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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입이 악업 짓는다...의도하는 ‘나’를 버려라
몸·입이 악업 짓는다...의도하는 ‘나’를 버려라
  • 유무수
  • 승인 2022.11.11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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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_『불교를 꿰뚫다』 등현 지음 | 불광출판사 | 528쪽

나의 것에 대한 집착은 본능, 무명은 혼돈
부처님의 모든 가르침은 해탈·자비로 귀결

고운사 화엄승가대학원 원장인 등현 스님은 아홉 살 때 초월적인 체험을 했다. 호흡이 떠난 아버지의 몸을 관 속에 집어넣는 모습을 받아들일 수 없는 아이는 울부짖었다. 사흘을 울다가 쓰러졌는데 몸과 의식이 분리되고 의식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때 고요와 평화가 충만해졌다. 이 느낌은 10년 동안 생생했다. 결국 출가로 이어졌다. 스님은 스리랑카와 인도로 건너가 25년간 불교경전을 연구하면서 초기불교, 중관, 유식, 화엄, 선종 등 불교사에 등장하는 종파들을 재통합하여 하나로 꿰뚫을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은 스님이 <불교신문>에 3년 2개월 동안 연재했던 글을 모아서 다듬은 것이다.

 

나와 나의 것에 대한 집착은 본능이다. 몸을 편하게 하려는 욕망, 아름다운 것을 소유하려는 욕망, 자신만의 견해와 신념을 지키려는 욕망, 타인에게 존중받으려는 욕망 등도 모두 집착 때문에 생긴다. 세간에서는 치열한 집착으로 오욕락(재물욕, 성욕, 음식욕, 명예욕, 수면욕)을 여유롭고 풍요롭게 채울 수 있으면 성공을 이루었다고 부러워한다. 이러한 욕망에 궁극적 의미를 부여하는 오판을 하게 되면 거짓말, 도둑질, 음행, 살생의 죄악과 결탁한다. 그리하여 무명(無明)이 짙어지고 탐진치 삼독(三毒)이 강화된다. 그렇게까지 하여 행복하고자 했지만, 불교에서는 애초에 집착은 괴로움으로 연결될 뿐이라고 지적한다. 집착한 만큼 더 괴롭게 될 것이며, 무명은 혼돈에서 헤매게 하며 삼독은 삶을 피폐하게 한다.

불교는 괴로움을 수행으로 다스릴 수 있으며 수행으로 완전한 행복을 성취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수행은 “잘못 형성된 견해와 인생관을 바르게 다스리고 악의 행위를 다스려서, 선의 행위를 증강시키고 마음을 청정하게 하는 것”이다. 악업을 짓는 것은 몸(身)과 입(口)이며 근원은 마음의 의도(意)다. 수행의 과정에는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을 놓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주시하는 여실지견(如實知見)이 필요하다. 초기불교의 팔정도와 대승불교의 십바라밀은 지성, 감정, 의지를 청정하게 정화시키는 여정이다. 보살의 수행은 이타적인 삶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는 일이다. 악행을 저지르지 않고, 일념에 집중하며, 잠재적 감성의 번뇌를 정화하며 선정(禪定)을 경험한 후, 초선~4선을 거듭 드나들며 잠재의식의 묵은 때를 닦아내면 타심통, 숙명통, 천안통 등의 신통력이 계발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교리 이해력이 증진하고 희열과 평정의 경험이 일어날 때 이러한 현상에 집착하는 욕망을 갖게 되면 마장(魔障)이 되므로 알아차림을 투철하게 유지해야 한다. 

세간에서 ‘나’를 강화하려는 성공에 대한 집착은 허상을 추구하는 것이다. 수행으로 집착을 정화하고 초월해야 한다. 수행은 불법승(佛法僧) 삼보에 대한 믿음에서 시작한다. 수행자는 부처님의 경전과 수행이 지금까지 전해지게 한 성문승가(聲聞僧伽)에 감사해야 한다. 저자에 의하면 여러 불교 학파가 조금씩 다르게 표현하지만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은 ‘해탈과 자비’라는 한 맛(一味)”으로 귀결된다.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은 해탈과 자비로 귀결된다. 사진=펙셀

유무수 객원기자 wiseta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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