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17:55 (금)
임진왜란 연관설 신선···역사서술의 기본 부족
임진왜란 연관설 신선···역사서술의 기본 부족
  • 현광호 고려대
  • 승인 2006.04.12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평: 『청일전쟁과 대한제국』고영자 지음| 탱자 刊| 501쪽| 2006

교수신문사의 청탁으로 출간된지 얼마 안된 한국근대사 관계 저서를 볼 기회를 얻게 되었다. 더구나 저자가 일본학 전공자이므로 일본학자가 보는 한국근대사는 어떠한지를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먼저 이 책의 주요 내용을 보면 크게 세 부분으로 되어 있다. 1부는 서장으로서 올바른 역사인식을 촉구하는 부분이다. 한국근대사와 관련하여 주목할 부분은 개화기 일본의 대한침략을 임진왜란의 연장이라고 규정한 부분이다. 저자는 강호막부를 타도하고 조선침략을 주도한 장주번·살마번 세력이 임진왜란을 도발한 풍신가의 후예들이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그런 점에서 대한침론(정한론)을 임진왜란의 속편이라고 규정했다. 이러한 저자의 시각은 일본의 조선 침략을 일본내 정치세력의 권력투쟁과 연결지어 이해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가치가 있다고 본다. 2부는 대한제국의 위기와 일본제국주의 형성기이다. 주요 내용은 고종과 대원군의 정치, 일본의 메이지유신의 성공과정, 일본의 조선침략론 등이다. 여기에서는 일본의 주요 정치가, 사상가들의 활동을 소개하면서 유신 신정권의 조선 인식이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3부는 강화도조약·임오군란·갑신정변·동학농민전쟁·청일전쟁·갑오경장 등 한국근대사에 큰 획을 그었던 주요 사건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이 책에서 드러난 저자의 문제의식은 일본사회가 근래에 우경화(신군국주의화)하는 과정에서 또 다시 전쟁이 발발할 지도 모른다고 우려하는데 있다. 특히 저자는 일본학계가 제국주의적 침략을 비판하기보다는 오히려 미화하고 있는 현상을 우려한다. 저자의 또 다른 문제의식은 한국의 국사학계가 대한제국의 붕괴원인을 일본의 전략보다는 국내문제에서 찾는다고 인식하는 데서 출발한다. 저자는 이러한 국사학계의 연구경향을 자학사관으로 규정하고, 우리 국민으로 하여금 한민족은 열등하거나 민족에 대한 부정적 열패감을 심어줄 것으로 염려한다. 심지어 저자는 이러한 경향을 일제의 식민사관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이상과 같은 저자의 시각에 동의하기 어렵다. 대한제국의 붕괴를 국내문제에서 찾는 경향을 일본의 침략정책을 간과하는 것으로 보아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최근의 연구 경향은 일제의 침략정책에 대한 연구들이 축적된 위에서 대한제국의 대응을 집중 분석하여 한국사의 자주성을 구명하고자 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는 것이지 자학사관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저자는 대한제국 붕괴의 원인 구명을 이 책의 중심 과제로 삼고, 대한제국의 붕괴는 일본의 교란책에 있다고 파악한다. 또 저자는 한국사 위주의 역사서술은 오류를 가져올 수 있다고 비판하고, 일본의 대한정책을 상세하게 서술했다. 이에 따라 저자는 일본의 조선침략론의 전개과정, 일본의 군국주의화 과정, 정부·재야·우익의 동향 등을 집중적으로 서술하였다.  이 책에 의하면 저자는 근자 러일전쟁과 대한제국에 대한 저술을 출간할 예정이라고 한다. 따라서 이 책과 장차 출간될 저서에 참고가 되기 위해 몇 가지 언급을 하고자 한다.

  먼저 용어 사용에 대한 문제이다. 이 책의 제목은 청일전쟁과 대한제국이지만 주 대상시기는 운양호사건부터 1895년 10월 을미사변까지다. 이 책에서 저자는 개화기를 일괄적으로 대한제국으로 기술하였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대한제국은 1897년 10월 선포된 국명으로 인식되고 있고, 대한제국 이전은 조선으로 호칭하는 것이 통례이다. 이렇게 본다면 책의 제목에 대한제국이 들어가 있는 것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 그 외 서구 국가명을 아메리카, 이기리스, 올란도 등으로 기술한 것도 다른 서구 국가를 한자식으로 표기하는 것과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다음으로 국사학자들의 자학사관을 지적하는 점이다. 저자는 그 근거로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저술들을 인용하고 있는데, 문제는 최근의 한국근대사 연구성과를 거의 인용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국사학계는 지난 수십년간 일제의 식민사관을 반박하는 과정에서 내재적 발전론 등 자주적 관점의 연구성과를 축적하여 왔다. 그런데 저자는 한국근대사를 모두 일본에 놀아난 역사로 기술하였다. 그렇다면 한국근대사는 타율적으로 전개된 것에 불과한  것이 될 것이다. 그 경우 저자가 비판한 식민사학의 타율성 논리와 어떤 차이가 있는가란 비판을 받을 소지가 있다.

  그리고 저자는 국사학계의 연구 경향을 일국사적 시각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서는 한국사를 세계사적 차원에서 구명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어 왔고, 국사학계는 이러한 비판을 수용하여 국제환경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저자의 이와 같은 지적은 정당한 것으로서 한국사를 한국과 주변 국제환경을 긴밀히 연결시켜 균형있게 서술을 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점에서 비춰볼 때 이 책은 한국근대사의 주요 사건을 일본의 입장에서 서술하고 있다. 그 결과 당시 조선인의 역할은 거의 서술되지 않고 있다. 간간이 언급되는 조선 집권층의 정책, 즉 쇄국정책·강화도조약 체결 등을 평가하면서 조선지배층의 무능만이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서는 조선의 자주적이고 능동적인 대외정책을 주장하는 연구성과도 축적되었다. 갑신정변의 경우에도 최근의 연구성과에 의하면 개화파는 개혁구상을 가지고 일본 외에도 미국·영국측과도 협의한 바 있다고 한다. 그러나 저자는 개화파는 특별한 개혁 구상도 없이 맹목적으로 일본에 이용만 당한 것으로 단정하였다. 이상과 같은 연구성과를 도외시하면 저자가 언급한 대로 자학사관에 빠질 우려가 있을 것이다.

  한편 저자는 별기군 우대, 갑신정변 발발, 동학농민군 봉기, 갑오경장 추진 등을 일본의 조종책에 기인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 부분은 저자가 가장 강조한 주제로서 이 책의 가장 핵심적인 대목이라 할 수 있으므로 치밀한 분석이 전제되어야 한다. 저자의 주장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보다 풍부한 근거 자료를 제시해야 할 것이다. 또 이 책은 일본 중심의 한국근대사로 서술되었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일본의 논저를 중점적으로 참조하고, 한국의 논저를 소홀히 참조했기 때문은 아닌가란 비판을 받을 여지가 있다. 끝으로 이 책은 일본의 근대화 과정이 상술되어 있다. 그런데 이 책의 제목이 의도한 바 대로 일본근대사와 한국근대사를 긴밀하게 연결시키려면 일본의 근대화정책이 조선에 준 영향을 서술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 책은 한국과 일본의 근대사를 병렬적으로 기술하여 상호 연관성이 설명되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일본의 보안조례나 자유민권운동이 조선과 어떻게 연결되는지가 서술되지 않았다. 따라서 방대한 일본근대사를 이해하는 데는 도움을 줄지 몰라도 저자가 비판한 바 있는 일국사 위주의 서술방식에서 탈피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아무쪼록 저자의 열정적인 연구로 한국근대사에 대한 이해가 더욱 넓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현광호/고려대·

필자는 고려대에서 ‘외세에 대응한 대한제국의 강병론’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저서로는 ‘대한제국의 대외정책’, ‘근대 동아시아 역사인식 비교’ 등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