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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거리둔 사진, 뒤늦게 발견된 문화적 가치
예술과 거리둔 사진, 뒤늦게 발견된 문화적 가치
  • 정진국 영남대
  • 승인 2006.04.0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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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비평: 1세대 사진가 故 이해선의 사진

이해선은 일반에 널리 알려진 편은 아니다. 그러나 최근 그의 유고 사진집이 발간되면서 다시 주목받을 기회를 얻었다. 이 사진집은 그가 만년이던 1980년에 비매품으로 펴낸 것에 뒤이어 사실상 일반에 처음 공개된 사진들이 대부분이다. 사진가가 공개하지 않았던 원판에서 끄집어 낸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 사진계의 1세대에 속한다. 그리고 이 선구적 사진가들의 행적이나 관점에서 그들과 서로 다른 면보다는 공유하는 면이 많았다고 할 수 있다. 궂이 다른 면이라고 한다면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을 꼽을 수 있을 듯하다.


흔히 주제나 문제보다는, 작가 개인의 유명세나 인물들의 연결고리로서 사진의 역사와 조류를 바라보는 경향이 강한 우리 풍토에서 과거의 거의 모든 사진가들이 재평가의 대상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또 이런 평가가 미진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도 있다. 전문성을 갖춘 학술지나 이렇다할 지면이 부족하다는 점 외에도 기본적으로 사진가에 비해 이를 학술적으로 연구하는 인력은 극소수이며, 또 그런 인재 양성의 기회도 드물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 대학에는 적지 않은 사진 전공 학과가 개설되어 있지만 거의 작가 양성에 주력하고 있다. 또 여타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 사진을 연구 대상으로 삼아 공부하는 경우도 드물었다. 사진의 아카데미즘이라는 것은 실기 위주이므로 일부 작가들은 체험에 바탕을 둔 작가정신을 내세워 스승으로서 모범을 자임하려하며, 학교와 인연이 없는 일부 작가들 또한 그들 나름대로 개별적 교범을 대안으로 제시하거나 사숙하는 전통을 내세워 아카데미즘을 비판하면서 자신의 방법과 작품을 배타적으로 신비화하는 데 주력하기도 한다. 또 해외에서 사진의 역사와 이론을 공부하고 돌아온 소장연구자들은 사대주의적 관념이나 유학했던 지역의 실기와 이론적 경향을 절대적 잣대로 삼아 국내 사진계를 관찰하고 저울질하려 하는 만큼, 그들에게 우리 사진 문화와 현실에 대해 균형잡힌 시각을 기대하기 어려운 면도 없지 않다. 그러나 최근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 젊은 연구자들이 우리의 사진에 대한 깊은 관심으로 연구에 속속 착수하는 것을 보면 지금과 같은 현상은 일시적인 것이 되고야말 듯하다. 또 더욱 개방된 해외의 비옥한 정보를 접하고 돌아온 연구자들이 늘어나면서 이런 제한된 정보에 의존하고 페쇄적이며 때로는 비생산적인 사진 비평의 풍토도 조만간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 더구나 몇몇 연구자들은 사진계와 믿기 어려운 단절에도 불구하고 양서들을 번역 소개하고 또 저술에 몰두함으로써 대단한 용기를 보이고 있기도 한 만큼 현재와 미래에 대해 마냥 침울하거나 비관적일 수만도 없는 노릇이다.


제1세대 사진가들은 이제 거의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소수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대부분 이렇다할 조명을 받지 못했다. 우선 앞에서 말한 여건 이외에도 열악한 출판환경으로 사진집이라는 것이 나오기 어려웠고, 그나마 출간된 것들도 자비출판에 가까운 것들이었다. 영화나 텔레비전이 주도하는 시각매체의 흥행과 미술계가 상대적으로 체면을 세우고 있는 평판에 비해 사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이래저래 미미하기 마련이다. 더구나 사진의 기록하는 전통을 중시하는 다수의 애호가들과 지식인들은 전문적 사진가들이 추구하는 예술적 취향이나 탐미적 방향으로 기울은 사진에 대해 선뜻 동의하기를 꺼리고 있다. 사진은 “과거를 눈 앞에 재현하는” 그 절대적 위력으로 대중을 사로잡을 틈도 없이, 사진가들이 급격히 사진 “이미지 그 자체”를 순수하게 즐기겠다는 태도에 몰입함으로써 얻은 것보다는 잃은 것이 더 많은 양상이 되었다. 또 주요 일간지들을 중심으로 훌륭한 보도사진가들이 배출되고 활동해 왔지만 이들의 작업과 그 즐거움과 의의를 진지하게 소개, 유포하는 어느 정도 정상적 수준을 보여주는 사진잡지 하나 없는 인색함이 우리 저널리즘에서 드러나는 현실이다.


이해선을 포함한 제1세대 사진가들의 아이러니는 뚜렷하다. 이 분들은 사진계라는 작은 제도권의 언로를 장악한 몇몇 사진가들로부터 소외되었을 뿐아니라, 스스로도 역사와 현실을 기록한 뛰어난 사진들을 “찍어 놓고서도” 관념 속에서는 여전히 또다른 예술로서의 사진을 염두에 두고, 모더니즘의 참신성을 열망하면서 정작 그 기록의 준엄한 자취들에 대해서는 그렇게 주목하거나 의미를 두지 않았었다.


유한부인들의 취향에 부응해야 하고, 그림 같이 예쁘거나, 극적으로 짜릿하며 기왕이면 포르노처럼 탈콤한 사진들을 예술의 이름으로 포장해야 어느 정도 생존과 인기를 유지할 수 있는 사진가들의 고뇌를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사진에서 형식적 요소들을 미적으로 더 완벽한 경지에 도달하게 하며, 시선과 찰나의 매혹을 추구하려는 것은 모든 사진찍는 사람들의 욕망이자 이상일 수 있다. 그러나 사진이 현실을 그림처럼 보여준다고 해서, 현실이 그림은 아니다. 또 우리가 늘 현실을 그림처럼 보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현실을 그저 눈 앞에서 살아가며 겪는 대로 보고 있다. 역설적으로, 현실을 그림처럼 어떤 완벽한 “프레이밍”과 이런저런 수법으로 가장 “사진다운 것”에 근접하도록 촬영했다고 한다면, 그럴 수록 있는 그대로의 현실에서 멀어지는 것이 사진이다. 요컨대 사진은 창의적 표현을 추구하면 할수록 직설적 현실 재현에서 멀어지기 쉽다. 안타깝지만 필연적인 사실이다. 그림이나 다른 표현매체를 통해서 즐기고 누릴 수 있는 상상을 굳이 사진으로 대신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사진에서 표현영역의 확장이라는 유혹은 사진의 시각적 증거로서의 자취와 기록이라는 사진 이미지의 존재근거 자체를 부정할 수 있을 정도로 파괴적이다.       

 
이해선이 특별히 흥미로운 것은 바로 그 선구적 세대의 작가들이 거의 공유했던 5십, 6십 년대의 우리의 삶과 사회상을 그가 가장 앞장 서서 보여 주고 있었음에도 이런 사실을 작가 스스로도 부인하고 싶어했다는 점이다. 그 연대에 사진기를 들고 현실을 겨냥했던 사진가들은 이런저런 제약 이상으로 특히 교통의 제약을 크게 받았다. 대도시 근교로 나가 향토의 정취를 포착하고 싶어도 개별적으로 움직이는 일은 몹시 어려웠다. 따라서 종종 그들은 전세 버스를 빌어 함께 “출사”에 참여하곤 했다. 이 “출사”라는 즉 촬영을 나간다는 말이야말로 웅변적으로 이러한 집단적 행동을 증언한다. 나중에 이 말은 모델을 대동하고 들로 산으로, 미녀와 더불어 전원적 서정과 미적 이상향을 추구하는 아마추어 사진가들이 애용하는 말이 되지만 말이다. 사진 촬영이란 어지간히 그리고 불가분 공동의 행사였으며, 또 거기에서 서로의 시각을 배우고 견주고 했겠지만 기본적으로 유사한 소재와 방법과 또 효과에서 크게 벗어나기도 어려웠을 듯하다.


바로 여기에서 50년대와 60년대에 활동했던 사진가들의 주제와 소재와 취향과 이념의 모든 전형이 비롯된다. 아동과 호기심과, 어부와 아낙네와, 빙판과 빨래터, 시가행진과 구경꾼들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사진적 “스펙타클”에 대한 취미가 거의 동시자발적이며   자연스레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사진가들 대다수는 대중적 인기를 누리거나 위신을 얻는 게임에서 탈락했다. 대중적 지명도와 인기라는 몽매주의는 세속적 즉 상업적 성공 여부와 직결되는, 산업과 금융자본주의 사회에서 무한한 잠재력이자 결정적 관건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투기자본주의의 성장에서 “값을 매길 수 없어” 더욱 값이 나가는 “예술품”에 대한 광적인 숭배는 사실 건전한 미적 활동과 상당히 거리가 멀다. 투기적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예술에 미쳐 죽는” 순교자들이 필요하다. 그 공급은 아주 희소할수록 매력적이다. 맹목적인 예술 숭배에 홀린 다수 관중의 수요와 예술에 미쳐서 죽어가는 극소수 작가의 공급이 유지되는 생산과 소비구조는 투기적 자본가들에게 환상적인 커플이다. 서구 사회는 물론 우리 사회 또한 이렇게 “예술에 미친” 사람들을 좋아하고 또 거기에 미치도록 열광을 조장한다. 이런 상황에서 사진을 예술과 결부시키려는 환상을 쫓는 사진예술에 대한 광풍이 부는 것은 당연하다. 진작부터, 즉 사진이 막 발명되었을 당시 시인 보들레르가 예견했다시피, 사진이 현실을 기록하는 겸손한 시녀가 아니라 공주병에 걸려 덧없는 망상을 좇을 때 결과가 어떤지는 우리가 지금 여실히 목격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예술 “작품”이라는 자격을 내세워 사진의 가치를 인정받으려는 꿈을 꾸지 않는 사진가가 있다면 되레 이상할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사진은 예술과는 다르다. 또 기왕이면 예술과 소원할 수록 사진은 더 값진 것이 된다. 1세대 사진가들이 훌륭한 사진 활동을 펼쳤으면서도 남루한 “예술사진”에 강한 집착을 보이거나 심지어 “기록예술”이라는 딱한 관념이나 “다큐멘터리 아트”와 같은 기형적 신화에 애착을 보였던 것이 오히려 다행일는지 모른다. 오랜 세월 숨겨졌던 주옥 같은 시각적 기록들이 일찍부터 대량유통되어 평가절하되는 대신에 뒤늦게 나타나 사진 본연의 모습으로 정당한 가치를 얻기에 더 유리해졌기 때문이다.

 

필자는 파리1대학에서 사진미학을 공부했다. 그 동안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세계사진사’, ‘이미지의 삶과 죽음’ 등 사진과 관련된 주요 명저들을 국내에 많이 소개해왔으며, ‘사랑의 이미지’ 등의 저서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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