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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순 평전
신정순 평전
  • 최승우
  • 승인 2022.12.15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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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리·윤정환 지음 | 청년의사 | 456쪽

“죽어서 다시 태어나도 마취과 의사를 하리라”

마취과, 이 단어는 생소하다. 마취과는 내과나 외과와 마찬가지로 의학의 한 분과이지만, 일반인들에게는 낯설다. 20세기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마취’는 의사가 담당하는 것이 환자와 수술을 담당하는 의사를 위해 바람직하다는 견해가 지배적이게 되고, 이후 이 분야에 진출하는 의사의 수가 증가하였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마취과는 언제, 어떻게 생겨났으며, 이 분야 시초는 누구였을까? 역사를 거슬러 가보자. 한국전쟁(6·25)이 발발하자, UN 16개국에서 전투병을 파병하였고,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이탈리아, 인도 5개국이 인도적 차원으로 의료지원단을 파견했다. 이때 가장 먼저 문을 연 것은 부산에 ‘스웨덴 적십자병원’이었다(1953년 부산 ‘스웨덴병원’으로 개칭). 전후에 이 국가들이 철수하게 되자, 한국 정부는 이 국가들에게 계속적인 진료를 요청한다. 이에 스칸디나비아 3개국(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UN한국부흥위원회(UNKRA), 한국 정부는 3자가 협력하여 스칸디나비아 교육병원을 세우기로 한다. 이에 1958년, 을지로6가에 ‘국립의료원’이 문을 연다(스칸디나비아병원으로도 불림).

신정순, 그녀의 삶은 이 역사와 함께 한다. 의대 재학 중인 1950년 6월 한국전쟁이 발발하였다. 피난을 가지 못해 인민군의 포로로 잡혀 북으로 끌려갔지만 생사를 건 탈출에 성공한다. 거제도 포로수용소 내 미군병원에서 의사생활을 시작했고, 이후 스웨덴 적집자병원에서 근무하면서 새로운 의료 기법을 받아들이게 된다. 수많은 부상자들을 보고 외과 의사의 길을 선택하려 했으나 스웨덴의 마취과 전문의 노던(Norden)을 보면서 외과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마취과를 선택한다. 이후 국립의료원 최초의 한국인 마취과 의사가 된다.

1961년, 국립의료원 재직 중 WHO의 장학금을 받고 코펜하겐 마취학 교육센터로 유학을 떠난다. 덴마크 병원 시설은 매우 현대적이고 각 과와 유기적인 협력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놀란다. 이후 한국에 들어와 마취과 분야를 발전시키고, 국립의료원 수련의(인턴·레지던트)의 커리큘럼 등을 만든다. 이는 한국 최초 수련의들의 수련과정 프로그램이다.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원칙에 벗어나지 않았다. 1950~1960년 한국의 의학발전에 대대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고, 그 중심에 마취과 전문의 신정순이 있었다.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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