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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철 교수의 ‘박정희와 한강의 기적’ 비평에 대한 반론
이상철 교수의 ‘박정희와 한강의 기적’ 비평에 대한 반론
  • 이완범 한중연
  • 승인 2006.04.0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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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어진 자료 속에서 합리적 추출…미국 압력 입증 자료 없어

박정희 시대 전시기의 산업정책에 대해 매우 깊이 있는 논문들을 내어 놓아 이 분야 전문가의 입지를 굳힌 이상철 교수의 논평을 감명 깊게 읽었다. 조목조목 제기된 비판을 통해 필자의 연구를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 이 교수에 감사드린다. 매우 적절한 지적이라 생각하며 겸허히 받아들여 추후 보완을 통해 보다 더 나은 글을 쓰겠다고 다짐해 본다. 또한 반론의 기회를 제공한 교수신문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해야 할 것 같다.


이 책 211쪽 각주 11에 이상철 교수의 견해를 인용하고 있다. 인용한 바와 같이 이 교수는 “박정희시대의 산업정책”라는 글을 통해 1960년대 중엽 수출지향정책으로의 전환이후 1970년대에도 국가통제에 기반한 수입대체 공업화가 계속 추진되었으므로 주류 신고전파 해석(1960년대 수출지향공업화 시기, 1970년대[특히 1973년 이후] 중화학공업화 시기)과는 달리 1960년대와 1970년대도 연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장하원 교수는 장하원 수출에 대한 지원은 1950년대부터 존재해 왔음을 부각하는 등 특정 시기에 어떤 정책에 의해 극적인 정책전환이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강조했던 것도 인용했다. 이들 경제학자들은 정책의 지속성을 강조했다. 그렇지만 이상철 교수도 1960년대 중엽 수출지향적인 전환이 이루어진 사실은 인정했다. 필자는 이러한 경제학계의 선행 연구 업적을 의식하면서 지속과 단절의 관점에서 문제를 보고자 했다.


필자는 미국 워싱턴 DC 근교 내쇼날아카이브(the National Archives)에서 근 1년간 체재하면서 이 주제와 관련된 자료를 뒤져 보았다. 그러나 한국정부의 문서가 빈약하듯이 한국경제발전에 미친 미국의 영향을 보여 줄 수 있는 결정적 자료(hard evidence)는 찾기 어려웠다. 한국경제가 미국의 신식민지라고 인식될 소지가 있는 마당에 그런 자료가 있다해도 남겨 놓지 않았을 것이라고 결론내렸다. 따라서 157쪽의 각주 92에 인용된 Jong Pil Kim and W. W.  Rostow, “Memorandum of Conversation,” October 28, 1962, RG 59, Records of the Policy Planning Staff 1962, Lot File 69D121, Box 217, US National Archives와 161쪽 각주 100의 미 하원 청문회 보고서 등 경제정책에 대한 페이퍼가 아닌 정치적 탐문 자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자료가 없다면 미국의 영향이 매우 은밀하게 이루어졌던가 아니면 직접적인 압력 행사를 하지 않았다고 추측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은밀하게 이루어졌다면 이는 사료조사에 의해 검증될 수 없기 때문에 일단 구술자료 발굴 등 추후 과제로 남기기로 했으며 이 책에서는 미국의 압력이 그렇게 노골적이지는 않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자료에 의한 실증을 내걸고는 외삽적 추론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가지게 됨을 변명해 본다.


나아가 필자는 1차5개년계획의 수정안을 검토하여 수출지상주의가 이 안을 관통하는 원리는 아니었으므로 1965년 전후에 박정희에 의해 힘을 얻고 강력하게 추진되었다고 주장했다. 기존의 지배적 가설은 미국의 재정안정화 정책 시행 등의 강제성 권유로 수출지향적 수정을 낳았다는 것이다. 208쪽 각주 6에서 인용하는 바와 같이 커밍스 교수는 비록 경제학자는 아니지만 수출지향형공업화정책은 미국정부의 제조물이고 한국정부는 이것을 그대로 받아들였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기존연구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미국은 경제개발계획을 수정하라는 압력은 가했지만 성장률을 하향 조정하라든지 아니면 공장시설에 투자하지 말고 사회간접 자본에 투자하라고 권고했다. 그런데 필자는 미국이 수출지향적 산업화를 하라고 종용하는 자료를 찾지 못했다. 물론 자료가 없다고 그러한 강권이 없었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권의 가능성은 현저히 적어진다고 생각한다. 또한 미국의 강권에 따라 재정안정화 정책을 시행하는데 한국정부는 긴축정책을 통해 인플레이션을 억제시키는 조치를 취하기도 했지만 실제로는 인플레이션 억제보다 수출증대에 더 주력했다. 따라서 수출지향적 산업화로의 선택은 민족 내부의 주체적 결단이었다고 판단할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 물론 그렇다고 이 결단이 치밀한 계획에 의해 뒷받침되었던 것은 아니었다는 유보적 안전장치도 덧붙였다.


따라서 미국의 영향력은 그렇게 큰 것이 아니었다고 단정했다. 원조경제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이상철 교수와 부딪히는 부분이 이곳이다. 정치적 리더십을 주요한 연구대상으로 상정하는 정치학자와 경제 전 부문을 총체적이고 유기적으로 보는 평자와의 시각차라고 할 것이다. 물론 현실은 총체적이고 유기적일 수밖에 없음을 인정한다. 따라서 평자의 논평을 매우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필자의 연구 진전을 위해 수용할 부분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박정희의 역할은 정치학자에게 여전히 중요한 연구테마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외자에 의한 경제개발계획을 추진했던 장면 정부는 물론 제3세계 국가 중 박정희 정부 정도로 성과를 냈던 경우가 별로 없으므로 박정희가 가진 비중을 산술적으로 산출할 수는 없어도 그가 경제개발에 미친 비중 자체가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필자는 박정희의 경제개발 과정 중에 흘린 노동자의 피와 땀, 농민의 한숨이 한국경제 성공 신화에 있어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조건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한강의 기적은 박정희로 대표되는 한국정부와 기업가, 외국자본, 노동자-농민의 합작품이며 이 모든 요소 중 하나라도 없었으면 신화 자체가 늦어졌거나 불가능했다고 판단한다.


필자는 시도착오적인 박정희 신화화에 가담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는 1960년대식 성공 모델일 뿐이며 2000년대 후반 한국경제를 앞날을 위해서는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에 나오는 추측과 확대해석에 근거한 평자의 충심어린 우려는 필자의 학문적 입장이나 현실적 위치에 미루어 볼 때 역시 노파심에 불과하다는 사족을 덧붙여야 할 것 같다.

이완범/중앙연·정치사

필자는 연세대에서 ‘미국의 한반도 분할선 획정에 관한 연구(1944-1945)’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저서로는‘1950년대 한국사의 재조명’,  ‘한국외교사와 국제정치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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