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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정책은 퍼포먼스” … 수단이 목적으로 둔갑
“교육부 정책은 퍼포먼스” … 수단이 목적으로 둔갑
  • 박수진 기자
  • 승인 2006.04.2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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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 : ‘교육부의 대국민 사기극’, 진짜인가 가짜인가

교육부 정책이 ‘대국민 사기극’에 다름아니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정책 목표와 수단을 정하고 일정에 따라 정책을 추진하는 교육부의 각종 정책들을 ‘사기극’이라는 과격한 표현으로 부정하는 이유는 무얼까.

사기극에는 두 종류가 있다. 정책 수단을 정할 때 부적절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잘못 사용하는 경우가 그 첫 번째다. 잘못될 줄 알면서도 그대로 사용하니 ‘미필적 고의’쯤으로 볼 수도 있겠다.


정진상 경상대 교수(산업사회학)는 정원감축과 국립대 통폐합을 주 내용으로 하는 ‘대학구조개혁’을 그 대표적 예로 꼽는다.

굳이 교육부가 ‘국립대 정원 감축을 통한 사립대 정원 감축’을 시행하지 않아도 ‘시장 원리’에 따라대학 정원이 자연 감축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교육부가 ‘국립대 정원 감축’ 정책을 시행함으로써 취약한 국립대 정원은 더욱 축소되고 부실한 사립대를 일부분 유지시키는 결과를 낳는다”고 교육부의 정원감축 정책을 비판했다.

통폐합 역시 마찬가지인데 “구조개혁이 효과를 보려면 대규모 대학들의 통합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는 실효성이 거의 없고, 대규모 대학에 소규모 대학이 흡수통합되는 경향”이어서 통합 또한 효과를 제대로 발휘하기 어렵다고 정 교수는 분석한다.

정 교수는 결국 교육부가 ‘정책 실패’를 예견하고서도 ‘공교육 정상화’라는 목표 실현을 통한 정권 정당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보여주기용’ 사기 정책을 수행하는 것에 다름 아니기에 교육부의 국립대 정원 감축이나 구조개혁 정책을 “사기극”이라고 표현한다.

사기극의 두 번째 유형은 드러난 정책 목표와 숨겨진 정책 목표가 다른 경우다. 국립대법인화가 대표적이다. 임재홍 영남대 교수(법학)는 “국립대 법인화는 대학의 자율성과 경쟁력 강화라는 목표를 추구하고 있지만 숨은 목표는 국립대를 준사유화함으로써 국립대학이 스스로 재원 책임을 지게 함으로써 기업식 이윤추구의 단초를 제공하고, 정부는 국립대에 대한 재정적 부담에서 자유로워지려는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사기의 전형인 ‘겉 다르고 속 다른’ 경우라 하겠다.

이런 모순된 정책 속에 정책 간 이중잣대도 눈에 띈다. 교육부는 국립대 법인화의 목표로 “대학에 자율 부여”를 얘기하지만, 자율이 보장된 사립대학에 대해서는 개입 의지를 보이는 것.

정영수 인하대 교수(교육학)는 “재정지원사업의 참여 조건을 설정해 대학들이 학과 통폐합 등 구조조정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만든다”며  “정부 지원이 적은 사립대로서는 그 지원금을 받느냐, 못 받느냐는 사활이 걸린 문제여서, 각 학교들이 학문적 제안의 진정성보다는 어떻게 하면 교육부가 원하는 조건을 만들어 사업단에 선정될지에 관심이 쏠려있다”고 비판했다.

“수요자 중심이 학문을 왜곡”

모든 ‘사기’에는 ‘사기를 믿게 하는 장치’가 있듯, 교육부의 사기극에도 이를 믿게끔 해 주는 방법론 상의 이데올로기들이 있다. ‘수요자 중심론’과 ‘선택과 집중’이 그것이다.

교육부는 각종 정책 수행에 있어 ‘수요자 중심론’을 중요하게 제기한다.‘수요자’인 학생의 입장에서 커리큘럼을 짜고, 나아가서는 ‘기업’이 당장 쓸 수 있는 유용한 ‘인적자원’을 만들 수 있게끔 대학 교육을 기업화해야 한다는 논리가 그것이다.

이런 논리에 대해 정진상 교수는 “대학의 존재 자체를 왜곡시킨다”라고 말한다. “학문을 수요와 공급의 논리에 따라 조절했을 때, 취직 안 되는 다시말해 수요가 없는 기초학문들은 결국 다 몰락할 수밖에 없다”며 기초학문의 부실을 걱정했다.

매일경제 신문은 2005년 2월자 신문에 철저하게 시장원리에 따라 대학을 운영하는 미시간대를 미국의 ‘시장지향형’ 모범 대학 사례로 소개한 바 있다. 커리큘럼을 시장 변화에 따라 변경하는 미시간 대학은 수요가 적은 순수예술 , 순수과학 코스는 줄고 있으며 지질학과는 20년 전 사라졌다. 교수별 연봉 차도 과목 인기도에 따라 10배까지 차이가 난다.

긍정적 사례로 소개된 이 대학 사례는 그야말로 ‘자본에 학문이 종속’된 전형적 사례다. “학생이라는 고객을 잡기 위해 그들이 원하는 대로 커리큘럼과 정책을 맞춰가는” 대학에 기능적 학문은 있을지라도, 그 기능의 저변을 만들어가는 기초학문이나, 창의적 사상은 발붙일 데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가 좋아하는 또 한 가지는 ‘선택과 집중’이다. ‘특성화’도 대학이 잘 할 수 있는 분야를 선택해 그 분야에 자원을 집중하는 것이다. ‘BK21’ 사업의 경우 “소수의 대학을 세계 수준의 대학원중심대학으로 집중 육성”하는 것을 사업 목표로 삼고 있다. 1단계 BK21사업에서 1999년까지 1차로 지원된 금액은 총 8천1백27억원인데 이 중 서울대에 전체 지원액의 44.5%인 2천9백49억원이 지원됐다.

그러나 이런 “선택과 집중 방식에 의한 연구기금을 배분했던 미국과 영국의 대학들에서 많은 문제점들이 도출됐다”고 박정원 상지대 교수(경제학)는 말한다.

물리학, 화학, 수학 등 기초과학에 대한 연구비 지원이 대폭감소하면서 이들 학과들이 몰락하게 됨에 따라 미국 하원 소위원회는 “지식기반경제 저변확대를 우해 재정지원 우선순위가 기초연구에 두어져야 한다”는 결론을 냈고 영국 역시 같은 결과에 봉착해 선택과 집중보다는 연대와 협조에 따른 자원배분 방식을 권유하고 있다고 박 교수는 말한다.

이는 스코틀랜드에서 일부 시행되는 방식으로 중심대학과 협력대학체계로 나누어 한 대학이 중심대학으로, 나머지 대학들이 협력대학으로 연구조직을 구성하고 연구기금을 확보해 공동의 교육 프로그램을 수행하는 방식이다. 박 교수는 “다양한 대안이 있음에도 교육부는 미국만을 절대적 롤모델로 사용하고 있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목적은 사라지고 수단만 남아

‘수요자 중심론’과 ‘선택과 집중’이라는 방법론에 따라 선정된 각종 정책들, BK21사업, 대학 구조조정, 학과 통폐합 등은 결국 갖가지 부작용이 예상된다. 또한 정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애시당초 “교육의 질 향상, 경쟁력 강화”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기초교육의 부실 등의 부작용을 낳을 뿐이다.

정진상 교수는 “이런 부작용들이 제대로 고려되지 않은 채, 목적 수행을 위해 수단이 제대로 고안되었는지 진지한 고찰이 없는 채 ‘성과주의’에 매몰돼 집행하는 교육부 정책들은 결국 보여주기 위한 ‘퍼포먼스’일 뿐이다”라며 “이런 모순을 폭로하는 것이 교육 문제를 해결하는 첫 걸음이다”라고 ‘교육부의 사기극’을 폭로하는 이유를 밝히고 있다. 

박수진 기자 namu@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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