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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청산論, 도식화된 관념” … 經協 전략적으로
“과거사청산論, 도식화된 관념” … 經協 전략적으로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6.03.2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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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지 봄호 리뷰_ 한국사회의 아젠다는 무엇인가

올 계간지 봄호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우리 사회의 최대 현안을 두고 의제선점의 경쟁이 붙었다는 점이다.

참여사회연구소가 펴낸 ‘시민과세계’ 상반기호는 특집 서두에서 최장집 고려대 교수(정치학)가 ‘해방60년에 대한 하나의 해석’이라는 글을 제출했다. ‘창작과비평’의 특집에서는 서동만 상지대 교수(정치학)가 ‘6·15시대의 남북관계와 한반도 발전구상’을 그려놓았다. 서 교수의 글은 최 교수의 글에 대한 반론성 대목을 포함하는데, 최장집 교수의 선행비판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이미 발표된 바 있는 최 교수의 글은 건국이념 강조파와, 분단시대 논자들이 “어떤 민족적 과제로부터 과거·현재·미래를 전부 규정한다”며 공격의 포문을 열었다.

최장집 교수, “민족주의 진영 현실 못 읽는다”

최 교수는 “최근 과거사 청산문제가 개혁의 중심과제로 등장한 것에도 이런 역사관이 작용하고 있다”라고 지적하면서 “그러나 이런 시각으론 좌우 이데올로기적 투쟁과 분단국가의 건설, 권위주의적 산업화의 경험, 남북한간 사회구조와 발전정도의 극심한 비대칭적 차이 등을 이해할 수 없다”라고 비판한다. 이어 그는 “또 다른 형태의 관념적으로 도식화된 관점으론 오늘의 문제를 보는 관점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라고 결론내린다.

이런 비판 이후 최 교수는 익숙한 민주주의적 퍼스펙티브에서 민주주의의 일반과제가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 개인과 공동체 사이에 어떤 최적의 배합을 만드느냐”임을 강조하면서 이런 전망을 구체화시킬 이념적 드라이브로 과거 NL과 PD로 표현됐던 신념의 틀을 재포착한다.

최 교수에게 이 NLPDR론은 지난 70~80년대에 축적된 매우 소중한 이념적 경험치인데, 그 이유는 “국가가 형성되고 경제가 발전되는 과정에서 한국사회의 외부가 아닌 ‘내부’로부터 제기되었고 민주주의의 근본가치라 할 수 있는 민중성을 관심의 중심에 두며 실천적이고 지적인 상상력이 자유의 공간에서 표현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최 교수는 참여정부가 신자유주의를 도구로 해 구체제를 재생산하는 이 때에 이 NLPDR론이 “유럽에서 발전한 사민주의의 이념이나 실천 또는 자유주의적 평등주의와 같은 보편적 이념과의 대화를 통해 그 내용이 보편화되고 심화될” 필요성이 있음을 역설한다.

이런 주장에 대해 ‘창작과비평’의 특집에서 서동만 상지대 교수는 “생존에 집착하는 북조선체제가 한반도의 미래에 가로놓인 이 현실에서, 통일논의 자체가 비현실적이고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일부 진보학계의 주장은 한반도 분단에 대한 숙명론 내지 비관론”이라고 받아친다.

서 교수는 진보학계가 지난해 초 전면에 부각시킨 ‘한국사회의 양극화 문제’를 더욱 적극적으로 분단체제론과 연결시킨다. 그는 “양극화에 따른 복지수요도 급증하지만, 4백조원의 부동자금도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있다”라며 “대북 지원 및 투자를 중심으로 화해·협력에 들어가는 비용은 거꾸로 국내 복지예산의 증대에 유리한 여건을 조성할 수 있다”는 낙관적 현실론을 편다. 평화와 복지가 선순환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또한 지방선거 등을 앞둔 정계를 향해 “앞으로는 평화-진보세력만이 다수파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하며 그것은 결국 “남북경협이 각각의 국내 경제에 주요 부문으로 자리잡아 지속적으로 확대재생산되는 공동경제의 구조가 형성되는 것”이라고 결론짓는다.

서동만 교수, 평화와 복지의 선순환 강조

그렇다면 최 교수와 서 교수의 이런 대립은 어떤 지원사격을 받았을까. 먼저 서 교수의 통일시대론에 대해서는 전병유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이 구체적 데이터를 들고 나섰다.

그는 현재 1차적 사회안전망인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최저생계비 이하 인구 7% 중 2.9%만 지원하는 데 그치고 있고, 전국민의 25%가 국민연금을 납부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전 연구위원의 관찰에 따르면 “최근의 빈곤층은 능력과 의지가 있는데도 성장에 동참할 기회를 박탈당한 계층이거나 동참하더라도 사회적으로 적정한 생활수준을 보장받지 못하는 근로빈곤층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즉 문제가 자못 심각하다는 것.

그는 대내적 산업연관 강화, 중소기업 혁신, 인적자본 육성, 사회안전망 확충 등을 통해 양극화를 동시다발적으로 해소하려면 국내자본에만 의지하는 것은 한계가 있고, 역시 “북한을 기회요인을 만들어 분단체제 경제구조를 뛰어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북한을 부동자금의 새로운 투자처로

북한을 끌어들이기 위해 그는 경제해법의 새로운 관점으로 “한반도 단일경제권의 관점, 개방과 동아시아의 관점, 네트워크형 전략적 투자 관점” 등이, “南은 자본과 기술, 北은 노동력 제공”의 역할분담이 필요하다고 계속 주장한다. 이런 관점에서 개성공단이 남에 10만여 일자리, 북에 72만여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한국은행의 계산이 인용되는 한편 북한 제조업 기반이 거의 붕괴돼 투자처로서 매력이 많이 떨어졌고, 10년의 기근으로 노동력이 정상적 교육기회를 박탈당한 점 등의 약점도 있다고 지적된다. 그래서 더욱 북한의 역량을 잘 계산해서 먼저 북한 내에 주요 성장 및 협력 거점을 잘 선정해 나진·선봉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런 비전은 꽤 힘차게 다가온다. 하지만 뒤이어 나오는 ‘탈분단을 위한 남북여성들의 연대적 실천’(김엘리), ‘동아시아와 코리안 디아스포라’(현무암) 등의 글이 글의 농도가 옅어 아쉬움을 남긴다.

‘시민과세계’는 최 교수의 권두논문이 1부라면, 2부에서는 해방60년의 한국역사를 성찰하고, 3부에서는 좌표를 살피는 20편의 논문이 나오는데, 생태주의·사민주의·민족주의·노동주의 패러다임 등 상이한 관점의 글이 종합선물세트처럼 갖춰져 있다는 인상을 준다.

그 중 ‘모두를 위한 나라는 어떻게 가능한가?:공화국의 이념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발표한 김상봉 전남대 교수(철학), ‘사회민주주의의 역사와 한국사회에서의 착근 가능성’을 발표한 신정완 성공회대 교수(경제학)의 글은 최 교수가 제시한 문제의식의 맥락과 접붙여서 읽을 수 있다.

김상봉 교수는 우리가 민주공화국을 국체로 한다고 하면서도 공화국의 이념에 대해선 한번도 진지하게 성찰하지 못했다는 철학적 문제를 제기한다. 그는 우리의 전통 속에서 지배계급은 민중과 권력을 나눠갖기 보다 외세와 결탁해 지위를 지켜왔으며, 국가의 공공성이 정치적 전통으로 확립되지 못해 국가가 사적 이익추구를 위한 싸움터로 전락했다고 지적한다. 이어 그는 “우리 시대의 절대적 자본주의 또는 경제지상주의가 인간의 사회정치적 삶의 공공성 또는 공화국과 결코 양립할 수 없는 모순대립관계에 있”음을 말하면서 중요한 것은 교육을 통해 이런 공화국의 원칙을 삶의 뿌리에서부터 배양하고 체질화하는 일임을 환기시키고 있다.

신정완 교수는 한국이 이제 제3세계적 특징보다는 제1세계적 특징을 한결 많이 가진 사회로서 “사민주의적 개혁정책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다”고 제언한다. 그는 그 필요성을 넘어 사민주의가 “현재 한국의 다양한 개혁진보적 사회운동세력이 보이고 있는 이념적 스펙트럼에서 대체로 중간적 위치에 놓여 다양한 이념조류들이 잠정적으로 합의할 수 있는 수준”의 적정온도에 다다랐다고 유혹한다. 또한 이것이 북한체제를 지지하는 극단적 노선과는 같이 갈 수 없으나 민족자주와 남북화해협력을 통한 평화통일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광의의 민족주의 이념의 대의는 유보없이 수용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런 신 교수의 사민주의적 전망이 앞의 최 교수의 비판적 공세를 조금 누그러뜨린다고 본다면, 현재 진보 안에 형성된 민족주의적 지향과 민주·노동우위적 지향이 근본적으로 배격되는 것 같지는 않다.

제도-비제도 정치의 이분법 문제

이 두권의 계간지 외에 ‘진보평론’, ‘역사비평’, ‘황해문화’, ‘문화과학’ 등의 계간지들이 역시 묵직한 특집으로 독자를 찾아왔다. ‘역사비평’이 역사대중지로서는 드물게 황우석 문제를 정면으로 다뤄 그 관심영역의 유연성이라는 측면에서 돋보이며, ‘황해문화’가 10주년을 맞아 책 전체를 민중들의 이야기로 꾸민 것은 그 발상의 신선함과 지향점을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어 보인다.

다만 ‘진보평론’은 특집 ‘IMF 이후 한국사회 변동과 변혁을 위한 정치’의 경우 글들이 중도좌파를 포함한 우리 사회의 진보세력을 모두 냉담하게 타자화하고 적으로 돌리고 있어 ‘노동세력’의 내부문건이자 ‘격문’에 가깝다. 또한 내부의 치열한 반성이 따라야 한다는 당위조의 말들이 반복되고 있어 아직 할말을 분명히 정하지 못했다는 인상이다. 이광일 성공회대 사회문화연구원 연구교수(정치학)가 “제도정치는 공적인 것으로, 비제도정치는 사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정치에 대한 인식, 민주주의를 법·제도적인 것으로 한정하는 협소한 인식”의 문제를 지적한 것은 성찰점을 던져주고 있으나, 좀더 본격적으로 사례를 든 분석을 만나볼 수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남긴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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