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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가들이 추천한 4월의 전시·공연
평론가들이 추천한 4월의 전시·공연
  • 강수미 外
  • 승인 2006.04.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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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_탈속의 코미디 ‘박이소 유작전’

인간사의 부조리와 부박함을 정직하게 직시하는 자 앞에서 우상(Icon)은 침묵할 것이다. 이 말은 47년의 짧은 생을 살다간 미술가 박이소의 작품세계를 압축해본 말인 동시에 현재 로댕갤러리(3.10~5.14)에서 열리고 있는 그의 유작전 ‘탈속의 코미디 Divine Comedy’가 내포하고 있을 법한 말이다. 2004년 4월 삶을 마감한 박이소는 대중들 사이에서는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한국현대미술에서 중요한 궤적을 그린 작가다. 박이소는 서구 모더니즘 미술의 조형 어법과는 상이한, 문화 소수자적 태도로 생활의 부박한 재료를 헐겁고, 구성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다룸으로써 현실의 ‘단면’을 자신의 예술로 변용했다. ‘예술을 위한 예술’로 현재를 미화하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하고 모순적이며 때로는 극단적으로 무의미한 우리 삶의 아이러니를 고스란히 노출시키는 미술이 박이소가 행한 미술이다. 이 미술은 세속을 직시함으로써 관념화된 미술의 우상, 나아가 우리 삶의 허상을 깨뜨렸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박이소의 사적인 흔적과 주요 작품, 일부 소실되거나 미완의 작품을 경계 없이 재구성한 유작전은 작가 생전 밀접히 교류했던 기획자 이영철 교수가 그린 ‘박이소의 초상’이라 할 만하다. 이 전시는 인간 박이소와 박이소 미술을 함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강수미 / 홍익대·미술평론가

●음악_쇼스타코비치의 향연

4월에는 굵직한 외국 연주자들이 공연이 많이 준비돼있지만, 국내 음악가들이 꾸미는 쇼스타코비치의 연주회를 우선적으로 권하고 싶다. 4. 27~28일 KBS 교향악단이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7번을 연주하고, 28일에는 콰르텟엑스가 그의 현악4중주 4번과 7번을 무대에 올린다. 이들의 무대는 단발적인 행사가 아니라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과 현악4중주를 체계적으로 무대에 올리는 기획의 일환으로 마련된 것이다. KBS 교향악단은 작년부터 그의 교향곡을 하나씩 연주하고 있으며, 콰르텟엑스는 올해 매달 마지막 금요일에 그의 현악4중주곡을 차례로 무대에 올리는 대장정에 들어갔다.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은 현대음악치고는 진입장벽이 낮아 일반 음악 애호가들도 충분히 도전해볼 만하다. 베토벤에서 이어지는 순수 교향악 전통의 적자로서, 러시아 음악 특유의 활달한 리듬과 비극적 표현이 아이러니하게 교체하는 그의 음악은 현대인의 상상력을 매혹시키기에 충분하다. 탄생 1백주년을 맞이한 올해는 이제 현대음악의 고전이 된 쇼스타코비치의 곡들과 친숙해질 수 있는 더없는 기회다. 한편 위의 연주회에서는 모차르트의 곡들도 함께 꾸며질 예정이다. KBS 교향악단은 김대진과의 협연으로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7번을 연주하고, 콰르텟엑스는 그의 현악4중주 4번과 20번을 함께 무대에 올린다.
정이창 / 문화비평가

●뮤지컬_소극장 뮤지컬의 흥과 재미 ‘빨래’

어떤 관객은 부러 뮤지컬을 외면한다. 값비싼 관람료에 비해 지나치리만큼 대중 추수적이고 도무지 남의 나라 태를 못 벗은 생경한 이야기에 작위적인 군무, 숨 가쁘게 돌아가는 스펙터클 쇼 등에는 별 흥취를 느끼지 못해서다. 만일 뮤지컬에 대해 이런 선입견을 갖고 있다면 최근 소극장에서 공연하고 있는 색다른 창작뮤지컬 한 편을 권한다.
‘골목골목 뮤지컬’을 내세운 ‘빨래’(상명아트홀, 4월 23일까지)는 서울 변두리 달동네를 배경으로 우리 이웃들의 타향살이 드난살이를 따스하게 위로하는 연극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그늘 아래 누구나 유민일 수밖에 없는 삶의 조건을 구석구석 섬세하게 무대 위에 올려놓았다.
이 뮤지컬에는 외국인노동자, 비정규직 일터의 문제 등 휘황한 도시의 진열장 불빛에 가려져 있는 동시대적 문제들이 담겨 있다. 무엇보다 관객의 상상력과 놀이성을 적극 부추기면서 활달한 극공간의 교체와 변용, 일인다역 등 연극의 품새 너른 유희정신을 즐길 수 있다. 쇼 비즈니스로 휘발되고 말 뮤지컬의 말초적 역동성을 사람 사는 세상의 살맛나는 찬가로 만들어 뮤지컬 장르가 오늘날 대동놀이가 될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장성희 / 서울예대·연극평론가

●오페라_모차르트의 ‘돈 조바니’

1787년에 프라하에서 초연된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는 아리아와 레치타티보의 유기적인 연결이 그 어떤 오페라보다도 완벽해서, 3시간의 긴 공연동안 잠시도 숨 돌릴 여유가 없는 빼어난 걸작이다. 음악뿐만 아니라 소재 면에도 이 작품은 다른 모든 오페라를 능가한다. 중세 스페인의 소문난 바람둥이 귀족 ‘돈 후안’은 여러 시대에 걸쳐 수많은 작가와 작곡가들의 영감에 불을 붙인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셀라스, 콘비치니, 비에이토 등 세계의 유명 연출가들은 이 ‘돈 조반니’를 섹스와 폭력이 난무하는 현대의 무대로 옮겨와 비난과 찬사를 동시에 얻곤 했는데, 예술의 전당(4. 20~23)이 마련하는 이번 공연은 프란체스카 잠벨로가 연출한 영국 로열 오페라하우스의 2002년 버전으로, 파격적인 요소가 가미돼있으면서도 비교적 전통에 충실한 연출이어서 무대와 음악 모두를 고루 즐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레포렐로 역의 연광철을 비롯해 나승서, 정영수, 지노 킬리코, 심인성 등 역량이 탁월한 출연진이 더욱 특별한 기대를 갖게 한다.
이용숙 / 음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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