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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 프로이트 탄생 1백50주년 기념 재조명 활발
獨, 프로이트 탄생 1백50주년 기념 재조명 활발
  • 정광진 독일통신원
  • 승인 2006.05.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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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 듣기의 大家

▲프로이트를 특집으로 다룬 슈테른지 ©
올해 탄생 1백50주년을 맞아 한 해 동안 프로이트와 정신분석학에 대한 각종 행사와 강연회, 컨퍼런스 등이 이어질 예정이다. 특히 그의 생일인 5월 6일을 전후로 TV와 신문에는 잘 다듬어진 수염을 달고서, 한 손에는 시가를 든 노년의 프로이트가 무척이나 자주 등장했다.

독일 정신분석 관련 학회들이 연합해서 주관한 기념식은 베를린시 베벨광장에서 열렸는데 그 광장은 1933년 괴벨스의 지휘 아래 프로이트가 포함된 이른바 '독일정신에 위배되는' 1백31인의 책이 불태워졌던 곳이다. 뿐만 아니라 유태인이었던 프로이트는 나치에 쫓겨 영국으로 망명했고, 그의 누이 넷은 모두 가스실에서 죽었는데 이번 기념식은 그런 불행한 개인사와 화해하려는 상징적 의미를 담았던 것이다.

출판시장에서도 프로이트는 중요한 주제다. ‘오디오 북’ 시리즈를 포함해 그의 저서들이 새 옷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또 최신 자료로 보완된 프로이트 전기가 여러 권 출간됐는데, 조카가 쓴 프로이트 가족사와 그가 딸과 주고 받은 편지 모음집에 눈에 띈다. 그밖에 프로이트가 환자와 상담하던 상황을 관찰한 기록이 처음으로 출간됐으며, 심지어는 그가 소장하고 있던 4만5천여권의 장서 목록까지 책으로 나왔다.

때맞춰 정신분석학 소개서들도 여러 종 발간됐다. 신경증 치료에서 출발했지만 그가 정신의 과학으로 발전시킨 정신분석학은 병리학 수준을 뛰어넘어 정신의학, 인문학 등 20세기의 지적 지형을 바꾼 만큼, 프로이트에 대한 이 정도 대접은 그리 유별난 일이 아닐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21세기에는 프로이트는 어떤 모습으로  해석되고 있는가. 의사, 상담가, 생리학자, 저술가, 종교이론가, 성적충동 발견자, 문명비평가?

프로이트는 적어도 과학적으로는 20세기를 거치면서 잊혀진 인물이기도 하다. 그의 이론들과 정신분석학이 과연 과학으로 성립될 수 있느냐에 대해서 줄곧 의문이 제기됐던 것이다. 칼 포퍼가 반증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서 정신분석을 비과학적이라고 결론내린 것은 유명하다. 실제로 요즘 정규 심리학 수업에서 프로이트를 소개받는 학생들은 거의 없고, 인문학적으로 수용된 것을 제외하면 정신분석은 인지행동치료나 정신치료의 방식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인간의 정신세계에 대한 “과학적” 연구는 인지과학이나 신경과학에 자리를 내줬다. 하지만 최근 소수이긴 하지만 영향력 있는 이 분야 과학자들이 프로이트의 통찰을 연구의 길잡이로 삼으면서 정신분석과 신경과학의 대화가 시작되고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현재 남아공 케이프타운대학의 마크 솔름스가 대표 주자인데 그는 “의식의 본질에 대한 프로이트의 통찰은 최첨단 신경과학적 관점과 일치한다“고 주장한다.

몇년 전 그의 주도로 ‘국제신경정신분석학회’가 창립되기도 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심리학과 신경과학 분야의 연구는 무의식적인 보편적 충동의 역할을 경시하고 그 대신 의식이 있는 상태의 합리적 작용에 초점을 맞추는 방향으로 진행됐다. 하지만 일부 신경과학자들은 프로이트의 충동들이 실제로 존재하며 그 충동들은 주로 의식의 영역 밖에서 작용하는 원시적인 뇌 부위인 대뇌번연계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증거를 발견했다고 주장한다.

4월 29일자 ‘슈피겔’지 보도에 따르면 프로이트 이론 중 가장 많은 공격을 받고 문제시됐던 성이론에 대한 단서도 발견했다고 한다. 미국의 유아연구자들은 신경과학자들과의 공동연구를 통해 “유아기의 성욕과 부모에 대한 성적 애착은 프로이트의 분석대로 사실임을“ 밝혀냈다는 것이다. 정신분석의 치료효과도 초기부터 논란 중인 주제인데, 일부 과학자들이 자기공명장치등을 통해 치료효과를 밝혀내려고 해서 주목받고 있다.

그 대표자는 노벨의학상을  수상하기도 한 미국 컬럼비아대의 에릭 칸델 교수다. 정량적 과학의 잣대로 사망선고 받았던 정신분석학이 최첨단 신경과학과의 만남을 보며 인간의 정신세계가 얼마나 복합적인 현상인지, 그리고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불가피하게 다양한 방식이 공존할 수밖에 없음을 확인하게 된다.

이런 신경과학적인 검증과는 별개로 정신분석은 다른 치료법에 비해 비용이 많이 들고 효과를 확인하기 어렵다는 비판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그럼에도 “듣는 기술”로 살아남을 수 있으리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최근 출간된 프로이트의 환자상담 관찰기에 따르면, 프로이트 역시 때로는 그가 세웠던 분석방식마저 무시하며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상담했다고 한다.

실제 프로이트는 사실 ‘프로이트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가 지킨 유일한 원칙은 환자 스스로 자유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자가분석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었다. 정신분석가들은 정신분석이 많은 이들이 오해하는 것처럼 환자들의 무의식을 읽어내는 기법이 아니라, 환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해하는 방식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옳다고 한다.

21세기에도 프로이트는 여전히 시퍼렇게 살아있을 것 같다. 어쩌면 그가 기대했던 대로 정신과학의 선구자나 아니면 “듣기의 대가”로. 50년 후 그의 2백주년 탄생 기념일에는 어쩌면 완전히 다른 모습의 프로이트를  만나게 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정광진 / 독일통신원·빌레펠트대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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