ‘복수는 나의 것’(박찬욱, 2002)은 그 어떤 리얼리즘 작품보다도 IMF 이후 한국 사회의 편집증적 불안을 제대로 포착해낸 필름 누아르 영화이다.

 

영화적 상상력으로 장르적 유희만을 강조하면서 사회의식을 삭제하는 공허한 영화들에 대해서는 적절한 비판이 필수적이겠지만, 이러한 비판을 넘어서서 지금의 영화들을 정치적으로 (재)독해함으로써 대중 (무)의식과 결합시키는 작업, 장르 영화의 정치적 독해가 절실하게 필요한 시기임을 인식하는 것이 더욱 중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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