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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관리 문제…지도교수, 학생지도 책임 물어야”
“연구관리 문제…지도교수, 학생지도 책임 물어야”
  • 강일구
  • 승인 2022.10.18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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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윤리 전문가들이 보는 ‘김건희 씨 논문사태’
“학생만 문제 삼고 지도교수는 뒤로 빠지는 관행 개선해야”
교수사회 내 ‘온정주의’…지도교수 책임 명문화 필요

#1. 정당 당협 위원장 A는 자신의 학위논문이 표절이라는 판명에 승복하지 못했다. A는 “인용한 부분의 출처를 밝혔는데 왜 표절이냐!”라고 반문했으나 조사를 담당한 교수는 “문단마다 출처를 밝히지 않았다”라며 “학위논문에 다른 사람의 글을 통째로 가져오는 게 어디 있나”라고 응답했다. A의 지도교수는 퇴직해 징계대상에서 빠져나갔다.

 

#2. 공무원 B는 자기 부처에서 폐수처리에 대한 용역과제를 맡은 회사의 중간보고서를 입수해 이를 박사학위 논문에 그대로 썼다. 지도교수는 그가 현장에서 몇 달 동안 어떻게 샘플링을 했는지, 어떻게 분석자료를 만들었는지에 대한 질문은 하지 않았다. 논문을 심사했던 위원들도 B와 개인적 친분이 있었다. 조사위원들은 심사위원에게는 경고를, 지도교수에게는 한 단계 높은 징계를 내릴 것을 학교에 권했다.

 

#3. 여수에 직장이 있는 C는 85km 떨어진 광주의 한 대학에서 비전일제 박사과정을 밟고 있었다. 실험 특성상 실험실에 상근하며 매일 동물 채혈을 해야 하지만 C는 간혹 실험실에 찾아왔다. C의 연구과정에 지적이 있었으나 지도교수는 C의 박사학위를 통과시켰다. C와 지난해 보직을 맡고 있던 지도교수는 교수공채에서 부정 채용 논란에 연루가 됐다.

”학생 능력 파악한 교수라면 표절 판단 가능“

지난달 6일 김건희 씨의 논문 4편의 검증 결과를 발표한 범학계 국민검증단은 그다음 단계로 ‘지도교수’의 문제를 조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검증단에 참여한 김민웅 전 경희대 교수(미래문명원)는 “검증은 (논문)작성의 차원이 있을 것이고, 통과의 차원이 있을 것이다”라며 “‘논문이 어떻게 통과됐는가?’ ‘심사는 하긴 했는가?’ ‘공모는 없었나?’라는 질문이 이어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김 씨의 논문 사태가 터지고 교육부 연구윤리자문위원을 맡고 있는 황은성 서울시립대 교수(생명과학과)는 이번 사건의 본질을 ‘부실한 연구관리’의 문제로 정의했다. 김 씨의 사건만이 아니라 연구관리가 부실한 곳에서는 얼마든 일어날 수 있다는 의미이다. 특히, 비전일제 학생이 많은 특수대학원은 연구관리의 ‘사각지대’라고 말했다. 황 교수는 “학생이 학교 밖에서 별도의 일을 하며 실험‧조사‧논문 작업을 하기에 지도교수가 치밀한 연구관리를 하지 못한다. 또한, 비전일제 학생이 연구 질이 떨어지면 교수에게 미안한 마음까지 갖는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앞서 설명한 B와 C의 사례는 교수와 학생이 물리적으로 떨어진 데다 교수 또한 이 같은 문제를 세심히 살피지 않았기에 발생한 것이다. A의 사례는 학생이 지도교수로부터 인용 방법에 대한 기초적인 지도를 받지 못한 경우다. 학생이 연구부정에 대한 의도가 없어도 지도가 부실해 표절 문제가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는 의미다. 현재는 논문검증의 모범 사례로 알려졌지만, 문대성 씨의 논문을 검증할 때도 논문 통과 과정에서 지도교수의 문제가 있었다.

사진: 지난 4일 교육부 국정감사에서 교육위원회 문정복 의원(더불어민주당)은 국민대 테크노디자인대학원의 21년간 학위수여 현황을 조사해 공개했다. 또한, 이날 김건희 씨의 지도교수는 강의를 이유로 국감에 불출석했으나 의원실 관계자가 확인해보니 강의실 문은 닫혀 있었다. 사진=국회TV 갈무리 
지난 4일 교육부 국정감사에서 교육위원회 문정복 의원(더불어민주당)은 국민대 테크노디자인대학원의 21년간 학위수여 현황을 조사해 공개했다. 또한, 이날 김건희 씨의 지도교수는 강의를 이유로 국감에 불출석했으나 의원실 관계자가 확인해보니 강의실 문은 닫혀 있었다. 사진=국회TV 갈무리 

당시 문 씨의 지도교수는 표절 문제가 불거진 뒤 조사위원으로 참여해 “200% 표절”이라고 말했으나,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학위논문은 ‘표절을 전제’로 심사하지 않는다”, “방법론이나 논문의 내용과 결론을 보고 판단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문 씨 사건 이후에도 ‘표절을 전제’로 교수가 논문을 심사하지 않고, 학교가 적절한 대안을 내놓지 않는다면 사후 같은 문제는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문 씨는 사건 이후 “국민대에서 ‘너 혼자 안고 가면 되는 데 왜 문제를 크게 만드느냐’고 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황 교수는 “학생의 연구 수행 능력을 파악한 교수라면 학생이 작성해 온 글이 과연 스스로 쓴 것인지 다른 이의 글을 복제한 것인지, 표절인지 쉽게 판단할 수 있다”라며 “의심이 드는 경우 따져 묻고 실수를 하지 않도록 지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분야별 문화까지 조사해 지도교수 책임 물어

연구관리의 문제가 비전일제 대학원생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최근에 문제가 된 윤 아무개 서울대 교수 연구팀에서 벌어진 논문 표절이 대표적이다. 황 교수는 “연구를 잘하는 교수는 표절 같은 사각지대를 관리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 반대로 연구를 관리하지 않는 교수는 사건이 벌어지면 알리려고도 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 같은 문제를 관리해야 하는 연구처에 대해 그는 “논문만 잘 내면 신경쓰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연구윤리 전문가들은 연구관리 부서의 역할과 관계없이 의도하지 않았어도 학생 지도의 책임은 지도교수에게 있다고 봤다. 한국과학학술지편집인협의회 출판윤리 위원장인 윤철희 서울대 교수(동물생명공학과)는 “특정 개인이 마음먹고 부정을 저지르면 시스템으론 막지 못한다”라면서도 “지도교수는 해당 문제에 대해 충분히 들여다보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을 느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인재 서울교대 교수(윤리교육학과)도 “명문화된 지도교수의 책임 범위는 없다. 관행적으로 학위논문을 지도할 때 지도교수는 일정한 역할과 책임이 있다. (학위논문에 문제가 있으면) 책임에 있어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자유로워서도 안 된다”라고 말했다.

지도교수 문제도 결국은 연구부정 문제와 연관돼 있다. 그리고 연구부정 사건이 벌어지면 따가운 시선을 받더라도 자정작용이 드러나는 곳 중 한 군데가 서울대다. 서울대는 지난 9월 연구비 유용과 실험용 개 부정거래 등 다수 사안으로 이병천 교수(수의대)를 파면한 바 있다. 서울대 연구윤리팀으로부터 받은 ‘2017~2021년도 연구윤리 위반 건수 및 조치 내용’에 따르면 서울대는 꾸준히 내부에서 징계를 내리고 있다.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는 규정에 근거해 위반의 정도가 비교적 중함 이상인 경우에 조치를 진행하고 있다.
※ 서울대 연구윤리팀 자료

연구 위반 문제에 대해 서울대에서 조치가 가능한 이유는 숙련된 연구자가 많아 직업윤리로서 이를 엄단하는 분위기가 형성된 점도 있지만, 연구진실성위원회(이하 연진위)가 항시적으로 운영되는 점 또한 있다. 연진위는 대부분의 대학에 상설로 설치돼 있지만, 연구윤리 관련 업무를 교무처·기획처·연구처 등에서 병행하고 있다. 하지만 서울대는 담당하고 있는 연구과제 수가 압도적으로 많아 별도의 연구윤리팀을 두고 한 달에 한 번 회의를 열고 사건에 대해 심의‧판정한다. 항시적으로 운영되기에 대응에 있어 권위와 책임이 부여되고 사례축적이나 예방효과 면에서 체계적일 수 있다. 

이현숙 서울대 연구처장(생명과학부)은 “박사급 전문위원과 변호사가 연진위를 전담으로 보좌한다. 법정 다툼이 있는 경우 최종 징계까지 오래 걸리긴 하지만, 그래도 연구진실성을 지키려 노력한다”라고 말했다. 대학원생이 저지른 연구부정을 지도교수가 모두 알지 못했더라도 서울대 연진위는 일정부분 책임을 지도록 판정하고 있다. 학교 규정상 학생을 관리·감독할 책임이 교수에게 있기 때문이다.

이 처장은 “교신저자의 경우 70% 크레딧을 공식적으로 인정받기 때문에 경미한 수준이라도 책임을 지도록 한다”라며 “지도교수가 영광을 가져가면서 잘못된 것은 대학원생에게 책임을 미룬 일이 그간 있었다. 황우석 사건 때 5저자 김선종에게 모든 책임을 미루거나, 병풍처럼 학생들을 뒤에 세우고 ‘조작이 있었는지 몰랐다’라는 경우도 있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서면조사와 면담 조사가 필요한 경우 특정 분야의 문화까지 조사해 지도교수가 얼마만큼 책임이 있는지 따지고자 노력한다”라고 덧붙였다.

지도교수 책임 명문화…연구부정 징계는 엄격하게

황우석 사태 이후 연구윤리에 대한 중요성이 커지면서 교육부는 연구윤리지침을 만들었고 대학들도 자체 윤리규정을 제정했다. 그러나 문제는 제도는 있으나 이것이 사건이 벌어졌을 때 실제로 작동하느냐다. 다른 연구부정 문제와 마찬가지로 지도교수와 관련된 사안에서도 해결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로 연구윤리 전문가들은 교수들의 팔이 안으로 굽는 경향을 꼽는다.

“조사위원회가 경찰 같이 객관적으로 조사해서 결과보고서를 연진위에 제출한다. 그러면 연진위 위원장은 100% 조사 결론을 총장에게 보고해야 한다. 그런데 지도교수 문제는 제보사항이 아니었으면 빼는 경우가 공공연하게 있다.”

황은성 교수는 지도교수에 대한 처벌이 어려운 문제에 대해 보직교수의 문제를 지적한다. 외부위원까지 참여한 조사위원회가 결과 보고서를 내놓아도 연진위에 당연직으로 있는 연구처장, 대학원장, 부총장 같은 보직교수가 연구부정 문제의 공론화와 처리에 소극적이라는 것이다. 연진위와 조사위원회는 연구부정행위 여부에 대한 조사와 판정까지 하고, 그에 따른 징계와 제재는 대학과 연구기관이 자율적으로 수행한다. 보직교수가 연진위에 들어가는 이유는 연구부정이 벌어졌을 때 징계와 연구비 문제 등에 대해 처리하기 위해서지만 실제론 제 기능을 못 한다는 지적이다. 또한, 학위논문 등에 대한 투고는 대개 논문을 쓴 학생에 관한 것이기에 문제가 된 학생만 조처할 뿐 지도교수는 징계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인재 교수는 지도교수를 명시적으로 처벌하는 규정이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 교수는 “학위논문이 문제가 됐을 때 이를 알게 된 몇몇 교수만 지도교수에게 암암리에 눈총을 주는 정도다. 또한, 학위논문이 문제가 됐을 때 학생과 지도교수를 처벌한다는 명문화된 규정이 없기에, 일차적으로 학위논문의 저자라고 할 수 있는 학생에게 제재가 간다”라고 말했다.

황 교수는 연구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는 지도교수의 문제 해결을 위해 아는 사람들끼리만의 ‘따가운 논총’이 아닌, 대학 내에서 적당한 눈총을 받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연구윤리 문제가 벌어졌을 때 이를 교수사회 내부에서만이라도 공지해 경각심을 갖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는 부정행위에 대한 정보가 일체 공개되지 않는데 이를 일정부분 공개해 교수들이 적당히 긴장하도록 만들자는 것이다. 황 교수는 “징계의 수위를 강하게 하면 더욱 숨기려 한다. 징계 수위는 약하게 하되 구성원들에게 알게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인재 교수는 지도교수의 책임 명문화와 함께 대학 내에서 교수에게 가던 혜택을 제한하자는 안을 내놓았다. 가령, 문제가 된 교수에게 대학원생 배정을 적게 하거나, 교내 연구비 지원 제한, 연구년 교수 선발 제한 등 대학 내에서 할 수 있는 제재를 활용하자는 것이다. 

“외국은 해임되면 산업계로, 우리나라는 발붙일 데 없어”

한편, 시민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판단이 교수사회로부터 나오는 것에 대해 교수들의 보수성에 대한 문제도 지적됐다. ‘국민대학교의 학문적 양심을 생각하는 교수들’에서 활동한 이창현 국민대 교수(미디어전공)는 “교수들은 독립적이기에 타인의 행위에 언급을 꺼려하고 부담감을 갖고 있어 안정지향적 판단을 한다”라며 “김건희 씨 논문 사태는 보수적인 교수사회와 정치적 관여로 인해 최악의 상황이 벌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현숙 서울대 연구처장은 연구부정 문제를 대하는 교수사회 분위기를 짚었다. 그는 “교수협의회나 교수노조는 교수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조직이나 연구부정 사건 징계에 어느 정도 반대하는 게 사실이다. 교수의 징계가 너무 쉽게 이뤄지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라며 “다만 학교의 위상이나 온전함을 지키기 위한 과도한 보호는 대학에 해가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지난달 6일 김건희 씨의 논문 4편의 검증 결과를 발표한 범학계 국민검증단은 그다음 단계로 ‘지도교수’의 문제를 조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양성렬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 이사장은 지난 9월 논문검증 기자회견에서 교수의 불안정한 신분이 독립적인 판단을 저해한다는 취지로 발언을 했다. “교수 초임 연령이 42세이고 이는 대학병원 간호사 초임 연봉과 비슷하다. 또한, 3년마다 재계약을 하고 교수들의 자치는 재단에 의해 개입된다”라고 말했다. 이창현 교수도 이에 동의하며 “특히, 지역 대학은 위기를 겪고 있고 학생들이 오지 않아, 학교 위기를 교수의 위기로 여긴다. 가뜩이나 힘든데 문제 제기를 하면 스스로의 직업적 안정성이 약화 될 수 있기에 교수들이 위축된다”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교수 노동시장의 특성 또한 대학 내 연구윤리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유로 지적됐다. 황은성 교수는 “외국 대학에서 교수가 연구부정을 저지른 경우 학교에서 잘리고 산업계로 간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대학에서 잘리면 다른 곳에 발붙이기 힘들다”라고 말했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교수들 간 온정주의가 생길 수 있다는 의미다.

강일구 기자 onenin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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